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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험실 이야기] 그룹 미팅 발표는 항상 어렵다
Bio통신원(hbond)
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ixabay
속이 메스껍고, 자꾸 신경이 쓰이고, '이번엔 어떻게 넘어가나?', 생각해 보지만 별로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연구실 그룹 미팅의 발표를 1주일 앞두고, 매일 반복되는 일입니다. '빨리 이게 끝나야 할 텐데... 그래야 이 증상이 사라질 텐데...'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그룹 미팅 발표를 앞둔 1주일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입니다.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그룹 미팅 발표이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하는 발표들 중에서 가장 긴장되는 시간입니다.
영어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연구 내용을 잘 몰라서도 아닙니다. 발표대회에서 입상도 여러 번 했고, 지금도 학교에서 열리는 공식 발표대회에 영구 출전 자격 정지 상태입니다. 물론, 사고를 쳐서 그런 건 아니고, 이전 대회에서 1등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출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화학 분야에서 제일 크다는 학회의 구두 발표도 이렇게 떨리지 않았습니다. 100명 남짓, 소수의 학자들이 모이는 학회에서도 이 정도로 긴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그룹 미팅 발표는 그런 공식적인 학회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교수님과 제 '스타일'이 다르다는 게 문제입니다. 교수님은 항상 어떤 '스타일'을 강조합니다.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뭔가 임팩트 있는 발표를 기대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교수님의 '스타일'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항상 발표를 하면 꼬투리를 잡힙니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말입니다. 이건 마치, K팝스타에서 언급된 '공기 반, 소리 반' 창법에 대응할 법한, 아주 신비하고, 미스터리한 비법입니다.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저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런 발표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드디어 그 전설의 '공기 반, 소리 반' 발표를 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의대에서 세미나 스케줄을 발표했는데, 제 지도 교수님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전설의 세미나 비법을 볼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청중에 묻혀, 조용히 듣게 되었습니다.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거의 기관총이 불을 뿜듯, 다연장 로켓이 날아가듯, 쉴 새 없이 전문 용어들이 날아다니고, 화면의 ppt는 쉴 새 없이 지나가고, 듣던 사람들은 숨을 쉴 틈도 없었습니다. '저분은 래퍼를 꿈꾸던 과학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틈을 주지 않던 발표, 장담컨대, Jay-Z, Eminem, Tupac, 세 사람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속도의 발표가 드디어 끝나고,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까?" 첫 번째 질문자가 발표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질문을 하고, 두 번째 질문자 역시 동떨어진 내용에 관한 질문, 그리고 정적…
"일반적으로 40%의 청중이 이해를 했다면 그건 매우 성공적인 발표라고 볼 수 있지. 대게는 30%도 이해를 못 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이해를 하는 게 맞을 거야. 아주 뛰어난 발표자, 예를 들면 마크 같은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청중들을 압도하지만 말이야... 발표 후에 질문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발표가 지나치게 완벽했거나, 청중이 거의 이해를 못 했거나..." 예일대학의 마크 교수님의(Mark Johnson) 발표를 보고 난 후에 저의 박사 지도교수님이 하셨던 말입니다. 저도 오랜 시간을 연구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40% 정도의 좌중을 이해시킬 만한 세미나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밖에 기억이 안 납니다.
아무튼, 이제 그 비법, 그 스타일을 봤습니다. 마치 동방불패의 규화보전을 손에 얻은 것 같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PPT을 작성합니다. 속사포 랩을 구사하려면, 일단 ppt의 양이 많아야 합니다. 엄청 많이 만듭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형형색색을 사용합니다. 글자의 폰트도 교수님이 좋아하는 것으로, 아무튼, 오직 그분을 위한 '쇼'를 준비합니다. 말 그대로 이건 '쇼'입니다. 하지만, '쇼'도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내용도 푸짐하게, 이것저것 다 넣고, 묻고, 더블로..
자,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 교수님의 '큐!'사인이 떨어지는 순간, 그냥 속사포 랩으로… 교수님도, 학생들도, 모두 놀랐습니다. 이건 완전히 제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내 만족해하는 모습의 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지나가는구나.'하는 안도의 마음. 그날따라 세미나실의 온도까지 저를 도와줍니다. 온도 조절기가 고장이 났는지, 실내 온도가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숨을 쉬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결국 교수님도 더위는 이길 수 없으셨는지, 슬그머니 나가셨습니다. '기회는 이 때다.'
저의 세미나 원칙은 '청중에게 알기 쉽게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교수님의 부재를 틈타서 재빨리 학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줍니다. 잠시 후, 쉼을 마친 교수님이 돌아오시고, 갑자기 학생들의 질문이 폭주합니다. 계속되는 질문들… '아, 다음엔 적당히 어렵게 말해야겠구나.'라는 뒤늦은 후회. 어쨌든, 그렇게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을 마치고, 세미나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결국 세미나도 커뮤니케이션, 소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의 청중인가를 정확히 알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전문가 집단을 상대할 때는 전문적인 용어를, 비전문가 집단을 대할 때는 전문용어를 피해서,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세미나는 어떻습니까? 청중에 따라서 사용되는 단어와 형식, 내용이 달라집니까? 아니면 계속 같은 내용을 말씀하시나요? 세미나를 잘 하고 싶은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이긴다)'라는 것입니다. 저도 드디어 교수님의 성향을 파악하게 되었고, 이제는 제 발표에 대한 그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룹 미팅, 학과 세미나, 정기적인 학회 등등에서 발표의 기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학계뿐만 아니라 회사 혹은 그 어떤 집단에서도 통하는 방식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옳고, 그르고, 효율적인,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세일즈의 연장이라고 보셔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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