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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박사 일지] 에필로그 - 어디로 가야 할까?
Bio통신원(만다린)
‘역량 있고 유능한 인재 모집’
화면에 적혀있는 문구를 바라보며 나의 역량에 대해 고민하다 문득 6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생활의 마지막 학년, 마지막 학기를 마주한 나의 모습이 대학원 졸업을 앞둔 지금의 내 모습과 겹치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문구를 바라보고 있고, 나는 여전히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라곤, 학력 사항에 적을 수 있는 한 줄이 더 생겼다는 점이었다. 목적지에 대한 작은 씨앗 같았던 고민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럭무럭 자라나 뿌리가 깊은 나무가 되어버렸고 이제는 내가 딛는 한 걸음이 다소 무거워졌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을 거슬러 6년 전 대학교 졸업을 앞둔 때를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맞이해온 졸업들과는 달리 온전히 반갑거나 기쁘지만은 않은 느낌이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또래들이 선택하는 길이었고 나 역시 그런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너무도 많았다. 어떤 회사를 가야 할지, 내가 쌓아온 스펙으로 갈 수 있을지, 어떤 직무를 선택해서 지원해야 할지,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좋을지. 당연히 주어지는 다음 걸음이 아닌 나에게 갑자기 늘어난 선택지와 고민거리들로 머릿속은 복잡했고 모든 것이 막막했다. 대학 생활 동안 나는 그저 학과 전공수업들만 열심히 들어왔던 것 밖에는 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장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내 앞에 다가온 일들을 하나씩 해내는 것에만 몰두해 왔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무거운 후회를 뒤로한 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연구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으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고민 하나를 해결하니 수많은 연구 분야와 수많은 연구실들 중에서 어떤 곳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새로 생겨났다. 인터넷에는 연구실 선택 시에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한 수많은 조언 혹은 충고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조언들이 나의 상황에도 적용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였으며 어떤 충고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수의 조언을 따르려 노력하며 희망 연구실 리스트를 만들고 교수님께 컨택 메일을 보냈다. 내가 연구실을 선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다양한 연구 기술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분야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숙련한 다양한 연구 기술이 학위 이후에도 나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날 며칠 몇백 번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후 성적표와 함께 보낸 메일에 회신을 받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연구실에 티오가 없다는 답장을 받기도 여러 차례였다. 드디어 몇 분의 교수님들께서 면담을 잡아주셨고 기차표를 끊고 달려가 10분 정도의 면담을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열차시간을 기다리면서 종착지가 정해져있는 기차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종착지가 어딘지 모를 나의 방황은 언제 끝나게 될까. 다행히도 방학에 지원했던 연구실 인턴에 합격하면서 한 연구실에서 인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여간의 짧은 인턴 경험이었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대학원 생활을 경험하고 학부 수업과는 다른 분야와 실험들을 경험하고 나니 흐릿하게만 보였던 대학원 생활이 아주 조금은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6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나에게 4학년 여름방학의 인턴 경험은 백지와 같았던 나의 진로 지도에서 첫 점 하나를 찍는 중요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선을 그으려 했던 생각을 버리고 내가 지금 찍을 수 있는 하나의 점을 찍어나가 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준 중요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맞는 연구실을 선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다양한 연구실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무지 어디로 갈지 모르겠을 때에는 어디로든 한 걸음을 내디뎌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역량 있고 유능한 인재 모집’
다시 학위 과정의 끝으로 돌아와 나의 역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하나의 점을 찍어 나가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역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스티브잡스의 명연설 'Connecting the dots'를 떠올렸다.
박사학위 과정 동안 찍어온 여러 개의 점들을 모아 이어보니 일직선은 아니지만 어디론가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어디로 나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론가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다음 점을 찍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박사과정 동안에 겪은 일들과 나의 생각 그리고 감정 속에서 다음 점을 찍을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의 박사일지 연재를 시작한다.
나의 지극히 사적인 박사일지가 어느 누군가에겐 잔잔한 위로를, 누군가에겐 공감을, 그리고 누군가에겐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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