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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후 연구원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 인턴 꼭 해야 하나?
Bio통신원(소금빵)
대학생이 되고 별거 안 한 것 같은데 시간은 흘러 고학년이 된다. 영어 공부를 해야 할까? 실험실 인턴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어느 랩실로 가야 하지? 내가 대학생 때 끊임없이 떠올랐던 고민들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쓰다 보니 대학 생활을 하면서 실험실 인턴, 해외 인턴, 대학원 인턴, 기업 인턴을 모두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경험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하고 싶은 것에 거침없이 지원했다. 해외 봉사, 해외 인턴과 같이 쟁취하고 싶은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확신이 없는 일이면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시도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가 하는 경험들이 자산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보다는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하고 싶은 게 없던 당시 나는 '하기 싫은 건 무엇일까, 안 맞는 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소거법으로 접근했다.
내가 지금 그때 했던 인턴 경험을 이력서에 적지 못하고, 나의 커리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단순하게 도움이 안 된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확신과 판단을 했고 지금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직장인이 된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꽉 차있는 실험 스케줄 속에 내 마음대로 휴가 한 번 쓰기 어렵고 그것마저 눈치를 주는 탓에 작은 선택 하나 자유롭지 않다. 사실 직장 생활 속에서 나의 사사로운 선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해봐야 한다.
인턴이 가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이와 개성이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또, 그 분야를 먼저 걸어온 전문가들을 만나며 고급 정보를 들을 수 있다. 업계의 현 상황, 일의 장단점과 고충, 기관의 미래 방향성과 같은 실무자가 아니라면 얻기 힘든 정보들.
그중 국립생태원은 개개인의 꿈과 열정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생태라는 공통된 관심사 속에 개성 넘치고 꿈이 가득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식생을 잘 아는 사람은 식후 함께 산책을 하며 들판에 핀 꽃과 나무 이름들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를 걸어 다니는 식물 백과사전이라 생각했다. 또, 담수 생물, 포유류, 야생 동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을 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그들과 대화하면서 본 그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살아있는 표정이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온 마음 다 해 응원해주고 싶다.
그림 1. 국립생태원 현장 실습 중
도전했을 때 실패의 두려움과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은 분명 존재한다. 나 또한 꼭 하고 싶었던 스쿼시 연합 동아리와 외국인 교류 리포터에 떨어진 기억이 있다. 불합격 소식을 받으면 당혹감과 억울함, 좌절감이 들며 무기력 속에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것보다 더 큰 좌절감들이 존재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가고 싶었던 직무에 불합격 소식을 받거나 2달이 넘는 채용과정 속에 최종 불합격 소식을 받는다던가. 어렵게 통과한 서류, 인적성이 있을 수도 있고, AI 면접과 인성검사.. 또 1차 면접, 2차 면접... 면접 보기 위한 시간과 교통비... 원하던 기업의 최종 면접에 불합격한다는 것은 석촌 호수 뷰의 최고급 수비드 스테이크로 흐르는 눈물을 달래야만 하는 일이다. 이제는 쿨하게 보내주고 싶은 이 기억에서 남은 것은 단순히 슬픈 감정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실패와 좌절을 마주칠 때면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고 더 좋은 선택이 되기 위한 것이라 강하게 생각했다. 지금 이 일은 나와의 인연이 아닌 것이고 이것이 안 되는 데에는 나중에 분명 나와 맞는 더 좋은 일을 하기 위함 것일 거라 흔들림 없이 생각했다.
내가 했던 인턴 중 어떤 인턴이 가장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해외 인턴으로 상해에 갔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다가올 무렵 세부 전공 선택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해외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2달 동안 해외에서 지낼 수 있다는 설렘과, 다른 분야를 접할 수 있다는 설렘, 그리고 해외인턴 이름 자체가 설레었다. 상해의 해외인턴은 나의 진로를 전향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자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인턴 이상으로서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다. 나는 해외 인턴을 통해 학문뿐만 아니라 외국 학생들의 랩실 생활과 문화를 경험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림 2. 실험실 사람들과 일과 후 랩실에서 영화보기
우리는 교수님 댁에서 열리는 홈커밍 데이에 초대되어 실험실 OB/YB와 함께 요리하고 게임을 했다. 한국 대표로 부대찌개를 선보였고 학생들이 교수님 댁 부엌에서 요리 한 가지씩을 만들었다. 부족한 재료였지만 중국 현지 식료품 가게에서 장도 보고 마법의 라면 수프 도움으로 그럴듯한 부대찌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든 부대찌개가 너무 맛있다며 열정적으로 먹은 중국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고 뿌듯했다. 식후에는 교수님과 부루마블도 하고 (심지어 졌다) 중국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대표 술 게임 중 하나인 ‘바니바니’도 전수해주며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림 3. 실험실 사람들과 교수님과 보드게임을 하는 모습
기숙사에 머무르는 저녁과 주말도 너무 소중했다. 기숙사 안에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학교에는 고양이가 정말 많았는데 나처럼 고양이를 좋아하는 미국인과 고양이를 공통 주제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는 교환학생이 아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알아들은 척을 하며 함께 고양이를 보는 시간이 즐거웠고 위챗 아이디도 주고받으며 지속적인 영어 대화를 시도했었다. 타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였다.
그림 4. 고양이로 하나 된 글로벌
또, 2년 동안 생태학 실험실에만 있다가 미생물 랩실에서 처음으로 Molecular work을 하고, 파이펫을 잡고, BSC를 쓰는 일은 그 당시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중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는 일 또한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깨닫고 공부 동기가 되었으며 조금 더 그들과의 관심사를 만들기 위해 관심 없던 HSK를 공부하며 중국어에 대한 작은 관심도 키웠다.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모두 순수했고 나의 편협했던 시각과 편견을 지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조교와 종종 이메일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다. ‘We are korean students’로 시작한 2017년 1월 메일이 2021년까지 이어졌다.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서로 일상이 담긴 사진들을 몇 개씩 주고받는다. 사진을 다시 보니 그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그들이 한국에 학회를 온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뻤고 우리는 한국에서 또 한 번 만났다. 그녀는 외국계 탑 바이오 기업에 입사한다 들었고 나 또한 외국계 기업을 다닌다면 언젠가 외국에서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을 걷다 다른 시간에서 또 우연히 만나는 게 바로 소중한 인연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학연수를 가고 싶고, 외국에 살면서 일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는 퇴사를 하고 거주지를 옮긴 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직장인에게는 대학생 때 보장되는 두, 세 달의 방학이 없고 회사에는 오직 재직과 퇴사, 운이 좋으면 휴직이라는 선택만이 존재한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시간이 보장될 때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그 일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설령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라도.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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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석사를 감염학으로 전공하면서 3차 대학병원 연구원, 비영리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연구 후 현재 대기업에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원의 직무와 업무에 대한 이야기, 감염병과 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연구원의 일상을 글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보통 연구직은 박사학위가 필요하다는 편견을 깨고 석사학위 생명공학도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학부생 때 연구개발 직무는 박사를 꼭 해야 하는지, 연구개발 업무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석사 졸업 후 연구원은 어떻게 되는 건지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글을 통해 생명공학을 전공하시는 후배분들에게는 작은 도움이, 현업에 계시는 연구원 분들에게는 재미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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