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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31] 서울대 이공계가 무너져도
Bio통신원(김우재)
얼마전 흥미로운 칼럼을 읽었다.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무너지고 있으니, 국가적 위기 사태임을 인지하고 이공계 대학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1. 글을 쓴 사람은 과학기술정책학을 전공한 서울대 교수다. 서울대 교수가, 이공계 대학원의 위기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글은 과학기술계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도 아니고,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으며, 무리한 주장으로 많은 가치를 놓치고 있다.
글의 전개 방식과 논증 구조는 지난 반 세기 한국사회의 과학기술인 원로들이 보여준 구태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공계 대학원은 지식의 생산과 혁신의 창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더 이상 이공계 대학원에 학생이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서울대 대학원은 개교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대학원 미달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전공한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더 많은 돈을 이공계 대학원에 쏟아 부어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구태의연한 대답 앞에서, 우리는 한번쯤 물어야 한다.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는 것이며,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가.
이 글의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가장 취약한 논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첫째,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망해도, 한국이 망하지 않는다. 삼성 정도가 망하면 한국이 힘들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서울대는 아니다. 미국도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는 자국 학생보다, 외국인 유학생이 훨씬 많다.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고, 서비스산업이 발전하는 선진국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은 전세계적이다. 필자가 교수로 있는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둘째, 정말 이공계 대학원의 위기가 국가의 발전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글쓴이가 과기 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라면, 좀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해야 했다. 그 구조적인 원인을 알아내는 질문이란 이런 것이다. 도대체 “왜 청년들은 대학원에 가려 하지 않는가?” 나아가 “과연 대학원이란 필요한가?”
재미있게도, 서울대 교수의 글은 대학생들이 대학원에 가지 않으려는 구조적 원인을 이미 잘 짚어내고 있다. 필자가 이미 몇 편의 글에서 지적했듯이2, 이공계 대학원은 이미 구조적으로 붕괴하는 중이다. 문제는 서울대 교수의 글에 분명히 그 이유가 기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조적 원인을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썼다. “대학 내 연구 문화도 무너지고 있다.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를 선택할 때, 예전에는 연구 분야의 관심과 전망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건비'가 가장 중요하고 출퇴근 시간 등 '근무 여건'을 따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제 관계가 노사 관계가 되고 있다”며 한탄한다. 학부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바로 그 이유, 대학원생들이 사제관계를 노사관계로 만들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이유는, 대학원이라는 낡은 체제가 보여준 현실적 무능함과 인권에 대한 무감각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대 교수가 한탄하는 그 세태의 원인은 학생이 아니라, 서울대 교수와 대학이 제공한 것이다.
과기정책을 공부하는 교수라면, 선진국의 사례를 좀 더 다각적이고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일 수록, 대학원에서 사제 관계는 노사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노사관계로의 이행은, 대학원생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의 귀결이다. 심지어 노사관계로의 이행이 연구역량에 부정적인 역할을 미친다는 보고조차 없다. 결국, 서울대 교수는 대학원생 인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보다, 교수의 연구적 편이를 더 우위에 두는 무리수를 써가며,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애써 무시한다. 이공계 학부생들은 더 이상 대학원에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글을 쓴 서울대 교수 같은 이들이 대학원에서 학생의 인권을 유린하며 자신의 배만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의 그 다음 말은 더욱 경이롭다. 그는 정출연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열악한 여건에서도 묵묵히 일해 실력과 실적으로 인정받는 과학기술계의 신뢰 구조”가 깨졌다고 말한다. 발언의 맥락을 어느정도 감안해도, 이건 망언에 가깝다. 그러니까, 과학기술계의 일원은 열악한 여건에서 묵묵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게 과학기술계의 권익을 위해 연구하는 과학기술정책 교수의 글에서 등장할 법한 말인지 좀 의심스럽다. 과학기술인이 그렇게 중요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 나라가 혜택을 보고 있다면, 과학기술인에 대한 혜택은 더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 그게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서울대 교수는, 그저 자신의 직장이자 밥그릇인 대학원에 좀 더 많은 지원을 바란다는 글을, 그것도 제대로 된 근거와 논증조차 갖추지 않고, 보수 유력 일간지에 실어 공론화한 것이다.
대학원생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없고, 과학기술인 노동권에 대한 인식도 없는 글이, 단지 서울대 교수라는 권위로 버젓이 신문에 실린다. 그리고 글은 오로지 하나의 방향을 겨누고 있다. 그건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라는 아주 특수한 곳에 대한 지원이다. 누구나 자신의 밥그릇을 채우려고 살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밥그릇을 챙기려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이공계 대학원의 문제는 다층적이다. 그걸 다시 정부의 지원으로 덮는다면, 불과 5년도 못돼서 한국 이공계 대학원은 다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한다. 대학원에 가지 마라. 그리고 굳이 이공계 대학원에 가려거든 서울대를 피해라. 특히 저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글에서 말했듯이, 서울대가 아닌 지방의 5개 과기원이 훨씬 더 좋은 선택지다. 거기선 대학원생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과, 대학원생의 임금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군 면제도 지원되며, 적어도 서울대처럼 갑질을 하는 교수의 숫자가 훨씬 적다. 물론 대학원에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굳이 가려거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서울대는 피했으면 좋겠다. 거기엔, 과학과 기술이 있을진 몰라도 인권과 다양성이 없다. 영혼 없는 과학기술은, 언젠가 국가에 독이 된다.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무너져도, 한국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우습지 않다. 무너지는 건, 서울대라는 기득권을 틀어쥐고 한국을 망가뜨려온, 한 줌도 안되는 과학기술계의 이기적 집단일 뿐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인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주석
1 [과학과 사회] 서울대 공대·자연대 대학원이 무너진다. 조선일보. 박상욱 서울대 교수·과학정책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06/2018120604206.html
2 대학원 가지 마라.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91754
대학원에 가려거든.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6886.html
김우재 – 급진적 생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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