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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인플루엔자 팬데믹 이야기 2.] 1918년 팬데믹을 연구하게 되기까지
Bio통신원(김택중)
연재 첫 원고 기고 후 어느새 석 달여가 흘러 버렸다. 공백이 너무 길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친 탓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상식적인 수순일 터이나 곤란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지난 첫 연재 글의 마지막을 하필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하나씩 천천히 풀어나가 보겠다는 문장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다소 후회스럽긴 하지만 공언(公言)을 공언(空言)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본론에 앞서 부득이 개인적인 이야기로써 우회로를 거치게 되는 점, 먼저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한다.
내가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 무렵이다. 시내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지나 콜라타(Gina Kolata)의 저서인 『독감 Flu』의 번역서를 구입한 것이 그 직접적인 출발이었다.1) 이 책에는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원인과 기원을 추적하는 내용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저널리스트의 저서답게 추리소설의 방식을 차용하여 마치 주인공들과 함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서술한 까닭에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왜 서점의 많고 많은 책들 중 이 책에 끌려 구입까지 했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딱 잘라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 하나를 들라면 이 책이 제법 괜찮은 번역서였다는 사실이다. 좋은 번역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편하게 읽힌다. 매끄러운 번역과 이에 따른 높은 가독성(可讀性)이 책의 구입에 한몫했던 것이 분명하다. 물론 역자가 ‘인플루엔자’ 또는 ‘플루’의 번역어로 ‘독감’을 택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인플루엔자는 그저 증상이 독하기만 한 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독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용어이다. 따라서 역자가 인플루엔자 또는 플루 대신 독감이라는 번역어를 택했다 해서 나무랄 일은 못 된다. 기실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도 서구인들이 관행적으로 쓰다 보니 굳어진 용어일 뿐 그 어원은 우리가 지향하는 과학과는 거리가 먼 점성술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음으로, 책을 구입하게 된 좀 덜 표면적인 이유도 언급을 하는 편이 좋을 성싶은데 그것은 나의 전공 분야와 관련이 있다. 나는 학부에서 미생물학과 의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부전공까지는 아니지만 순전히 개인 관심사로 사학과 학생들만 수강하는 전공과목들을 부지런히 수강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한때는 내가 속했던 학과의 교수들보다 사학과 교수 한 분과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역사학에 대한 이러한 관심 이상의 관심은 미생물학을 전공하면서는 과학사학(history of science)으로, 의학을 전공하면서는 의사학(history of medicine)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결국 의사학자(醫史學者)라는 지금의 직업 정체성을 갖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4년 무렵의 나는 일종의 모라토리엄 인간으로서 여전히 그것도 아주 열심히 갈지자 행보 중에 있었다. 그 와중에도 관심의 끈을 놓기 싫었던 것이 부지불식간 지나 콜라타의 책을 구입하게 된 실존적 배경이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나는 지나 콜라타의 책과 만나기 전까지―워낙 과문했던 탓도 있겠지만―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나 콜라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학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지만 저서의 서문에서도 밝혀 놓았듯 집필에 착수할 마음을 품게 되었을 무렵에야 비로소 1918년 인플루엔자라는 존재의 역사적 무게를 깨닫게 되었던 듯하다. 이는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20세기의 역사에서, 그리고 20세기 역사학자들의 뇌리에서 철저히 잊힌 사건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에서 나는 번역서의 앞표지에 부제 형태로 기재되어 있던 “전 세계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독감 대유행의 미스터리”라는 문구를 처음 접했을 때 판촉을 위한 출판사 측의 과장이 도를 넘은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래 봤자 기껏 독감 아닌가? 아무리 20세기 초라지만 독감 유행으로 2,000만 명이나 사망을 하다니!
훗날 호기심에 미국에서 출간된 원서의 앞표지를 한번 확인해 본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원서 표지에는 위에 언급한 번역서의 문구가 들어 있지 않았다. 도발적인 문구로라도 독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고자 한 국내 출판사의 얄팍하면서도 한편으론 불가피한 전략과 더불어 열악한 국내 출판 시장의 실상을 잠시나마 엿보았던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역시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2,000만 명이라는 사망자 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가장 보수적인 통계 결과에 해당한다. 가장 낮게 산정한 수치인 것이다. 더욱이 이를 1918년 당시 세계 추정 인구 18억 명이라는 전체상에 놓고 비율로 환산하면 약 1.1%라는 한 자리 단위로까지 급감해 버린다. 겨우 1.1% 사망?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악성 유행병을 뜻하는 역병(疫病)의 창궐이 수시로 인류에게 끼친 그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비추어 보았을 때 1.1%란 혹여 대수롭지 않은 수치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1.1%에 해당하는 2,000만 명 대부분이 1918년 8월부터 불과 6개월여의 단기간 동안 우리가 별 것 아닌 듯 여기는 바로 그 ‘기껏 독감’으로 희생된 것이라면?
좀 더 실감나게 1918년의 상황을 100년 후인 2018년 현재의 상황에 단순 대입해 보자. 2018년 현재 전 세계 인구는 76억 4천만여 명으로 100년 전에 비해 무려 4배 이상 늘어났다.2) 그런데 이 76억 4천만여 명의 1.1%에 해당하는 8,400만여 명이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최근 6개월 사이 1918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부국과 빈국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곳곳에서 갑자기 죽어 나갔다면? 아마 글자 그대로 지구상에 종말론적 지옥도가 펼쳐졌을 것이다. 지난 2009년의 이른바 ‘신종 플루’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했던 사회적 혼란상을 떠올려 보면 이를 단순한 억측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21세기 들어 첫 인플루엔자 팬데믹으로 기록된 2009년 팬데믹은 동년 4월 멕시코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 2010년 8월 WHO가 공식적인 종식 선언을 할 때까지 16개월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유행 첫 12개월간의 전체 추정 사망자 수는 28만 4천여 명으로 1918년 팬데믹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었다.3) 사실 이 정도의 사망자 수는 매년 겨울철마다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일반적인 계절 인플루엔자(seasonal influenza)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팬데믹이 던진 사회심리적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때 나는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로 한 종합병원에서 수련의 근무를 하고 있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사자성어도 있듯 어설픈 앎은 도리어 화근으로 작용하는 법이다. 당시 언론 등을 통해 신종 플루의 원인 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 A형 H1N1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접하고 나는 곧바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하였다. 다름 아닌 1918년 팬데믹을 일으킨 바로 그 바이러스와 동일한 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잊고 있던 지나 콜라타의 책, 그리고 예의 그 2,000만이라는 숫자와 함께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졌고 나는 곧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조만간 병원으로 밀려들 수많은 독감 환자들과 시체들에 둘러싸이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착잡한 심정이 된 나는 어떻게든 감염을 피해 볼 요량으로 의료용 방역 마스크를 개인 구매해서 착용도 해 봤다. 하지만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2009년 8월 15일 마침내 한국에도 신종 플루로 인한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혼란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도 마찬가지였지만 시내의 정부 지정 거점병원들은 신종 플루 또는 유사 증상의 환자들로 장사진을 쳤다. 이제 나보다 더 심한 불안에 휩싸이게 된 사람들은 열과 기침이 조금만 나도 놀라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신종 플루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겠다며 확진검사를 신청하였다. 온종일 이들과 씨름하느라 녹초가 된 전공의 선생들을 저녁에 병원식당에서 만나면 당일 자신이 수행한 검사 건수와 더불어 이런저런 무용담을 씁쓸히 늘어놓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상황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대략 2개월여 정도 지속되다가 조금씩 평상시 모습을 회복해 갔던 것 같다. 그 사이 마스크 생산 업체들은 대박이 났을 것이고, 치료제 타미플루(TamifluⓇ)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던 스위스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Roche)의 주식은 당연하게도 폭등하여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리고 나는 박봉의 수련의 주제에 주식 시장이 아닌 지나 콜라타의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려 이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무리수를 범하였다. 망각된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더불어 한껏 고조된 나의 종말론적 상상력은 묘하게도 역병이 초래한 과거의 묵시록적 참화들에 대한 도착적인 연구욕으로 이어졌다가 연말이 되면서 평균적인 계절 인플루엔자 수준으로 사그라진 신종 플루와 함께 거품처럼 꺼져 버렸다. 어느새 수련의 생활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나는 또 다시 그 이후의 삶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2010년 8월 말 질병관리본부는 신종 플루로 759,678명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이 가운데 270명이 사망한 것으로 최종 집계했다.4) 환산하면 치사율 0.04%로 사회에 미친 파장에 비하면 실로 미미한 역학(疫學)적 결과였다. 그러나 이와는 상관없이, 사망한 270명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는 과제는 언제나 그러했듯 사회가 아닌 오롯이 그 가족과 개개인의 몫으로 돌아갔다.5) 차가운 통계 수치로 정리된 채 간결히 표현될 뿐인 역학 연구 결과의 이면에는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아픔이 감추어져 있기 일쑤다. 내 전공 분야인 역사학을 포함한 통칭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가 이 지점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인문학은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사람 및 사람의 활동 결과를 그 탐구 대상으로 한다. 달리 말해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원상으로도 인문학의 인문(人文)이란 곧 ‘사람(人)의 무늬(文)’ 혹은 ‘사람(人)의 결(文)’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6) 곰곰 생각해 보면 인문학의 대표 분야라 불리는 문학, 사학, 철학이 모두 그러하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인문학이 과학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과학이 비인간적인 학문이라거나 인간과 상관없는 학문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며, 해묵은 이과-문과 논쟁을 다시금 거론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인문학이 사람과 그 삶에 대한 학문임을 새삼 환기시키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구색을 제대로 갖춘 인문학적 연구 결과는 연구자 자신을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숙고 없이는 나오기 어려우며, 급조된 정부 정책연구과제 집행하듯이 어느 순간 뚝딱 만들어져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과 관련한 역사 논문을 발표한 것은 지나 콜라타의 저서를 접한 지 13년이 흐른 2017년 2월의 일이었다.7) 내 논문이 무슨 구색을 제대로 갖춘 우수한 연구라는 언어도단의 주장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나의 이 연구가 나의 과거사, 곧 내가 그린 무늬인 인문(人文)과 긴밀히 연결된 결과라는 것이다. 요컨대 학문은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번 연재에서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을 연구하게 되기까지의 관련 여정을 사소한 부분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진짜 이유이다.
사진 설명: 2009년 ‘신종 플루’ 팬데믹의 기억이 반영된 영화 두 편. 팬데믹 종식 1년 후인 2011년에 먼저 개봉한 미국 영화 「컨테이젼 Contagion」은 화려한 캐스팅과 달리 사실적 묘사에 치중한 진지한 영화이다. 극영화임에도 마치 다큐멘터리 같아서 의대생 교육용으로도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2년 후인 2013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감기 The Flu」는 180도 다른 영화로 과장이 심하고 매우 자극적이다. 연출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나름 그로 인한 영화적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말 제목을 왜 굳이 ‘감기’로 붙였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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