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역의 한 생태 대안학교에서 토끼와 염소가 새끼를 잃는 광경을 잇달아 목격했다. 토끼의 경우 새끼를 낳는 광경이 외부에 드러나면 새끼를 죽인다는 속설이 있다. 이번 경우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 드러난 건 없지만 토끼의 새끼들은 죽었다. 또한 배가 불룩하던 염소는 새끼를 잃고 지금까지 우울증에 걸린 듯 힘이 없다.
새끼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똑같을 것이다. 그런데 새끼를 죽인 토끼의 행동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힘들 게 수태하고 낳은 새끼를 죽이다니. 새끼를 죽이는 부모의 이상 행동은 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동물들의 유아살해는 대개 자연적 현상으로 간주되는데, 사실 좀 더 큰 시각으로 살펴보면 진화(생존)의 악순환일 수 있다. 새끼를 죽여야 더 강한 종이 유전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제는 유아살해라는 참극을 불러오는 것이다.
지난 3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캐나다 유콘주에서 발생한 붉은 다람쥐의 유아살해에 대해 설명했다. 앨버타대 연구진이 목격한 수컷 붉은 다람쥐는 새끼를 죽이고 먹었다. 붉은 다람쥐들은 아기 토끼, 새끼 새, 새의 알 등을 먹는다. 처음 붉은 다람쥐의 유아살해를 본 것은 2014년도다. 표식을 해두었던 수컷 붉은 다람쥐는 암컷 붉은 다람쥐와 새끼들이 있는 둥지로 달려가 이를 갈며 새끼들을 위협했고 죽였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연구진의 DNA분석에 따르면, 새끼를 죽인 건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다. 특히 먹이가 풍성한 시기에 수컷 붉은 다람쥐의 유아살해는 급증했다. 이는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먹이가 많기 때문에 암컷 붉은 다람쥐가 두 번째로 자식을 낳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첫 번째 교미에서 암컷 붉은 다람쥐는 많은 수컷과 교미를 하기 때문에 수컷의 입장에선 누가 자신의 새끼인지 모른다. 그런데 새끼를 죽이면 암컷이 더 이상 젖을 물리지 않아 짝짓기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범고래의 경우 수컷이 자신의 어미와 함께 다른 암컷의 새끼를 죽이는 게 발견됐다. 캐나다 밴쿠버 섬 연안에서 28살의 암컷 범고래가 새끼들과 가고 있었는데, 32살의 수컷 범고래와 그 수컷 범고래의 46살 어미가 접근했다. 수컷 범고래는 새끼 한 마리를 낚아채 익사시켰다. 그러는 동안 그 수컷 범고래의 어미 고래는 젊은 암컷 범고래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연구진은 32살의 수컷 범고래가 28살의 암컷 범고래와 교미를 하기 위해 새끼를 죽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왜냐하면 새끼 범고래를 잡아먹은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선 돌고래 역시 새끼를 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물학자 위-에드워즈(V.C. Wynne-Edwards)는 “생물집단은 자체 조절 기제를 진화시켜왔다”고 말했다. 낙태와 유아살해 역시 생명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진화의 원동력이다. 식물은 광합성의 정도와 토양에너지를 이용하여 성장을 한다. 토마토의 경우 그늘이 많이 지거나 광합성을 할 잎이 적으면 꽃이나 열매 일부의 발육을 정지시킨다. 오이의 경우 자화 수분된 자식들보다 교차 수분된 자식들에 더 에너지를 쏟는다. 자화 수분된 자식들의 생명력이 약하기에 이들을 고사시키고 대신 모든 영양을 교차 수분된 오이들한테 공급하는 데 힘쓴다.
낙태와 동족살해, 유아살해의 경향은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다. 식물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에서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유목 사회에서 여러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 어려워 쌍둥이 중 한 명을 살해하는 게 당연시 되었다. 이는 일종의 ‘진화적 압력’이다. 한 실험에 따르면, 물고기가 어린 새끼 일부를 먹을 때와 포식자가 그들의 새끼를 죽일 때 살아남은 새끼들의 개체 수는 신기하게도 같았다. 오히려 일부를 먹음으로 인해 나머지 알들이 위험을 직시하며 더 빨리 발달해 생존의 기회가 높아진 것이다. 이래저래 새끼들만 불리하고 불쌍하다.
하누만 랑구르 원숭이 사회는 지도자가 자주 바뀐다. 새 지도자 수컷은 젖을 떼지 않는 새끼 대부분을 살해한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던 암컷들을 곧바로 발정기에 이르게 하여 자신의 생식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바다사자와 북극곰 역시 짝짓기 상태인 암컷에 새끼가 딸려 있을 경우 새끼를 죽여 버린다.
그런데 인위적 환경 속에서 생물들의 번식 전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투브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보면 수컷 북극곰이 새끼를 잡아먹는다. 북극의 생태계, 더 나아가 북극곰의 생태계의 차원에서 여러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곰의 식량이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북극곰은 새끼를 잡아먹고, 암컷 북극곰은 몸부림을 치다가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최근 들어 동물들의 서식 환경은 인간에 의해 많이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각종 화학물질의 배출과 규모를 상상하기 힘든 벌목과 이에 따른 생물들의 생존지 박탈, 기온 상승 등 이상 기후의 확산은 민감하고 취약한 동물들의 행동과 생식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투명환 환경 하에서 토끼, 쥐, 비버, 진딧물 등 여러 생물들은 배아를 체내로 흡수해버린다.
행여 낳더라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며 불필요한 양육에 드는 에너지를 아낀다. 어떤 어미라도 자신의 아이가 죽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생존과 생식을 위한 자원이 부족해 자신의 소중한 새끼를 죽여 스스로의 생존을 높이는 데 힘을 쓰는 모습들은 참 안타깝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환경재해에 따른 생태계 교란의 위험을 이미 경고한 바 있다. 새는 특히나 환경 여건에 민감한 동물이다. 어미가 새끼에게 제공할 먹이, 공간 등의 양육능력은 인간의 활동들로 달라지고 있다. 새들이 만족하는 건강하고 풍부한 자원들이 부족해지고 있다. 앞으로 새들은 알을 더욱 적게 낳을 것이며 심지어 낳지 않는 해도 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새들에게 알을 적게 낳으라고 부추기고 있어, 진정 침묵의 봄이 다가오는 셈이다.
작은 우리에 갇힌 햄스터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 철장 속 토끼들이 새끼를 낳고도 젖을 물리지 않아 죽이는 이유, 동물원의 어미 늑대가 불안하게 이리저리 걷다가 새끼를 몰래 먹어 치운 이유, 생존 불가능한 공간과 먹이 그리고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낙태와 유아살해는 적응의 의미가 크다.
유아살해는 ‘살해’에 초점을 두면 안 된다. 환경에 따른 한 종의 최대 ‘번식 전략’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제 동물들의 번식 전략은 자신이 살아남느냐 후손을 남기느냐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 부모들은 미래의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아끼려 한다. 불안한 환경 속에서 외부 침입을 경계하는 본능 아닌 본능이 커지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 환경 속에서 새로운 진화적 압박은 다른 개체들의 진화 적응성을 손상시킬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익이 되는 일들이 장기적으로 누구에게 불이익이 될지는 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