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내가 겪었던 세미나들은 규모가 큰 행사였다. 그때 참여했던 세미나는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사들이나 교수님들이 참여했고, 내용은 전문적인 내용부터 일반인을 위한 기초적인 내용까지 아주 천차만별이었다. 세미나 진행 보조를 위해 단상 밑에서 바라보고, 서로 간에 오가는 질의응답을 지켜볼 때면 어떻게 저런 내용을 즉석에서 생각하고 정리하는지 감탄만 나왔다. 한편으로는 저분들이 처음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졸업한 연구실에서는 매주 랩미팅 때, 세미나를 같이 진행했다. 모든 실험원이 돌아가면서 일주일간 연구한 내용을 보고하고 나면 한 명이 연구주제와 관련된 논문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논문 세미나를 진행했었다. 처음에는 부담이 컸다. 논문을 읽는 것도 능숙하지 않았는데, 발표까지 진행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선배가 여러 번 봐주셨지만, 스스로 부담감을 이겨내야 했다. 세미나 준비에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세미나 준비를 하느라 한 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 메일로 발표할 논문을 공유했을 때,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답장. 저 짧은 두 마디에 그날이 천천히 오기를 어찌나 바랬던지.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차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발표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발표자료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당연히 줄어들었고, 실력도 조금씩 올라갔다. 특히 논문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빨리 찾는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었던 것 같다. 세미나 전에 논문을 마치 내 연구인 것처럼 발표하려다 보니 중요한 부분만 빠르게 캐치하는 것이 중요했다. 처음에는 순서대로 읽었던 논문도, 결론부터 읽으면서 동시에 발표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대부분 행사가 줌으로 진행될 마지막 무렵에 대학원에 입학했던 지라, 오프라인으로 처음 참가했던 학회도 제한된 인원들만 학회장에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줌으로 참여해야 했다. 처음 만든 포스터는 파일로 공개가 되었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도 진행할 수 있다는 게 그때는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아무리 랩미팅으로 단련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문가들 앞에서 잘 모르는 초보가 당당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학회장이지만, 발표가 있는 룸에 인원제한이 있어 로비에서 줌으로 참여해야 했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가장 태블릿을 유용하게 썼던 곳은 학회장에서였던 것 같다.
충분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첫 구두발표 때 가장 애를 많이 먹었다. 발표 직전 청심환을 먹었다. 문제는 나한테 청심환이 너무나, 너무나도 안 맞았다는 것이다. 그 발표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다시금 떠올리려고 해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청심환을 먹는 건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청심환이 어찌나 악효과를 냈는지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발표 모습을 찍었다는 동영상은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부디 졸업발표 때는 똑같이 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빌며 연습을 계속해야 했다. 다행히 졸업발표는 첫 학회 구두발표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이후에 더 발표를 잘하는 방법을 배운 건 회사에 들어와서였다. 각을 잡고 배운 것은 아니었고, 사수의 발표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되었다. 자연스럽고 나지막한 톤, 부담스럽지 않은 제스처. 사수가 발표를 잘하는 분이라는 걸 동료들에게 몇 번 들은 후로 박사님의 발표를 보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특강을 하는 곳에 들으러 갈 수 있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오버해서 강조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주목을 자연스럽게 끌어오는 발표였다. 그에 비해 지금까지 내 발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긴장되어서 목소리는 떨렸을 것이고, 시선처리도 엉망이었을 것이다. 본받아야 할 롤모델이 생겼으니
덕분에 이후 참여했던 발표에서는 그전보다 안정된 모습으로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죽하면 내 망친 발표를 본 사람에게 발표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사람을 통해서 많은 걸 배운다. 아마 발표자료를 굉장히 잘 만들던 선배의 발표를 보지 않았다면, 박사님의 발표를 보지 않았다면, 학회를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처음의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모습 그대로였지 않을까.
많은 학회를 다니면서 배운 건, 학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여전히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들과 더 오랜 기간 분야에 몸 담았던 사람들과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시선을 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며, 나 역시 내가 연구한 분야에 대해서는 한 명의 전문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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