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실험실에서 워싱이라는 건
Bio통신원(김틸다(필명))
학부생 시절 일명 워싱알바라고 불리는 근로를 한 적이 있었다. 학과의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난 초자류를 깨끗이 세척해 정리하고, 피펫팁을 통에 꽂아 멸균시키는 일이었다. 전공 특성이 있고 학생이 하기에 좋은 알바였다. 물론 초반에는 고생을 했다. 초자류 세척이 연구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였기에, 물자국조차 허용하지 않던 연구실이어서 솔과 세제로 세척 후에 증류수나 산 용액으로 추가적인 헹구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무리 더러운 게 묻어있어도 몇 번에 거쳐 건조 후 깨끗한 유리가 유지되게 해야 했기에 복잡한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직접 연구를 하지 않고 워싱만 하는 경우였기에 어떻게 실험이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덕분에 아주 작은 꿀팁을 많이 배웠다. 솔의 크기를 알맞게 쓰지 않으면 내부의 이물질들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거나, 세제를 희석할 때는 어떤 비율로 사용하는 게 좋은지, 산을 이용하여 세척하는 방법이나, 세척기에 올바르게 세팅하는 방법까지. 나중에 연구실에 있다 보면 가장 기초라고 생각할 내용들을 그때 그 방의 대학원생 선배님들께 자세히 배웠다. 그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연구할 때 잘 사용하고 있으며, 후배가 생겼을 때나 실험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 가르쳐줄 때 그 이유까지 설명해 줄 수 있는 기초가 되어주었다. 그때는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 와서야 그 선배님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일을 할 때도 워싱은 민감했다. 세척기를 사용하면 워싱은 훨씬 편리하고, 실제로 요즘은 세척기를 사용하는 실험실이 많지만 세척할 초자류가 적거나 기기보다 꼼꼼한 세척이 필요할 때는 모두 손으로 세척을 진행했다. 특히나 숙련도 시험과 관련된 업무를 진행하게 되면, 건조기에서 물 한 방울도 남지 않게 초자를 말린 후 헹궈지지 않는 시약이나 시료가 남아있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차이가 확실하지 않아도 분석 결과가 안 좋으면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바이러스 관련 시료 채취나 실험을 하게 되면 락스를 희석한 물로 세척을 했다. 아주 작은 만약의 원인도 그 과정을 통해 실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랬던 내가, 처음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놀란 점은 생각보다 세척에 대해서 예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하는 실험실이었기에 일일이 모든 초자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도 상황에 따라서 세척의 중요도가 달라지곤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하는 실험은 미생물 배양이고, 배양과 관련된 초자류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전에 알바를 하던 실험실이 유독 워싱에 민감해서였는지, 멸균기를 돌려도 남아있는 찜찜한 마음에 유독 다른 선배들에게 투정을 부렸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세척을 제대로 하자고. 하지만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는 학교 연구실에서 그러기는 정말 어려웠다.
당시에 유독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원인은 실험하던 물질들이었는데, 산업물을 재활용하여 배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초자류를 사용했다. 특히 제조하는 배지의 양이 많아질수록 많은 초자류를 사용했다 보니, 정작 내 연구를 할 때면 급하게 초자류를 씻어서 멸균하거나 했었다. 사람이 많은 연구실에서는 서로를 배려해야 하는 당연한 상황이었으나, 각자의 연구주제가 다른 상황에서는 내 연구만으로도 급급하여 상대방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곤 했다.
한 번은 제대로 세척되지 않은 보틀을 멸균한 적이 있었다. 약간의 당이 있어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병의 안팎에 붙어있었는데, 당시에 내가 멸균기에 넣지 않았던 보틀이었기에 어떤 물질인지, 어느 과정에서 생겨난 오염인지 알지 못했었다. 공통적인 주제로 연구하는 팀원들을 믿고 서로를 의지하며 연구를 진행해야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믿음이 흔들렸다. 결국 나중에는 서로 초자류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고, 기왕이면 잘 씻는 내가 씻자는 마음으로 다시 세척해서 널어놓거나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만족하는 선까지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후 다행히도 연구에 따라 초자류를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문제는 해결되었다. 나중에는 왜 그렇게 서로 예민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로의 연구를 생각하면 날이 설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워싱이 힘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양과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환경이었다. 세척기를 사용하면 고온으로 세척 후 건조까지 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세척기가 없는 실험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한 번 플라스크로 배양을 하고 나면 혼자 싱크대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로 초자류가 잔뜩 나왔다. 세척할 때만 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먼저 쉬어질 정도였으니. 아무리 장갑을 끼고 해도 끝날 때쯤엔 손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대학생 때는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핸드크림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그 많은 초자류를 뽀득뽀득하게 닦아 건조기에 넣어놓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했다. 다음 실험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거지까지가 요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설거지는 요리의 마지막이자 다음 요리의 시작이 되어준다. 워싱도 마찬가지였다. 실험을 하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일이었고, 오염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였으며, 다음 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요즘은 플라스틱으로 된 일회용 초자류가 정말 다양하게 많이 사용된다지만, 아직까지 유리 초자류는 많이 사용되고 또 그만큼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멸균 과정을 필수로 하는 미생물 실험실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게 될 테니 워싱은 연구실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일로 계속될 것이다. 일상을 소홀히 한다면 연구에도 지장이 갈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실험을 좋아하지만 공부가 어려워 항상 뒤처졌던 실수 많은 연구원의 엉망진창 성장기. 실험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대학원 졸업 후 여전히 고군분투 중. 지금까지 겪었던 수없이 많은 실험실에서의 실수와 연구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른 연재기사 보기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