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연구자로 살아가기 시즌 2]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 행정하는 과제 연구원
Bio통신원(날다비(필명))
연구 행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소속 기관이나 외부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아서 사용한 내역을 관련 시스템에 업로드하고 일정 기간 내에 정산하는 시스템이다. 크게 해당 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원의 인건비, 실험에 필요한 소모품 등을 구매하는 재료비, 금액이 다소 큰 장비를 구입하기 위한 장비비, 기타 연구에 필요한 출장이나 실험 분석, 학회 등에 지급되는 연구 활동비 등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연구 혁신법에 따라 항목의 구분이 최소화되고 연구비 지급 관련해서 자체 규정에 따라 사용가능 하도록 하는 추세이긴 한데 예전에는 연구 계획서를 작성할 때 재료비 항목에서만 해도 어떤 품목을 얼마만큼 살 것인지도 예측해서 작성해야 했다. 아마도 연구비의 부정 집행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연구에 대해 기간 내 뭘 얼마나 살 건지를 미리 예측해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싶을 때가 있었다.
@ NTIS hompage
연구비를 주는 기관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NTIS에서 각 부처별 사업 담당 부서가 과제 공고를 내면 연구자들이 본인과 연구 방향이 맞는 분야에 과제 계획서를 작성하여 신청할 수 있다. 총 과제 기간이나 연구비 등은 이제 막 랩을 꾸린 책임 연구자나 포닥이 신청할 수 있는 신진 연구자 과제부터 시작해서 중견 연구자 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과제 기간은 최소 6개월부터 길게는 5년 정도가 있는데 각 연차 별로 집행할 수 있는 금액이 있고, 총 금액 중에서 크게 인건비와 재료비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연구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연구소 내 규정에 인건비 지급 하한선과 상한선이 있었다. 학사 졸업자, 석사 졸업자, 박사 졸업자를 각각 구별해서 지급 규정을 만들었는데 연구비를 충분히 운용할 수 있는 책임 연구자의 경우에도 상한선을 핑계 아닌 핑계로 인건비 인상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인건비 하한선이야 최저 시급 이상을 받기 위해서라도 있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상한선은 웬 말인가 싶었는데 연구 행정을 하다 보니 불합리해 보이던 규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현 시스템에서 책임 연구자가 일정한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기간에 따라 연구비가 빠듯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주어진 기간에 연구비를 다 소진하지 못할 만큼 남아 돌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총 연구 기간 중 1년 단위로 소진해야 할 연구비가 정해져 있어서 그 기간 내에 사용하지 못한 경우 남은 돈은 다시 회수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최근에는 총 연구 기간 내에서 연구비 이월이 가능하게 되면서 유동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총 연구 기간 중에서 항목 별로 연구비 사용 금액이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1년 단위로 제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긴 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대부분의 과제가 1년 단위로 정산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다소 귀찮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산도 연구 기간의 마지막 해에 한꺼번에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연구 기간 내 연구비 운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기간이 3년 이상 넘어가게 되면 한 번에 정산해야 하는 규모가 커져서 힘들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회계 법인을 통해 상시 점검을 하기도 한다.
중견 연구자 이상의 과제 같은 경우 연구비 규모가 꽤 크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는 꼭 필요하다. 게다가 이제까지는 각 부처 별 연구비 관리 시스템들이 제각각이어서 다양한 부처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때 서로 다른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는데 아직 시험 단계이긴 하지만 최근 다양한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학교나 연구소 등에서 연구 행정 전반을 지원해 주는 부서가 따로 있긴 하다.
하지만 랩 전체의 세세한 행정까지 신경 쓰기엔 여력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랩에서 실험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때 여러 업체를 알아보고 견적을 비교한 후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게 주문을 하면 물건을 납품받아서 세금 계산서 혹은 연구비 카드로 결제한다. 결제 시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는 경우는 업체에게 계좌 이체까지 한 후에야 완전히 끝이 난다. 단순히 물건 하나를 한 번 구매하는 경우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구에 필요한 물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고 한 번에 몰아서 구매하기도 힘들 때가 있다. 게다가 이러한 랩이 각 학교나 연구소 혹은 기관에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일을 연구 행정을 지원하는 부서에서 다 처리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규모가 큰 연구비를 받은 랩에서는 행정만 전담하는 연구원을 따로 뽑기도 한다.
학사 학위 만으로도 충분하고 심지어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괜찮다. 이러한 행정 연구원은 랩 내 연구원들이 필요한 물품에 대한 견적을 받아주면 주문부터 결제, 인건비 지급이나 랩에서 필요한 사무를 본다. 물론 이들의 인건비도 연구비에서 지급이 된다. 한 번 행정 연구원의 손을 빌리게 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책임 연구자나 연구원들이 훨씬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처음 랩을 꾸리 거나 연구비가 넉넉지 못한 경우에는 책임 연구자나 랩 내 연구원이 돌아가면서 행정을 같이 하는 경우가 있다. 행정을 함께 한다고 급여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결원이라도 생기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라진 영수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행정이 시스템화되어 있어서 일정 기간 내에 물품에 대한 지급 결재를 올려야 하고 지급되어야 하며 전자 결재를 통해 첨부된 파일들이 보관되기 때문에 걱정할 게 없다. 이러한 행정 시스템의 진화는 업체 측 입장에서도 물품에 대한 결제가 밀리지 않고 제 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환영할 일이다.
그 많은 비효율들을 지나 점차 효율을 찾아가는 여정을 겪으면서 연구환경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