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포닥 생존기: 늪에서 살아남기] 영어의 늪에서 살아남기(발버둥 편)
1. 공유 다이닝 룸 이용하기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친구가 된다는 것...? (사진출처: pexels)
나는 아이를 6시에 픽업해야 했기 때문에, 실험을 6시 전까지 마쳐야 하는 부담을 항상 안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점심을 최대한 간단하고 빠르게 먹는 것으로 시간을 아꼈었다. 하지만 그 점심시간 이야말로 내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라는 것을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공유 다이닝 룸에는 우리 랩뿐 아닌 이웃 랩 친구들도 와서 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아무 말 대잔치가 열린다. 연구 얘기는 솔직히 거의 안 하고, 친구 얘기, 연애 얘기부터 시작해서 쇼핑, 여행, 문화, 사회 얘기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냥 거기 앉아서 그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 것 자체가 영어 듣기나 새로운 표현을 익히기에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보통 포닥들은 빠르게 밥을 먹고 가기 때문에, 나는 주로 어린 테크니션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실험을 조금 줄이더라도 그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서 되도록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한 번은 연구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영어수업에 나가본 적 있는데, 그곳에는 다 나처럼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랩과 옆 랩 친구들과 같이 모여 떠들고 노는 시간이 훨씬 재미있고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그렇게 1년, 2년 매일 점심을 먹으며 떠들다 보니 처음에는 조용히 듣기만 했던 나도 어느새 깔깔 웃으면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내 연구실 출근 첫날을 기억하여 비교해 보자면 정말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영어 실력이 많이 늘은 건지, 아니면 그냥 친해지고 적응을 해서 그런 건지는 약간 애매하지만 말이다.
2. 영어를 사용하는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나는 한국에서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도 다닐 교회를 찾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한인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구실에서 주로 실험만 하고, 집에서는 가족들이랑 한국어를 쓰고, 주말마저 한인 교회에 다닌다면 도대체 나는 언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현재 다니고 있는 미국 교회에 가게 되었다.
교회 자체는 너무 나와 잘 맞고 마음에 들었지만, 미국 교회를 다니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구와 관련해서는 한국에서부터 영어로 논문을 읽고, 용어들도 전부 영어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영어로 일하는 것은 버틸 만했다. 하지만 미국 교회는 연구하는 사람만 모인 곳이 아닌, 다양한 연령과 직업, 그리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대부분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들이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 대화의 난이도가 연구실 다이닝 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국 친구들이 이번 주말에 있었던 일, 어떤 레스토랑이 맛있다더라 하는 소위 랜덤 스몰 톡 (Random small talk)을 시작하게 되면 내 청신경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어로도 어려운 기독교 용어의 영어 버전이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영어로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사진출처: pexels)
하지만 이러한 영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와 우리 가족은 현재 교회가 너무 좋게 느껴졌고,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뿐 아닌 주중모임에도 매주 꼬박꼬박 참석하기 시작했다. 일요일 예배 설교도, 주중 모임의 대화도 처음에는 한 10-20% 정도 알아들었을까?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50%도 못 알아듣는 서로를 발견하고 남편과 어이가 없어서 막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와 흥미에 맞는 커뮤니티를 찾은 기쁨과,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계속 붙어있던 결과, 지금은 주중 모임에서도 내 생각을 영어로 나눌 만큼 영어도 많이 늘었고, 또 커뮤니티에 잘 적응하여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된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종교가 그 커뮤니티를 찾는 매개였지만, 내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댄스나 운동을 통해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아니면 도자기 공예 같은 것을 통해 친구들을 만난 사람도 있다. 연구 외의 관심사에 맞는 ‘영어를 사용하는’ 커뮤니티에 참여해서 친구를 사귀고 자연스레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된 것이 내 영어에 가장 크게 도움이 된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3. 영어 발표 연습하기
영어를 배운다는 이유로 맨날 친구들과 떠들고 놀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연구를 하러 온 포닥이니 말이다. 이곳에서 많은 연구자들의 영어 발표를 들어본 결과 한 가지 발견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어 실력과 발표 실력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원어민은 영어는 정말 잘했지만(당연히 자기 모국어니까), 이 말했다가 갑자기 저 말했다가 하면서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외국인들은 영어 자체가 미숙하거나 아니면 악센트가 좀 세서 처음에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자기 결과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쉽게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이곳에서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C)를 연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신야 야마나카 교수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은 정말 전형적인 일본인의 영어를 구사하는 분이셨다. 영어 자체가 원어민처럼 유창하지도 않았고, 발음도 거의 일본어를 하듯이 그렇게 발표를 하셨는데, 적절히 유머도 섞어가며 자기의 연구에 대해서 너무나도 쉽고 재미있게 발표하셔서 나를 포함한 모든 청중들이 그 발표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어 발표, 연습만이 살 길. (사진출처: pexels)
나도 연구자로서 영어 발표를 할 때, 영어를 엄청 유창하게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나의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짧은 1-on-1 개인 미팅이나 아니면 랩 미팅, 혹은 다른 랩들과 다 같이 하는 큰 조인트 미팅 할 것 없이 내가 영어로 발표할 일이 있다면 시간을 많이 들여 리허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스크립트를 짜서 외우지 않았고, 똑같은 그래프를 놓고 한 두 문장만으로 짧고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며 반복해서 연습했다. 연구에 대한 고민을 하는 만큼이나 내가 가진 결과를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결과,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일상 영어보다 내 결과를 영어로 발표하는 것에서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영어 발표를 들은 한 교수님이 나와 잠깐 대화를 하고 너무 영어가 달라 당황하신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4. 영어 관용 표현 익히기 - 유튜브, 미드, 인스타 계정 활용하기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유튜브에는 좋은 영어 강의가 넘쳐나고 인스타그램에도 좋은 표현들을 잘 정리해 놓은 영어 공부 계정들이 많다. 하루 종일 실험을 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이나 육아를 하면서 영어공부를 따로 하기는 참 어려운데, 이런 짧은 유튜브 강의나 영어 표현 계정들을 잠깐씩 보는 것이 다양한 표현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under the weather라든가, down the road 같은 관용 표현(Idiom) 들은 그 표현을 알고 있지 않으면 절대 귀에 들리지 않았는데, 우리 랩의 원어민인 포닥 친구나 내 PI는 그런 관용 표현을 잠깐의 대화 중에도 상당히 많이 사용했다. 갑자기 어떤 문장이 잘 들리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면 또 썼구나 하고 그냥 넘기고 했었다.
하지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런 표현들을 계속 접하게 되고, 또 누군가 그 표현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되고, 나중에는 나도 그 표현을 직접 사용하려고 노력해 보면서 내가 사용하는 영어 표현도 풍성해지고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더 잘 들리게 된 것 같다. 아무리 외우고 익혀도 매일매일 새로운 표현은 계속 튀어나온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글을 맺으며.
글을 다 쓰고 보니 내가 무슨 영어를 정말 잘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염려가 된다. 여전히 내 영어 실력은 부족하고 전화 영어는 지금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수년 전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보다 큰 성장을 한 것은 분명하다. 10년을 공부하고 노력한다 한들, 내가 내 모국어만큼 영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은 없다. 하지만 영어를 공부하기 위한 나의 작은 발버둥들이 내 연구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 주었고, 더 나아가 친구 하나 없던 이 미국 땅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었다. 나는 오늘도 더 잘 놀고, 더 잘 연구하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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