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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로 살아가기] 짧은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갑자기 여행기 II
Bio통신원(날다비)
연구소 생활을 앞두고 한 달간의 안식기를 가졌다.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당분간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여행은 지난날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의식 같은 게 됐다.
그래도 이번엔 휴학 동안의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여행이 아닌 새로운 준비를 앞두고 설레는 여행이 됐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의 배경이 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언젠가 가보고 싶었다.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길을 온전히 걸어 보리라 다짐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이번에도 한 달 일정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프랑스 국경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총 800 km에 이르는 거리를 30일 만에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발 빠르고 체력이 좋은 사람들에 한에서 하는 말이란 걸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보통 7-8월이 성수기인데 나는 4월에 출발했다.
스페인 북쪽 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11월부터 4월까지 추위와 눈비 때문에 비수기인 데다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인 알베르게도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때뿐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시작은 인천에서 파리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해서 밤 기차를 타고 국경으로 이동하는 경로였다. 촉박한 시간 때문에 쉬지 않고 도착한 파리 국경 지역이자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인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0시쯤이었다. 불편하긴 했지만 기차에서 잠도 잤고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았으니 바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본인 스스로를 과대 평가했다는 걸 머지않아 깨달았다.
첫날이니까 20 km만 걷자고 생각했던 그날 그 길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여정이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겼다고 생각한 배낭은 돌덩이가 되어 어깨를 짓누르고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분명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에 한 발짝을 움직이는 게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직 4월이라 산맥을 넘어가는 도중에는 우박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불었고 손은 꽁꽁 얼고 방향도 모르는 채 커플을 따라가다 길을 잘 못 들어서 헤매다 보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에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생장피에드포르로 가서 하루를 더 쉬고 내일 가뿐하게 출발을 할까, 조금만 더 가면 첫 번 째 알베르게 가 있는데 거기까지만 가보자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생장피에드포르역 앞 평온해 보이는 피레네 산맥
구원의 Orisson의 첫 번째 알베르게 (아직 프랑스령)
드디어 구원의 알베르게가 보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이후의 순례길을 걸으면서 이때만큼 힘이 든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시작은 쉬웠는데 점점 힘들어졌다면 정말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첫날의 힘듦이 나머지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했다. 그렇게 혼자 시작한 여행은 길을 걸으면서 각자의 걷는 속도에 맞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마음에 맞는 이들과 일정 구간은 같이 걷기도 하면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800 km라는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래 길을 걷다 보면 발에 물집이 생기거나 발목을 다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건 사람들이 제대로 걷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걷는 동안은 마치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제대로 걷는데만 집중하려고 했다. 처음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누군가 이 길을 왜 걷느냐고 물었을 때 생각의 꼬리를 이 길에 놓고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거창하게 말했는데 정말 걷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맞나? 오로지 제대로 걷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내 발과 발목은 무사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 전날 성당 미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던 그 순간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곧 이 길도 끝나겠구나 하는 아쉬움과 그 길을 걸었다는 뿌듯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해가 뜨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던, 길 위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헤어지기 아쉬워서 산티아고를 넘어 예전 로마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는 피네스테레까지 갔었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하다.
이제 그들도 여행이 끝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학교를 마치고 25 생일 기념으로 순례길을 걸었던 스페인 친구는 돌아가면 의사 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회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뭘 할지 고민하던 친구는 돌아가서 다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오랜 반려자와 헤어지고 왔던 브라질 친구는 돌아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곳을 가보고 싶다던 미국 친구는 알래스카에 정착해서 게스트 하우스를 열 것이고, 산티아고에서 즉흥 피아노 연주를 했던 자유로운 영혼의 벨기에 친구는 당분간 그 길에 남아 알베르게에서 자원봉사를 할 것이다. 나는 이 한 달의 기억을 마음에 담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그렇게 돌아왔다.
산티아고 성당의 보름밤
순례길의 끝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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