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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부터 10까지] 나의 가치는 얼마인가?
Bio통신원(워킹맘닥터리)
12-1.
대학생 시절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 당시 Daum 사이트에 아르바이트 모집 관련 글만 올라오는 유명한 카페가 있었는데 여러 글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모집 글이 있었다.
‘하루 2시간 근무, 당일 페이 15만 원, 총 4일 행사’ 당일 15만 원씩 4일만 일하면 60만 원의 소득이 생긴다. 하루에 2시간만 근무하면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다. 이렇게나 꿀 같은 아르바이트가 있다니?
본문 내용을 자세하게 읽지도 않고, 누가 먼저 채가면 어쩌나 싶어, 바로 이력서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본사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면접 시간보다 일찍 본사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면접장 복도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나처럼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온 몇 명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유독 키가 크고 늘씬했다.
어떤 선생님 한 분이 복도로 나와 면접이 시작됨을 알리고는 들어오라고 했다.
차례차례 들어가고 내가 맨 마지막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선생님: “어떻게 오셨어요?”
나: “아르바이트 면접 보러 왔는데요.”
선생님: “면접 보러 온 거 맞으세요?”
나: “네!”
약간은 황당한 듯 나를 훑어보더니, 면접 장소로 가는 것을 허락해주는 듯이 몸을 옆으로 비켜주었다.
면접장에 들어가 책상 의자에 앉았는데, 면접관인 듯 보이는 분이 이력서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이력서를 대강 휙 휙 넘기며 이름을 확인하더니, 나를 응시하고는 또다시 물어보셨다.
면접관: “면접 보러 오신 건가요?”
나: “네!”
유독 나에게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알고 봤더니, 행사장에서 행사 전용 일을 하는 분들을 채용하는 자리였다. 심사숙고하여 글을 읽지 않은 내 탓이었다.
글에는 분명 키 163 cm 이상, 몸무게 45 kg 이하 등의 조건이 있었다.
이 자리는 면접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조건에 맞는 사람들이 지원했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행사 당일 입을 옷과 행사 진행 방법 등을 교육해주는 자리였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진 않았지만, 조건에 부합했더라도 그 아르바이트를 할 자신은 없었다. 10 cm의 통 굽 흰 운동화를 신고 균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고, 핑클이 유행시켰던 흰 발토시를 무릎까지 올려 입을 자신이 없었으며, 노랫소리에 맞춰 흔들 긴 생머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이 끝나고 면접관이 다가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는 설명을 나긋나긋해주었다.
어렸을 때의 패기랄까? 괜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만큼 용돈이 필요했을까?
지금이었으면 당장 뛰쳐나올 법 한 상황인데도, 그때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
행사 뛰는 건 못해도, 허드렛일은 잘 도울 수 있는데, 아르바이트를 꼭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면접관은 잠시 당황한 듯하다가, 행사장 옆에서 물건 판매하는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행사장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그 옆에서 물건을 보여주고 가격과 할인 정보를 알려주는 업무였다. 물론 그때 당시 최저 시급으로 일해야 했고,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중간에 1시간 30분을 휴식할 수 있었다. 대신 2달간의 방학 기간 내내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2-2.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도착해서, 무대를 확인하고 음향 장치를 확인한다. 무대 아래는 수건과 물을 대기시켜 놓는다. 무대 옆 탁자 위에는 전 날 박스에 넣어두었던 샘플을 꺼내어 다시 DT 한다. 박스 안의 재고 수량을 확인하고, 본사에 전화해서 발주를 넣는다.
행사가 시작되면, 나와 같이 면접을 보던 분들이 나와 열심히 사람들을 모은다. 그 옆에서 판매를 하다가 행사가 끝나면 뒷정리를 돕고는 계속 물건을 판매한다.
저들은 나보다 1/5의 일을 하는데, 소득은 나의 3배이다. 그럼 나의 가치는 저들의 1/15 일까? 하지만 저들은 4일만 일 하고, 나는 2달간 일을 할 수 있으니, 나의 가치는 저들의 1/15 보다는 높다고 봐야 할까?
12-3.
사람마다 매겨지는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키, 골격 등 선천적 요인은 내가 어찌할 수 없으나, 이러한 선천적 요인은 사람에게 가격을 매기는 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얼굴, 몸매 등은 선천적+후천적 요인으로 나의 노력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 있으나, 노력의 여부와 정도에 따라 영향력이 커지기도, 혹은 작아지기도 한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가치도 올라갈 가능성이 커지나, 공부 머리도 유전, 공부할 환경이 주어지는 것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출발선이 다르고, 때문에 인생은 불공평하다.
아르바이트 중간에 휴식을 하며, 함께 일하는 여사님께서 타 주신 맥심 커피를 마시다가도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별 일 아닌 것에 너무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12-4.
그림12. Life cycle
결국 주어진 대로 어느 정도는 순응하고, 주어진 내 몫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
나는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세포는 G1기를 통해 성장한다.
내 인생에서의 G1기는 한창 공부했을 중, 고등학교 시절과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병원에서 임상 일을 하고 학원에서 공부를 병행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세포는 G1기에서 S기로 진입하기 전 check point를 거친다.
G1에서 성장을 제대로 거쳤는지 확인하고 이상이 없는 경우에만 S기로 진입할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게 check point는 얼음이 동동 띄워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업무를 잠시 멈추고 필요 없는 짐들은 처리하며, 연구실 바닥의 먼지를 쓸어내는 정리 시간들도 나에게는 check point 지점이다.
세포는 S기를 통해 DNA를 합성한다.
세포 분열을 하기 전 유전 정보를 복제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S기는 실험을 하고 논문을 작성하고, 우선순위대로 일을 처리하며 업무를 익히고 수업 전 강의 내용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상담 후 학생에 대한 생각에 잠시 빠지는 시간 등이라고 생각한다. 내 지식이 정확하게 2배로 복제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맡은 업무를 하기 위한 지식의 복제? 경험의 복제? 정도라고 생각한다.
세포는 S기가 끝나고 분열하기 전 G2기를 통해 DNA 복제에서 잘못된 염기 서열을 회복하고 세포 분열 전 준비를 한다. 이 과정에서 세포는 빠르게 성장한다. 나에게 있어 G2기는 내 주위를 정리하고 비워내며 부정적인 감정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시간들, 혹은 오늘 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내일의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시간들이다.
G2기에서 세포 분열기로 넘어가기 전에도 check point를 거친다.
나에게 있어 이 시기는, 업무가 끝나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 전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인 것 같다. 일을 하며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을 가족들에게까지 끌고 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 전 준비가 되었는가? 확인하는 시간으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세포는 check point를 거쳐 세포 분열을 한다.
원래의 cell cycle이라면 M기라고 표현했겠지만, 나에게 있어 이 시기는 M+G0기 인 것 같다.
가족을 만나 행복한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휴식하고, 그 과정에서 하루를 재정비한다.
휴식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내 뇌는 부정적인 것들은 털어버리고 긍정적인 것들만 남기려 노력할 것이고, 하루 동안 내가 쌓았던 지식들을 재정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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