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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S-17 다이어리] #09. 개구리 같았던 나의 대학원 생활
Bio통신원(만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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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가 깨어나는 절기, 경칩 >
며칠 전부터 꽃망울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더니, 이제는 눈에 띄게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입춘도, 우수도, 경칩도 지났으니 봄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봄에 마음이 적응할 시간을 달라고 하는 것 같다. 지금보다 과학 기술이 부족했던 옛 선현들이 나누신 절기에 맞게 계절의 변화가 느껴질 때면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입춘, 우수, 경칩은 봄을 구분하는 절기들이다. 그중에서도 경칩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의 절기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경칩 무렵에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기 시작하기 때문에, 경칩과 개구리는 함께 떠오르는 단어이다 [1]. 어느덧 연구실에서 여섯 번째 봄을 맞이하며 문득, 내가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개구리와 연관된 다양한 속담들을 떠올렸고, 학위 과정 동안의 개구리 같았던 나의 모습들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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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
가장 먼저 떠오른 이 속담은 나에게 처음 후배들이 생겼던 때를 상기시켰다. 오랜 시간 동안 선배님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나도 분명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일들을 마주하여 헤매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후배들이 생기자, 나는 마치 처음부터 잘 해왔고 어리숙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실수를 관용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이 정도의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모두 함께 연구했던 선배분들과 교수님께서 주신 많은 가르침 덕분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나의 부족했던 올챙이 시절의 모습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서야 이것을 깨닫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후로 나는 조금 더 다정하게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우물 안 개구리 >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파 내려간 우물의 깊이는, 한 분야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는가를 대변하게 된다. 한편 일반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스스로 깊게 파 내려간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우물을 깊게 파 본 사람은 다른 우물도 깊게 팔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능력은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우물을 깊게 파 내려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지표면의 각기 다른 곳에서 여러 개의 우물을 파내려 가는 것이 언뜻 생각하면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깊게 땅을 파 내려가다 보면, 이론적으로 우리는 결국 지구의 중심에 도달한다. 지식의 땅에서 우물을 파 내려가는 과정도, 서로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파기 시작해도 모든 지식은 중심에서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여러 개의 우물을 깊게 팔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 깊게 파 내려간 우물 안에서 밖으로 뛰어나올 수 있는 힘과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능동적인 결정으로 다른 곳으로 도약하여 새로운 우물을 파게 되는 경우에는, 그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한 융합적 통찰을 얻게 되기도 한다. 한편 내가 파왔던 연구가 시간이 지나며 낡은 지식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데, 이때에는 불가피하게 나의 연구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곳으로 도약해야만 한다. 때문에 한 우물을 깊게 파되, 언제든 그 우물에서 뛰어나올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기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삶은 개구리 증후군 >
한편, 나의 개구리 같았던 학위과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용어는 바로 ‘삶은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지만 간략히 소개해보면,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던지면 바로 튀어나오지만, 찬물에 담아 천천히 데우게 되면 온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일화이다 [2]. 이 이야기에 뿌리를 둔 용어가 바로 ‘삶은 개구리 증후군’으로, 천천히 커지는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대응하지 못하면 크게 화를 당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물론 최근의 연구를 통해서 찬물을 서서히 데워도 대체로 개구리의 반사 행동으로 뛰쳐나온다는 결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경고의 교훈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위 과정 동안 나도 마치 찬물에 담겨 가스레인지에 올려진 개구리 같았다. 입학할 때만 해도 나는 무엇이든 의욕이 넘쳤고 밝은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반복되는 좌절과 실패는 내가 서서히 우울과 무기력함에 스며들게 했고, 나는 그것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받아버렸다. 나의 연구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 나가기 위해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과 무기력함은 내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리지 못하도록 나를 끌어내렸고, 어떻게 보면 거의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돌아보면 마치 ‘삶은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익어가던 나를 건져서 넓은 도랑으로 내보내 준 것은 ‘새벽 기상’과 ‘달리기’, ‘등산’ 같은 활동이었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이겨냈던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에 남겼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학원생 S-17 다이어리] #04. 양팔 저울 위에 올려진 당근과 채찍
위의 글에서 소개하지 않았던 또 한 가지의 방법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독서’였다.
나는 방황을 끝내고 방향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원생에게 독서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연구가 바쁠 때에는 독서를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출퇴근 시간에 잠깐이라도 책을 읽으려고 했다. 주로 나는 심리나 철학, 자기 계발 서적을 좋아해서 가볍게 읽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느꼈던 방황의 이유를 찾기도 하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찾기도 했다. 전공 분야와 관계없는 책 들이지만, 개인적으로 무기력함과 우울을 떨쳐 내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던 책 다섯 권을 추천해 본다.
1. 린치핀 – 세스 고딘
2.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 팀 페리스
3. 신경 끄기의 기술 – 마크 맨슨
4. 정리하는 뇌 – 대니얼 J. 레비틴
5. 결국 이기는 사람들의 비밀 – 리웨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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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나는 끓어가는 물에서 뛰쳐나와 도랑으로 나와 헤엄치고 있는 개구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어설픈 개구리헤엄을 치며, 도랑을 벗어나 더 넓은 강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 개구리 왕눈이 정신 >
마지막으로, 아주 어렸을 적 TV에서 개구리 왕눈이 주제곡을 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아래에 개구리 왕눈이 주제곡의 가사를 공유하면서, 이번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3].
개구리 소년 개구리 소년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무지개 연못에 웃음꽃 핀다
학위 과정 동안 열심히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되었으니, 이제 남은 과정과 앞으로의 연구자로서의 삶에서는,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고,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서, 무지개 연못에 웃음꽃을 피워 낼 수 있는 개구리가 되어 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참고자료
[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11307&cid=50221&categoryId=50230
[2]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80181&cid=42107&categoryId=42107
[3] https://namu.wiki/w/%EA%B0%9C%EA%B5%AC%EB%A6%AC%20%EC%99%95%EB%88%88%EC%9D%B4#s-5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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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깨비의 과학 여행>을 수없이 돌려보고, 과학 시간을 제일 좋아하던 아이는, 정신을 차려보니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다. 대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생명을 전공하고 있지만, 인생을 더 많이 배워가고 있는, 5년 차 대학원생의 대학원 생활 이모저모를 담은 다이어리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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