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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S-17 다이어리] #04. 양팔 저울 위에 올려진 당근과 채찍
Bio통신원(만다린)
<우울한 대학원생의 초상>
출처: Pixabay
2018년.
내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째 되던 해.
하루하루를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싸우던 그해, Nature Biotechnology에 발표된 한 가지 연구가 연구실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학원생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유병률이 일반 인구 집단의 6배에 달한다는 내용의 연구였다(1). 두 번 세 번 곱씹을 필요도 없이, 피부에 와닿는 연구 결과였기에, 흥미로우면서도 마음 한쪽이 찡해왔다.
또 다른 한쪽에선 괜스레 안도감이 들었다. 이러한 이상한 안도감에 붙일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겪는 불안감과 우울감이 나만의 것이 아닌,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고충이라는 점에서 오는 ‘상대적’ 안도감이었던 것 같다.
그 연구가 화제가 된 이후로 현재까지, 다양한 연구 그룹에서 대학원생의 정신 건강에 켜진 적신호를 조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대학원생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2,3). 하지만, 이들을 위해 특별히 제시되고 있는 해결방안이나 대책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한국 소재의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내가 느끼기에는 커다란 변화 없이, 여전히 나를 비롯한 대학원생들은 종종 찾아오는 우울감과 불안감 속에서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
대학원생이라는 단어 앞에 노예, 불쌍한, 우울한 따위의 어두운 수식어가 붙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분명 우리는 멋있는, 실력 있는, 등의 수식어가 붙은 대학원생을 꿈꾸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어두운 수식어를 떼어내고, 대학원생이라는 단어를 멋진 수식어로 장식해 낼 수 있을까?
<#1.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대학원생들의 우울감과 불안장애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먼저 우울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학원생들이 느끼는 우울감에는 대학원이라는 환경이 가진 시스템이 만들어낸 중압감이 기여한다. 대학원생들은 그들의 학위 과정이 성공적인지를 그들이 학위 과정 동안 만들어낸 1저자 논문의 개수와, 그 논문들이 게재된 저널의 Impact factor (IF)를 이용하여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에 매진하면서도, 언제 이 과정이 끝나고, 연구의 결실을 맺게 될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정량적인 지표들이, 그들에게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학위 연구에 대한 불확실성이 불안감을 심화시키게 되면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우월감이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며 월등히 낫다는 감정이고, 열등감은, 다른 사람에 비하여 자기는 뒤떨어졌다거나 자기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이다 (4,5). 이 두 가지 감정이 좋지 않은 감정들인 이유는, 비교의 기준점이 ‘타인’이라는 것에 있다. 즉, 타인의 연구 성과나 업적을 중심으로 나를 평가하게 되는 습관들이, 우리에게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결국 자신의 중심을 잃게 되는 원인이 된다.
사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비교에 취약한 시간을 살고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는, 늘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과, 눈에 보이는 남의 모습을 비교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비교할 것은 남과 내가 아니라, 나와 나라는 것을 잊지 말자.
불안장애는 학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기인한다. 학위 과정은 늘 불확실성과 끊임없이 싸워나가는 과정이다. 아직 존재한 적 없는 것들을 고안해 내거나,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발견해 내야 하고, 때로는 내가 쫓고 있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이와 더불어, 학위를 받은 뒤에 어떻게 커리어를 이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도 대학원생의 불안 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장애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자존감(self-esteem)과 자신감(self-confidence)을 챙겨야 한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이고, 자신감은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다거나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혹은 경기를 잘 할 수 있다는 등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다 (6,7).
우리가 가져야 할 이 두 가지 감정은, 앞서 말한 두 가지 버러야 할 감정인 우월감이나 열등감과는 달리, ‘내’가 기준이라는 점에서, 자기중심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도덕 시간에 늘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워 왔지만, 가끔은 나를 위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일 필요가 있다.
<#2. 당근과 채찍의 균형 맞추기>
우울감과 불안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월감과 열등감을 버리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당연한 조언이고,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면서도 나의 감정을 관리하기가 힘이 든다. 그 이유는, 이들의 Upstream에서 조절자로 작용하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는 동안에는 불안하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힘겨워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경험은 모두가 한 번쯤은 가져 보았을 것이다. 분명 온종일 다른 생각 없이 연구에 몰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연구와 별개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이렇게 시간을 사용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혹여나 연구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우리는 잠시 다른 일에 몰두했던 시간 탓에 벌어진 일인 것만 같은 죄책감에 휩싸이기 쉽다.
이러한 일련의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우월감과 열등감 대신 자존감과 자신감을 챙길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의 손에 들고 있는 당근과 채찍의 무게를 저울질해야 해야 한다. 당근은 우리가 연구 이외에 ‘하고 싶은 일 또는 좋아하는 일’이 될 것이고, 채찍은 우리가 연구자로서 ‘해야 하는 일 또는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에만 몰두하여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채찍을 피해 당근만 쫓는 일도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채찍과 당근의 균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는 시간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채찍과 당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온전히 그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일을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별도로 정해두고, 그 시간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연구에 집중하고, 그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에는 퇴근 시간을 저녁 8시 정도로 정해두고,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그 시간 이후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하고, 퇴근 전에는 연구에 몰두했다. 퇴근 이후에는 개인적인 삶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나, 평소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했다. 또한, 일요일 저녁은 되도록 연구 관련된 일들을 조금이라도 하도록 스케줄을 비워 두어서, 월요일로부터 오는 압박감을 중화시킬 수 있도록 했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연구를 잘한다고들 말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연구와 삶의 경계를 명확하게 지키는 일이 연구의 효율과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3. 성취감 충전하기>
출처: Pixabay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힘들고 우울한 시간이 너무 길게 지속된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성공 경험을 쌓으며, 부족한 성취감을 충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어나자마자 이불 정리하기,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가기, 하루에 물 8컵 마시기 등의 아주 사소한 것들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성취감을 위해 러닝을 시작했다. 달리는 시간을 따로내기 어려워 출근 전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러다 10km 마라톤에까지 도전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대학원생 지인들이 나처럼 러닝이나 운동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니, 대학원생에게 부족할 수밖에 없는 ‘성취감’을 이러한 방향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꽤 좋은 방법이고 꼭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운동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성취감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하루 생활에 활력을 넣어주어 일과 시간의 집중력을 끌어올려 주는 효과도 가진다.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나의 노력이 성취로 반영되기 쉬운 일들을 시작해 성취감을 충전해보자.
<#4. 연구실 밖 부캐 만들기>
또 한 가지의 방법은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번 아웃 되지 않도록 충전을 할 수 있는 도피처를 만드는 것이다. 요즘은 부가 캐릭터, 줄여서 부캐라고 말하는 것이 그 도피처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화,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일반인의 부캐와는 약간 다르겠지만 연예계에서도 부캐들이 거두는 성과가 많이 주목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유재석의 유야호, 유산슬이나, 마미손, 카피추, 둘째이모 김다비, 매드몬스터 등, 때로는 ‘본캐’를 뛰어넘는 ‘부캐’들의 활약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도 부캐를 갖는다면, 위에 나열한 연예인들처럼, 본캐를 뛰어넘는 부캐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부캐가 있으면, 잠시나마 본캐가 가지고 있는 우울감과 불안감을 잊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서의 삶에 집중하면서, 나의 본캐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부캐의 삶에 집중하다 보면, 본캐가 한참을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가 갑자기 보이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대학원생에게 워라밸은 사치인가?>
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면서도 늘 가슴 한 켠에서 들려오는 “대학원생에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 사치다”라는 외침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원생은 Work를 하는 것이 아니라, Study 혹은 research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연구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비교에 잠식되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생각에서 벗어나, 건강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이, 대학원생에게 필요한 스라밸 (study and life balance)인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스라밸을 잘 챙기는 것이, 기나긴 연구과정과 그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를 포함한 많은 대학원생들이 ‘불쌍한’, ‘우울한’ 따위의 어두운 수식어 대신, ‘멋있는’, ‘실력 있는’, 등의 밝은 수식어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1] Evidence for a mental health crisis in graduate education, Nature Biotechnology, (https://www.nature.com/articles/nbt.4089)
[2] [과학하는 여자들의 글로벌이야기] 26. 우울한 과학자 (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313)
[3] 대학원신문 (http://gspres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185)
[4] 우월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11659&cid=50294&categoryId=50294)
[5] 열등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6796&cid=40942&categoryId=31531)
[6] 자존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472211&cid=50298&categoryId=50298)
[7] 자신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33400&cid=42879&categoryId=42879)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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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깨비의 과학 여행>을 수없이 돌려보고, 과학 시간을 제일 좋아하던 아이는, 정신을 차려보니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다. 대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생명을 전공하고 있지만, 인생을 더 많이 배워가고 있는, 5년 차 대학원생의 대학원 생활 이모저모를 담은 다이어리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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