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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밖 과학읽기] 유리우주 (데이바 소바 저, 양병찬 역/ 알마)
Bio통신원(LabSooniMom)
한국에서 지구과학 시간에 태양계를 외우는 방법은 단순했다. 제일 앞의 한 글자만 따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렇게 외웠으니 말이다. 이걸 영어로 하면 꽤 복잡하다. 한국어는 대부분 뒤에 ‘성’자만 붙이면 되는데, 영어는 이름이 다 다르니 말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종종 보는 유튜브에서 노래로 쉽게 외우거나 문장을 만들어서 외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My Very Educated Mother Just Served Us Nachos” “고학력인 우리 엄마는 방금 우리에게 나초를 주었다” 얼토당토않은 뜻인 이 문장의 각 단어의 첫 글자만 따면, Mercury, Venus, Earth, Mars, Jupiter, Saturn, Uranus, Neptune 이 된다.
천문학에서는 연관성 없는 목록을 외우는 방법이 또 있다. 항성을 분류하는 방법 중 항성의 표면온도에 따른 분광법을 이용한 분류이다. 이 방법은 20세기 초 미국 하버드 천문대에서 제시한 분류법으로 온도가 높을수록 청색을 띠며 사이즈가 커지는 별들을 스펙트럼으로 분류해 그들의 진화까지 예측할 수 있는 분류법으로 OBAFGKM의 순서이다. 이 불규칙한 분류법을 외우는 방법은 “O, Be A Fine Girl, Kiss ME?”(오 멋진 걸! 내게 키스해 주세요)라고 한다. 100년도 넘은 이 니모닉(mnemonic)은 현대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니모닉을 변경하는 콘테스트를 종종 개최하기도 한다고 하며, 현재는 Girl 대신 Gal로 사용한다고 한다.
항성 분류법의 큰 획을 그은 이 니모닉 뒤에는 ‘교수’,’박사’,’천문대장’등으로 불리우지 않는 여성들이 있었다. “별과 우주를 사랑한 하버드 천문대 여성들’이라는 부제를 지닌 <<유리우주>>는 천문학 역사에 굵직 굵직한 발자취는 남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가 영화로 잘 알고 있는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흑인 여성이 주인공이다. ‘<<계획된 불평등 (마리 힉스 저)>>에 등장하는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영국의 암호 해독에 참여했던 여성 프로그래머들이다. 그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리우주>>의 주인공들도 ‘천문학자’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수 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버드 천문대의 역사 사진을 보면 긴 통치마에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하버드 천문대는 천문 분야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만 사실 그 명예 뒤에는 “똑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는 값싼 여성 노동력”이 있었다. 더불어 하버드 천문대가 이렇게 많은 여성 인력을 확보하고 그들을 통해 학문적인 성과를 이룩한 데는 두 명의 여성 상속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별빛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남편의 유지를 잇기 위해 애너 파머 드레이퍼는 ‘헨리 드레이퍼 기념사업’에 후원하고 그 사업을 위해 찍은 유리건판과 그 건판을 유지, 관리하고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유언을 남겼다. 캐서린 울프 부르스는 늦은 나이에 천문학에 매료되었고, 수많은 프로젝트와 관측장비 등을 후원했다. 또 뛰어난 천문학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브루스 메달’을 지정했다. 브루스는 이 메달 수혜자의 조건을 ‘국적 불문’, ’성별불문’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유리건판(Harvard-Smithsonian Center for Astrophysics)
가정부로 시작해 하버드의 ‘천체사진 큐레이터’ 직함을 얻은 윌리아미나 플레밍은 항성분류체계를 설계하고 10개의 신성과 300여 개의 변광성을 발견했다. 그는 여성의 참정권도 없던 그 시절 당당하게 학회 연단에서 여성 천문학 연구자들 우수성을 알렸다. 56개의 변광성을 발견하고 그중 16개의 변광성의 변화주기를 관찰한 헨리에타 스와 리비트는 우주 공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안토니아 모리는 거성과 왜성을 구별할 수 있는 스펙트럼 분류 체계를 고안했다. 현재도 미국 천문학회에서 수여하는 애니 점프 캐년상의 주인공인 캐년은 ‘헨리 드레이퍼 목록’을 끝판 내기 위해 수십만 개의 항성 스펙트럼을 분류했다. 하버드에서 남녀를 통틀어 처음으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세실리아 페인은 1956년에서야 하버드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항성 별로 온도가 다르고, 수소와 헬륨이 풍부하다는 발표를 통해 우주 구성에 대한 천문학계의 통론을 뒤바꾼 인물이다.
“많은 여성이 천문학과 망원경에 관심이 있지만, 지금껏 여성이 천문학에 기여한 사례는 두세 건의 예외를 제외하면 전무한 실정입니다. 실내 온도가 외부 기온과 같다면, 변광성 연구는 집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할 수도 있으므로 여성들이 가진 기술을 유용하게 이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
하버드 천문대를 이끌었던 에드워드 피커링은 위와 같은 말을 하며 ‘여성’과 ‘시민’을 과학에 참여시켰다. <<유리우주>>를 읽다 보면 피커링이 여성 연구원에게 갖는 관점의 변화가 느껴진다. 당대 상황과 다르게 여성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부여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여성 연구원들의 생산성과 학문적 성취가 그 변화를 이끌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논문을 내고 발표 자리에서 플레밍을 말로만 치하하던 것에서 후에는 몰리의 이름을 논문에 공저자로 나란히 넣고, 이들의 하버드 천문대 내에서의 과학자로서의 직함을 얻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제도와 부딪힌다. 피커링의 후임인 할로 새플리는 천문대를 교육기관으로 탈바꿈시켜 최초로 천문학 박사를 배출한다. 그는 페인이 하버드의 교수가 될 수 있도록 철옹성 같은 대학의 고정관념을 부수기 위해 노력했다.
피커링과 여성 계산원 (By Unknown author - Harvard-Smithsonian Center for Astrophysics)
이러한 주변의 노력은 이 책을 읽으며 잠시 시대를 잘못 설정한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여성의 참정권도 없던 그 시절. 여성이 과학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러기에 낮은 임금에, 유리판 분석과 계산에 쏟아붓는 시간들이 ’걸-아워’로 치부될지라도 그들은 버텼다. 때로는 반짝이는 밤하늘을 때론 하얀 유리건판의 점점이 박힌 까만 별들이 그들의 삶을 가득 채웠기 때문일 것이다.
싱글맘, 비혼, 부부 과학자, 워킹맘 등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이 그들이 발견한 우주의 비밀과 함께 유리우주에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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