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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에게서 배우다] <37회> 자르고 이어붙이기
Bio통신원(바이오휴머니스트)
<RNA Splicing 3분 강의1)>
지난 글에 인용한 암빅데이터 연구성과2) 내용중에는 RNA Splicing(이하 ‘자르고 이어붙이기3))에 대한 얘기가 있다. 암과 같은 유전적 질환의 30~60%는 바로 이 ‘자르고 이어붙이기’ 과정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고 한다.
인간의 유전자(Gene)는 약 21,000개인데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은 무려 25만~100만개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적은 유전자로부터 많은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자르고 이어붙이기’ 방법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유전자가 발현하여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DNA의 유전정보가 RNA로 복사(전사, Transcription)되고, 복사된 RNA로부터 단백질을 번역(Translation), 생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복사와 번역 사이에 RNA의 ‘자르고 이어붙이기’ 과정이 진행되는데, 불필요한 인트론(Intron)을 ‘자르고’ 필요한 엑손(Exon)을 이어 붙인다. 여러 가지 선택적인(alternative) 방법으로 ‘이어붙이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암연구자들은 비정상적인 ‘자르고 이어붙이기’가 암을 일으킬 수 있음에 주목하고, 원인 제공자인 특정 유전자돌연변이를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통해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항상 그렇듯, 몸 안의 이치는 몸 밖의 세상 이치와 서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자가 아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에디톨로지’(부제: 창조는 편집이다) 라는 책을 써서 ‘자르고 이어붙이기’(편집)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김 교수는 책 서두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이 먼저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은 편집능력에 있음을 꿰뚫어보았다고 강조한다).4)
자르기 살면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이어붙일까? 엊그제 오랜만에 야근 후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술을 같이 마시게 되었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그만 과음을 하게 되었다. 늦게 귀가하여 곧바로 샤워 후 잠이 들었으나, 다음날 부족한 수면과 숙취로 인해 업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거나, 또는 적당히만 마시고 잘랐어야, 다음날 다시 일을 이어 붙여가며 하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내가 몸살감기로 끙끙 앓고 있는 상황에,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지속함으로써 자초한 비정상적인 ‘자르기’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의 원활하고 정상적인 ‘이어붙이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어붙이기 불필요한 것을 자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것을 찾아 잇고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첫째 아이가 허구한 날 폭력과 동성애가 난무하는 미드(미국드라마), 영드(영국드라마), 유튜브(영어 욕이 나올 때마다 삑삑대는...)에 빠져 지낼 때는 왜 저렇게 불필요한 것을 자르지 못할까 하며 부모로서 많이 안타까웠었다. 그런데 얼마 전 거실 TV로 자막 없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었구나, 아이는 나름대로 필요한 것을 찾아 잇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거의 동시에 ‘영어는 이제 됐고 수학만 잘 하면 될 텐데’ 하는 역시나 얄팍하고 실소를 머금게 하는 생각이 떠올랐으나, 얼른 반성하고, 아이가 계속해서 씩씩하게 자기 앞길을 헤쳐 나가 주길 바라는 마음을 표정에 담아, 아이를 바라봐주었다.
단순함에서 다양함으로 다양성은 유전자-단백질 수준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순 지루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다면, 무언가 특색 있는 시도가 도움이 된다. 안하던 운동이나 고전 독서를 시작한다던지, 악기를 하나 배운다던지,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연이나 금주 시도는 어떤가? 아이에게 강요만 했던 가정에서의 원칙도 하나 깨트려 보자.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 가운데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성이 발현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2주 연속 수요일이 공휴일이다. 일하다 중간에 하루 놀고 다시 이어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중요해진 시대가 왔기 때문에 이런 것을 잘해야 한다. 일도 하다가 자르고 쉴 줄 알아야 하고 휴식도 하다가 자르고 다시 이어서 일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벌써 여름이 시작된 듯 덥다. 시원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인생에 있어 잘라야 할 것을 아직 자르지 못한 것은 없는지, 이어 붙여 발전시켜 나가할 것은 무엇인지 재차 생각해 본다.
※ 참고자료
1) ‘Just What is RNA Splicing?’ https://youtu.be/pzWW-CSkxAA
2) http://ncc.re.kr/prBoardView1.ncc?nwsId=2141&searchKey=total&searchValue=&pageNum=32
3) 네이버 영어사전, ‘splice’, http://endic.naver.com/enkrEntry.nhn?sLn=kr&entryId=b7ea9d4c3f6746b49f988b744e3e26ef&query=splice
4) p6, <에디톨로지>, 김정운,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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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인생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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