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후배를 맞이할 때] 후배와 친구 사이의 거리 - 공공의 적을 마주했을 때
매일 얼굴을 보고, 하루 대부분을 같이 보내고, 어떤 날에는 가족보다 더 오래 붙어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사람도 생긴다.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실험하다가 농담도 하고, 퇴근 후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결국 같은 연구실에서 각자의 연구를 하는 동료다.
나는 이 애매한 관계를 꽤 오랫동안 어려워했다. 특히 후배가 생기고 나서는 더 그랬다. 선배니까 어느 정도 챙겨줘야 할 것 같으면서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다. 반대로 거리를 두면 내가 너무 무관심한 선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당히 친해지는 것이 좋은 선배가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밥도 먹고, 실험도 알려주고,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고, 힘들어하면 이야기도 들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대학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편하게 이야기하고 농담을 해도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배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이라도 후배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반대로 후배가 편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정말 친구처럼 생각해도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평소에는 그렇게 애매했던 관계가 어떤 순간에는 갑자기 굉장히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바로 연구실 전체가 같이 욕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다.
대학원이라는 곳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는 단연 지도교수님이다.
평소에는 실험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선후배끼리 어색하게 지내다가, 교수님이 연구실에 들어오시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특히 메신저나 연구실에서 갑자기 이런 말이 나온다.
"XX아, 잠깐 내 방으로 와라."
그 순간 연구실의 분위기는 묘하게 바뀐다. 누가 불려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배든 후배든 마찬가지다.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분노하시는 교수님 (너무 멋있게 표현된 것 같다.)'무슨 일이지?'
그리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으면 또 생각한다.
'아직도 안 나왔네.'
교수실 문이 닫혀 있는 동안에는 실험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문이 열리고 나온 사람의 표정만 봐도 대충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깨가 축 처져 있으면 뭔가 크게 혼났다는 뜻이고, 노트나 노트북을 들고 멍한 표정으로 나오면 새로운 일을 잔뜩 받아왔다는 뜻이다. 아주 가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오면 오히려 연구실 사람들이 더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평소에는 별로 말을 섞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말을 건다.
"야, 뭐라 하시냐?"
"왜 불려 갔어?"
"또 뭐 하래?"
"그래서 언제까지래?"
그렇게 한 명씩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건 이때만큼은 선후배 관계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각자 자기 실험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 교수님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동지애가 가장 강하게 생기는 순간이 있다. 랩미팅이다.
대학원생에게 랩미팅은 그냥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내가 며칠 동안 고민해서 만든 실험 계획과 데이터를 교수님 앞에 펼쳐놓고, 그걸 하나씩 설명해야 하는 자리다.
그리고 발표를 하다 보면 가끔 교수님이 실험 내용에 대해 아주 강하게 지적하실 때가 있다.
"이 실험을 왜 한 거야?"
"이걸 해서 뭘 증명하겠다는 거야?"
"논리가 없잖아."
나름대로는 앞뒤를 맞춰서 실험을 설계했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 입장에서는 논리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런 지적 자체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적받은 대로 다시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만들어 다시 가져간다. 그런데 다음 랩미팅에서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이렇게 해봐."
"……네?"
"그게 논리가 있는 것 같은데?"
논리가 없다고 했던 그 실험이 갑자기 논리가 있는 실험이 된다. 물론 연구라는 게 원래 그렇다. 새로운 데이터가 나오면 기존 실험을 보는 관점도 달라지고, 처음에는 의미 없어 보였던 결과가 다른 결과와 연결되면서 중요해지기도 한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냥 웃긴다.
'아니, 그래서 저번에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특히 후배가 처음 이런 일을 겪으면 꽤 당황한다. 자리로 돌아와서 말한다.
"선배님, 교수님이 지난번에 이거 논리 없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니까."
"근데 이번에는 이게 논리가 있다고 다시 해보래요."
"그러니까 나도 이해가 안 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둘 다 웃는다. 그리고 이때 선배가 해줄 수 있는 말도 굉장히 현실적이다.
"일단 다시 해봐."
"이번에는 교수님이 어떤 부분을 좋게 보신 건지 생각해 보자."
"지난번 데이터랑 이번 데이터 연결하면 뭐가 나오는지 보자."
결국 또 연구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후배와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다. 교수님에게 공격을 받고 나온 사람에게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아, 저 사람 지금 무슨 기분인지 알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연구실 안에서 묘한 공감대가 생긴다.
"오늘 뭐로 혼났냐?"
"논리가 없대."
"ㅋㅋㅋ 나도 저번에 그걸로 혼났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래?"
"다시 하래."
"뭘?"
"나도 몰라."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다 같이 웃는다. 교수님 입장에서는 연구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매주 새로운 퀘스트가 추가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오히려 사람을 묶어준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이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꽤 큰 위로가 된다.
나도 후배가 교수님 방에 불려 갔다가 나온 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많았다.
"뭐라시냐?"
"이거 다시 하래요."
"뭘?"
"지난번에 했던 실험이요."
"왜?"
"컨트롤이 마음에 안 드신대요."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온다. 교수님이 실제로 원하는 게 뭔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특정 데이터 하나만 보완하면 되는 건지 판단해야 한다.
이럴 때 선배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같이 욕해주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 너무하시네. 그냥 하지 마."
이렇게 말해버리면 순간적으로는 속이 시원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후배가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남는다. 반대로 "교수님이 하라는데 해야지. 그냥 밤새서 해."라고 말하는 것도 선배가 할 일은 아니다. 그 사이에서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주는 게 선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말한 게 정확히 이 부분이면 전체를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일단 지난 데이터부터 다시 보자."
"이 정도면 이 실험 하나 추가하면 될 것 같은데."
"교수님이 다음에 물어볼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이런 식으로 같이 정리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런 해결책도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들어주는 것.
"오늘 좀 심했네."
그 한마디면 끝나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 생활에서 교수님 때문에 후배와 선배가 갑자기 하나가 되는 순간은 연구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정말 연구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 생긴다.
예를 들어 연구실에서 심포지엄이나 학회를 주최하는 경우가 있다. 외부에서 연사들이 오고, 해외에서 교수님들이 오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대학원생들에게 이런 지시가 떨어진다.
"XXX 교수님 공항에 누가 마중 나갈 수 있어?"
연구를 하러 온 대학원생이 갑자기 공항 픽업 담당자가 되는 순간이다. 공항에 가서 연사님을 만나고, 차에 태워서 모시고, 호텔이나 행사장까지 안내한다. 외국에서 온 분이면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한 번쯤 생각한다.
'내 실험은 지금 밀려 있는데 왜 내가 공항에 있지?'
더 재미있는 경우도 있었다. 교수님 사무실을 옮기는 일이 생기면 대학원생들이 짐을 옮긴다. 책을 빼고, 박스를 나르고, 장비나 물건들을 정리한다. 연구실에서 실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삿짐센터가 된다.
이럴 때 평소에는 별로 친하지 않던 선후배도 자연스럽게 말을 섞게 된다.
"야 이거 어디로 옮겨?"
"몰라. 일단 저쪽에 놔."
"이거 책 진짜 많네."
"그러니까 교수님 방에 책이 저렇게 많았구나."
그러다가 누군가 한마디 한다.
"우리 오늘 실험은 언제 하지?"
"그건 내일의 우리에게 맡기자."
이런 순간들이 있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기억에는 오래 남는다. 평소에는 남이었는데, 이런 순간에는 같은 편이 된다.
평소에는 후배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같이 실험을 했고, 필요한 이야기도 나눴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교수님에게 같이 불려 가거나, 갑자기 연구실 전체에 일이 떨어지거나, 학회 준비를 하면서 며칠씩 같이 움직이다 보면 이상하게 가까워진다.
"너도 이거 받았어?"
"나도 받았는데."
"교수님이 뭐라고 하시던데?"
"너한테도 그 얘기했어?"
그렇게 서로의 상황을 확인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하지 않아도 대충 안다. 저 사람이 지금 힘든 상태인지, 교수님에게 또 뭔가를 받아왔는지, 오늘 실험이 잘 안 되는지. 이게 내가 생각하는 대학원에서의 묘한 동료애다.
친구처럼 매일 연락하는 관계는 아니다. 주말에 만나서 놀지도 않는다. 서로의 연애나 가족 이야기를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연구실이라는 공간 안에서만큼은 서로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꽤 잘 안다.
이런 경험도 있었다. 나와 실험을 많이 같이 했던 후배가 있었다. 여러 실험을 같이했고,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도 꽤 많이 공유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그 후배는 다른 원생과 훨씬 더 친했다. 연구실 일이나 자기 연구에 대한 고민을 나한테 말하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내가 알려준 실험 방법이나 업무 방식에 대해서도 그 사람에게 가서 의견을 물어봤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이상했다.
'나랑 실험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왜 저 사람한테 이야기하지?'
더 재미있는 건 그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일을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조금 느긋하고, 연구실에서 일하는 양도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후배가 가서 "XX 선배가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조금 허탈했다.
그런데 결국 여기서 또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친밀함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우리 친하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실험을 많이 가르쳐줘도, 그 사람이 편하게 느끼는 대상은 다른 사람일 수 있다. 그건 서운해할 일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다. 사람마다 편한 사람이 다르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다르다.
결국 나도 똑같았다. 나 역시 연구실 안에서 모든 사람과 친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옆 실험실에서 비슷한 시기에 대학원 생활을 하던 동기들과 더 가까웠다. 연구실이 다르니까 업무가 직접 엮일 일도 적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너희 교수님은 어때?"
"우리 교수님도 똑같아."
"오늘 또 뭐 시키셨어?"
"나도 지금 그거 하고 있어."
연구실 내부 사람에게는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옆 실험실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대학원에서 모든 관계가 깊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좋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
연구 자체도 힘들지만, 인간관계가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이상하게 힘든 순간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교수님에게 한바탕 지적을 받고 나온 날, 누군가 옆에서 "야, 나도 저번에 똑같이 혼났어."라고 말해주는 것.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교수님 방에서 나온 후배에게 "괜찮아?"라고 묻는 것. 갑자기 떨어진 일을 같이 정리해 주는 것. 랩미팅에서 논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온 후배의 데이터를 같이 봐주는 것. 학회 준비로 늦게까지 남아 있을 때 같이 편의점에서 밥을 먹는 것. 공항 픽업을 다녀온 후배에게 "살아왔네?" 하고 농담하는 것. 사무실 이사를 같이 하고 나서 다 같이 커피 한 잔 마시는 것. 이런 별것 아닌 순간들이 결국 연구실 생활에서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도 된다. 그냥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연대감은 생긴다. 서로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손을 내미는 관계. 나는 오히려 그런 관계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배가 후배에게 친해지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같이 밥 먹고 웃고 떠들 수 있는 후배가 생기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것을 목표로 삼으면 조금씩 관계가 이상해진다.
"나는 이렇게까지 잘해줬는데 왜 나한테는 이야기를 안 하지?"
"왜 다른 선배한테는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나한테는 안 하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선배인 내가 괜히 상처를 받는다. 후배는 나의 친구가 아니다. 내가 키워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좋아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나와 함께 연구실이라는 공간을 지나가는 한 명의 동료다.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고,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나머지는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면 된다.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후배가 스스로 나를 찾아온다면, 그때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대학원에서 우정을 기대하면 실망하는 순간이 많다. 물론 평생 연락할 만큼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고, 연구실을 떠난 뒤에도 만나서 밥을 먹는 관계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기본값으로 생각하면 손해다. 대학원은 사람들이 모여 연구하는 곳이고, 각자의 이해관계와 목표가 있는 곳이다. 같은 연구실에 있다고 해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후배와의 관계에 굳이 친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평소에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실험을 한다. 그러다 누군가 교수님 방에 불려 가면 물어봐준다. 랩미팅에서 지적받고 나오면 옆에 앉아 같이 데이터를 본다. 갑자기 일이 떨어지면 같이 방법을 찾아본다. 학회 준비로 정신없으면 같이 끝낸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각자 집에 간다.
그 정도의 관계가 오히려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실에서 좋은 선배가 된다는 것은 후배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더 가깝다. 평소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지만, 교수님이라는 공공의 적이 등장하는 순간만큼은 묘하게 한 팀이 되는 사람들. 결국 대학원에서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건 꼭 좋은 일을 같이해서가 아니라, 가끔은 같이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이번 연재에서는, 대학원생이 선배로서 후배를 맞이할 때 겪는 복잡한 감정과 상황들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처음으로 책임을 지게 된 순간의 당황스러움, 후배에게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오묘한 감정, 그리고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한 끝없는 시행착오까지—연구실이라는 작고 특별한 사회 안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다룰 것입니다. 진학을 앞둔 인턴 후배부터, 친목질만 하는 후배, 너무 적극적인 후배까지. 그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하고, 실망하고 지쳐가면서도 다시 다정해지려는 대학원생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대비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웃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비 대학원생, 대학원 신입생,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연구실 속 관계에 너무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