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짜리 통보
공무원의 인사발령 통보는 언제나 짧다. A4 한 장, 혹은 그보다 짧은 한 문단. 수신인과 발령 내용과 발령 일자. 거기에는 당사자의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2월 초 어느 월요일 아침, 나는 그 한 장 짜리 통보를 받았다. 화훼연구실에서 과수연구팀으로. 발령 일자는 이틀 후였다.
사실 나의 전공은 미생물이다. 공과대학을 나와 발효미생물의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연구사 시험에는 미생물 직렬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작물직렬로 시험을 봤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시험과목인 작물학과, 식물생리학 등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한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로지 시험 합격을 위한 공부였다. 그렇게 운 좋게 합격을 하고 첫 발령지가 화훼연구실이었다. 연구주제는 꽃창포의 시비시험 관련이었다. 전공이 아니어서였을까? 너무 지루했다. 흥미가 안 생겼다. 그래서 보는 것보다 먹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지원한 과수연구팀 발령이 이틀 후인 것이다.
난 미생물이 재밌다.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공기처럼, 미생물도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이 내 일상이었다. 배지 위에서 자라는 균사의 패턴을 보며 균종을 구분하고, PCR 결과물에서 밴드 하나를 찾아내는 그 작은 성취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해 내는 일이 내게는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때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낯선 포장 앞에서
과수팀에 첫 출근을 하던 날, 계장이 포장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2월 초의 과수원은 잎도, 꽃도, 열매도 없었다. 앙상한 가지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황량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팀장이 걸으며 설명을 해주었지만, 나는 솔직히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잎이 없으니 질감으로 봐야 한다는데, 가지 굵기도 비슷하고 색깔도 비슷하고, 내 눈에는 그냥 다 나무였다.
돌이켜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 순간 나는 현미경 앞에 앉아 있을 때와 정반대의 무력감을 느꼈다. 배지 위의 균사는 형태만 보아도 속(屬)을 가늠할 수 있었다. 색깔, 질감, 자라는 속도, 냄새까지도 단서가 되었다. 그런데 이 포장에서는 그 모든 감각이 무용지물이었다. 같은 눈, 같은 코, 같은 손을 가지고도 나는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전공자라는 말이 이렇게 초라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봐왔으니까
이틀 후, 20년 경력의 선배와 함께 포장을 걸을 기회가 생겼다. 선배는 과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말이 많지 않았지만, 포장에 들어서는 순간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마치 자기 집 안방을 걷듯 자연스러웠다.
나는 겸손하게 물어봤다. "선배님, 이게 사과예요, 배예요?" 선배가 멈췄다. 그리고 가지 하나에 손을 뻗어 살며시 훑었다. 껍질의 질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가지의 색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건 홍로야. 저 라인은 후지이고."
나는 말을 잃었다. 사과인지 배인지도 모르겠는 내가 보기에, 선배는 품종까지 맞혀낸 것이다. 잎도 없고, 열매도 없고, 오직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를 보고. 나는 뭔가 헛것을 본 것 같아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선배는 짧게 답했다. "봐왔으니까."
그 다섯 글자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돌았다. 봐왔으니까. 수십 년의 시간이 그 단어 안에 압축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미생물 배지를 앞에 놓고는 자신 있게 설명하던 내가, 지금 이 포장에서는 나무 이름도 못 맞히는 사람이었다.
연구자와 공무원 사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경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연구사 조직에는 말로 정해지지 않은 서열이 있다. 논문 편수도 아니고, 직급도 아니고, 그저 그 작물을 몇 년이나 들여다보았는가로 매겨지는 서열. 나는 미생물로는 몇 년의 시간을 쌓아왔지만, 과수 앞에서는 이제 막 태어난 신참이었다. 경력이 곧 실력이 되는 이 세계에서, 나는 다시 원점에 서 있었다. 그 원점에 서는 기분은, 석사 학위를 받고도 처음 실험대 앞에 앉았을 때의 그 막막함과 닮아 있었다.
며칠 뒤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놀랍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 토양을 전공한 친구는 인삼 재배 현장으로, 곤충을 연구했던 친구는 작물 분야로 발령이 나 있었다. 다들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나와 비슷한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전공과 다른 곳에 던져지는 일은 나만의 사정이 아니라, 연구사라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나가는 관문 같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날 저녁, 연구실에 혼자 남아 선배가 말한 홍로와 후지를 검색해 봤다. 특성, 수확 시기, 외형 차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 날이었다. 격려도 없고, 칭찬도 없고, 질문을 받는 사람도 아닌 날. 연구사도 그런 날에는 흔들린다.
연구사는 연구자와 공무원의 그 경계에 있다. 연구성과를 올리려면 전공에 맞게 발령이 나야 하지만, 순환보직을 해야 하는 공무원의 관점에서는 그저 변명에 불과하다. 발령이라는 것은 조직의 논리로 이루어지지만,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새로운 분야에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쌓아온 정체성의 일부를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미생물 연구자다. 그 타이틀이 내 자신감의 근거였고, 동료들 앞에서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내려놓고,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다시, 원점에서
흔들리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나중에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흔들려야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낯선 세계 앞에서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성장의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밤만큼은, 그런 위로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창밖은 이미 깊은 밤이었고, 컴퓨터 화면 위에 홍로와 후지의 사진이 나란히 띄워져 있었다. 나는 그 두 사과를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며칠 후 다시 포장에 나갔을 때, 나는 가지 하나를 가만히 만져보았다. 여전히 홍로와 후지를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는 있었다. 봐왔으니까,라는 선배의 말은 결국 나에게도 시간을 들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미생물을 들여다보던 그 인내심을 나무에게도 나누어 주면 될 일이었다. 다만 그 시간이 지금 당장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때는 그저 막막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자존감의 원천이었던 공대 출신 최초의 농업연구사의 타이틀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경력이 곧 언어가 되는 세계에서, 나는 아직 더듬거리는 초보자일 뿐이었다.
다음 화의 제목은 ‘연구사에도 등급이 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