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지난 연재 4편에서 소개한 것처럼 유럽 전역에는 한인 과학자 협회(과협)가 있는데, 내가 속한 북유럽에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하나로 묶은 협회가 있고 핀란드는 독자적으로 과협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핀란드에 한인 과학자 수가 훨씬 많은가 보다.
북유럽에서 공부하는 학사, 석사, 박사 학생은 물론 연구원으로 일하는 현직자와 교수님들까지 모두 과협의 멤버가 될 수 있다. 학생은 소정의 가입비만 내면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서 가입을 적극 추천한다. 한 번 가입해 두면 1년 동안 협회에서 진행하는 포럼이나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데 거의 대부분 별도의 비용 지불 없이 참여가 가능하다. 오늘처럼 스웨덴에서 UCAN 포럼이 열리는 날이면 비행기 값이며 호텔비까지 지원되니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연히 학교에서 만난 분들을 계기로 과협에 가입하게 되었고, 내가 살고 있는 덴마크에 아는 사람이 생긴 것만으로도 참 감사했는데 이번에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연구하고 계시는 분들까지 한자리에서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참 감사하고 설렜다.
스웨덴 스톡홀름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가 꽤 되어서 플릭스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미리 예약해 둔 덕분에 수월하게 탑승했다.
여기서 꿀팁을 알려주자면 플릭스버스의 경우 출발 예정 시각 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이전 버스에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탑승권 시간을 무료로 변경해 준다. 그래서 나는 공항의 사정은 언제든 변하기 마련이므로 늘 한 시간 정도 여유 있게 발권한 뒤, 일찍 랜딩 한 경우에는 “다음 시간표를 예매해 놨는데 지금 버스에 먼저 탈 수 있을까?” 하고 승무원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내가 경험한 경우에는 승차권 시간을 현장에서 바꿔준 후 탑승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종종 내가 타고자 하는 시간보다 조금 늦지만 저렴한 티켓을 구매해 두었다가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플릭스버스 시간을 당겨 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는 1석 2조의 행운이 따라오기도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이 포럼 덕분에 처음 와봤는데 덴마크와 비슷하면서도 건축물이 조금 더 동글동글한 맛이 있었다. 날씨는 덴마크보다 훨씬 추웠다. 전날 덴마크에도 눈이 펑펑 내렸는데 스웨덴에도 동시에 눈이 내렸나 보다. 온 도시가 꽁꽁 얼어붙어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내가 느낀 스웨덴 사람들의 첫인상은 덴마크 사람들보다 조금 더 ‘북유럽 스럽다’는 것이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북유럽 중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있어서 그런가 차갑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을 보면 웃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고 자연스럽게 스몰톡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길을 가다가 내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먼저 다가와 도와주는 경험도 많이 했다.
핀란드에서도 살아본 나에게 덴마크는 북유럽 문화 반, 서유럽 문화 반이 섞인 단정하면서도 힙한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반면 스웨덴에서 받은 첫인상은 핀란드와 조금 더 비슷했다. 사람들이 많이 웃고 있지는 않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느낌이었다. 개인 간의 스페이스가 조금 더 필요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스웨덴어는 덴마크어와 스펠링이 비슷해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행 내내 꽤 편했다. 그런데 발음은 전혀 달라서 그것도 신기했다. 오히려 사운드만 들으면 스웨덴어는 핀란드어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했다. 핀란드어는 정말 독자적으로 다른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스톡홀름에서 유명하다는 시나몬롤과 오렌지 주스를 파는 곳에 들어가 몸을 좀 녹였다. 그런데 내가 핀란드에서 먹었던 시나몬롤과는 맛이 달라서 조금 실망했다. 핀란드에서 지낼 때 시나몬롤 만드는 법을 배운 적이 있는데 이 카페에서 만드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나는 북유럽의 시나몬롤이라면 다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라에 따라 맛도 모양도 다른 시나몬롤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혼자 광광을 하려고 포럼 하루 전날 일찍 왔는데,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바로 노벨상 박물관이었다.
스웨덴 하면 노벨상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여기 아니면 언제 와보겠나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너무 좋아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았던 사람들의 업적과 히스토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김대중 대통령님과 한강 작가님도 계셨다. 한국인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님의 수감 당시 옷과 사진들은 처음 봤다.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쳐오셨는지 스톡홀름에서야 비로소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가히 내가 가본 박물관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이 아닐까 싶다.
시간을 맞춰 가면 도슨트도 들을 수 있는데 정말 프로페셔널하셔서 설명이 이해가 쏙쏙 되면서도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다. 도슨트분은 한강 작가님의 팬이라면서 본인이 읽었던 책에 대해 내게 열변을 토하셨다. 정작 나는 한강 작가님의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끝까지 읽은 책이 없어서 조금 쑥스럽기도 했다. 해외 사람들이 우리나라 작가님의 책을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시대가 되었다니 참 감사한 시대에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시기에 처음 스웨덴을 방문해 노벨상 박물관까지 와볼 수 있어서 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에는 스칸디나비아 과협의 스파크 챌린지 & 커리어 포럼에 참가했다. 북유럽 과학 기술 센터가 스웨덴 솔나에 위치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행사장까지는 호숫가를 따라 걸어서 이동했다. 확실히 스웨덴이 덴마크보다 조금 더 추웠다. 행사장 근처까지 도착하고도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 헤맸는데 심지어 도로 하나는 닫혀 있었다.
겨우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상당히 세련된 새 건물이었다. 웰컴 푸드로 간단한 점심 샌드위치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호텔 조식을 너무 많이 먹고 온 탓에 바로 먹지는 않고 하나를 챙겨두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한국인 과학자들끼리는 협회가 있고 우리는 이것을 보통 과협이라고 부른다. 이날은 노르딕 과협 구성원들이 스웨덴에 모여 함께 교류하는 자리였다. 큰 기대 없이 참여했던 행사였는데 생각보다 인생에 대한 조언도 많이 들었고 멋진 분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커리어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행사였지만 실제로는 커리어 이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 뜻깊은 자리였다.
덴마크에서는 나를 포함해 단 세 명이 참석했다. 덴마크에는 한인이 정말 없는데, 노르웨이보다 적게 올 줄은 솔직히 몰랐다. 평소 덴마크에서도 늘 챙겨주시던 박사님 한 분이 갑자기 가방을 뒤적이시더니 지난 8월 빈에서 가져온 과자가 아직 가방에 남아있다며 나에게 주시기도 했다. 몇 없는 덴마크 연구원들의 정이다.
첫 번째 프로그램 중 하나는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스파크 챌린지였다. 팀별로 스타트업을 만들 만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심사위원들이 각 아이디어에 얼마의 예산을 투자할 것인지 점수를 매겨 최종 1등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상금이 따로 걸린 대회는 아니었다. 이전부터 비슷한 이벤트를 진행해 오셨다고 하는데, 스타트업을 더 많이 육성해야 한국이 발전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연구자들도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과학자 협회에서 진행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과학적인 아이디어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제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해외 취업을 도와주는 플랫폼도 있었고, 덴마크 생활을 시시콜콜 비판하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었다.
중간에는 스웨덴의 피카 시간도 가졌다. 스웨덴에서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피카라고 부른다. 이날 먹은 빵은 시나몬번이 아니라 처음 들어본 카다멈번이었는데 내 취향에는 잘 맞지 않았다. 대신 함께 준비된 당근 케이크가 정말 맛있었다. 이름이 '브리오슈'인 베이커리에서 샀다고 알려주셔서 기억해 두었다. (스톡홀름에 가면 꼭 들려보세요... 진짜 맛있음)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에게도 어떤 스타트업이 가장 유망할지 투표하는 투표권이 주어졌는데 예상대로 가장 실용적이고 실제 서비스로 현실화되고 있던 채용 플랫폼이 1등을 했다. 나도 그 아이디어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데 머뭇거리다가 정작 1등 투표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해외 취업을 생각만 하다가 막막해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렇게 현지에 있는 사람들이 채용을 연결해 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해도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서비스가 각 나라별로 생겨서 한국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기회가 많이 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날 내가 가장 좋았던 시간이 이어졌다. 바로 패널 세션(Panel Session)이었다.
한 명의 사회자가 질문을 이끌고 나머지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좌담회 형식의 시간이었다. 우선 참가자들을 20대, 30대, 40대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했는데 그 대화들 속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내가 덴마크에서 이런 방식에 많이 훈련되었는지 주도적으로 손을 들고 계속 의견을 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한 학기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변한 내 모습이 스스로도 조금 낯설면서 기특하기도 했다.
30대 그룹은 제일 인원이 많은 그룹이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삥 둘러앉아 우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이 커리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를 하나씩 이야기했다. 나는 나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재미’라고 적었다. 나는 뭐든지 재밌고 흥미가 생겨야 호기심이 생기고 그래야 더 잘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커리어를 선택할 때도 조금 지루하다거나 시간이 가지 않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다른 분들은 자기만족, 경력, 동기부여, 네트워크 등을 이야기했고 ‘과감한 선택’이라고 적으신 분도 있었다. 우리는 그중 과감한 선택을 ‘적극성’이라는 말로 다시 표현해 보고 그 단어에 대한 더 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흔히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고 자신의 의견을 숨기고 조용히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유럽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생활하면서 많이 느꼈다. 그래서 때로는 조금 나서기도 하고 내가 잘한 것을 스스로 먼저 이야기하기도 해야 사람들이 내가 이곳에서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적극성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때로는 취업 기회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성'은 유럽의 취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다음엔 우리가 현재 어떤 '적극성'을 가지고 해외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학교에서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이 없어서 교수님을 찾아가 나만을 위한 스페셜 코스를 만들어서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덴마크의 top3 대학교인 덴마크공대와 코펜하겐 대학교 그리고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이 협업해서 진행했던 Open Innovation 프로젝트에서 우리 팀이 우승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고 스스로 기회를 찾아 나서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덴마크 사람들만 놓고 보면 다들 샤이한 것만 같지만, 의외로 덴마크에서는 적극성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목소리를 내는 자에게 기회가 생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30대들의 토크가 끝난 뒤에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를 대표해 두 명씩 앞으로 나가 모든 참가자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덴마크에서는 30대 참가자가 단 두 명뿐이라 내가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이야기하려니 많이 떨렸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말을 주도해서 많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무엇보다도 청중들이 내 이야기를 깔깔 웃으며 재밌게 들어주셨다. 내가 사람들을 웃기는 데에 욕심이 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일이 생각보다 나와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나이대별로 나오는 주제와 고민, 답변이 달랐는데 같은 나이대 안에서는 비슷한 답변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20대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이야기했고, 30대는 안정감과 도전 사이에서의 망설임을 이야기했다. 40대에서는 가족과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앞으로 내 30대와 40대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채워질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번 직업의 길을 바꾸며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해 온 한 분은 이런 성향도 결국 유전 때문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이 살아온 모습을 자신도 비슷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내 부모님도 떠올랐다. 우리 부모님 역시 직업을 여러 번 바꾸셨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는 것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싶었다. 그런데 친언니는 한 직장을 10년 넘게 다니고 있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결국 같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더라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언니는 자꾸 직업을 바꾸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한 곳에서 오래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나는 ‘직업은 옮겨 다녀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보고 자란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각자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문과인데 내 형제들은 모두 이과라는 점도 재미있다.
20대 패널 중 한 분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한 가지 커리어를 쭉 이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오히려 우리에게 역으로 던졌다.
그 질문에 한 40대 박사님께서 결국 자신의 성격에 따라 직업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불안감이 높은 사람은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할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여러 번 진로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분은 공대를 다니다가 경제학 석사도 해보고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셨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이가 50대, 60대, 70대가 되어 지금을 돌아봤을 때 무엇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가 나에게도 많이 와닿았다. 나 역시 하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해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갭이어도 많이 생겼고 불안함을 감수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리고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경험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30대면 아직 오래 산 것도 아니라서 짧게 여러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경력만 놓고 본다면 제대로 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관해 보이는 요소들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되어 쓰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살아오면서 이전의 경험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도움이 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 20대 친구에게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다'라고 이야기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겁이 늘어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또는 나중에는 하고 싶은 것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이 정답이고 어떤 선택이 좋거나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저 그런 인생이 있을 뿐이다.
마지막에 포럼을 마치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도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진행자분께서는 원래 커리어 포럼이니 누군가 강연을 하고 참가자들이 듣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각자가 사회자가 되기도 하고 패널이 되기도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이번 행사가 유독 좋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구나 싶었다. 참가자들에게 직접 역할을 주고 믿고 맡겼더니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션이 탄생했다.
나는 이 세션을 보면서 예전 회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 부장님이 떠올랐다. 내가 자주 듣는 명상에서
“당신이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빈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나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항상 이 부장님을 떠올렸다. 애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해내고, 조금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과적으로 일을 잘 해내는 분이었다. 나는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이날 진행자분은 스타트업 공모 프로그램에도 직접 참여하셨는데 본인이 취미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5년째 데이터를 쌓고 있다고 하셨다. 돈이 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서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순수함과 호기심, 꾸준함이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시키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스스로 동기를 만들어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글을 쓰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고, 내 글들이 누군가에게 가 닿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모든 세션이 끝난 뒤에는 저녁으로 초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덴마크에 온 뒤 처음 먹는 초밥이었다. 코펜하겐에서는 외식물가가 워낙 비싸서 외식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특히 좋아하는 연어를 먹고 싶었던 터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 연어 위에는 트러플까지 올라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먹었던 그 어떤 초밥보다 맛있었다. 이날 패널 세션에서 배운 것이 많아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웠는데 맛있는 저녁까지 먹으니 스웨덴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덴마크보다 물가가 훨씬 저렴한 스웨덴을 오니 이곳으로 유학을 왔다면 나도 어느 정도 외식도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보통 사람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덴마크가 너무 좋다. 내 취향이야..
스웨덴에 계신 분들에게 스톡홀름 맛집 추천도 야무지게 받아두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몇 분과 함께 스톡홀름 시내로 이동해 뒤풀이도 했다. 호텔을 예약할 때 시내에 잡을지 솔나에 잡을지 고민했었는데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시내 호텔이 편했겠다 싶었다. 교통비가 비싸다 보니 한 번 숙소로 돌아가면 다시 시내로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은 코펜하겐이나 스톡홀름이나 비슷했다.
다른 분이 그룹 티켓으로 함께 결제해 주신 덕분에 이날은 교통비를 내지 않았다. 그분은 내가 아는 언니와 얼굴이 정말 닮아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분 역시 나를 보고 자신의 친구와 닮았다고 했다. 내가 아는 언니와 고향도 비슷한 곳이라 더욱 신기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니가 내주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감사했지만 처음 만난 분에게 무언가를 받은 것 같아서 마음 한편으로는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도 꼭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중에 나 같은 유학생을 만난다면 나 또한 그렇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스웨덴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웁살라대학교에 대한 좋은 평가를 여러 번 들었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고 하는데 스톡홀름과는 또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여러 분이 좋다고 이야기하니 도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주변에 스웨덴인 남자친구가 있는 분들도 꽤 있었는데 스웨덴 배우자가 있는 경우 학비와 관련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덴마크에도 비슷한 제도가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네덜란드에도 배우자나 파트너와의 관계를 증명해 비자를 받는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풀이를 마치고 다시 솔나로 돌아오는 길에는 스톡홀름과 오슬로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정말 많은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들이 석사를 하고 박사를 하는구나.’ 그분들은 공부와 연구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게 왜 재밌지?'하고 반문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연구원이 그냥 좋아 보여서 혹은 있어 보여서 이 길을 선택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부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해외로 대학원에 온 사람이라기보다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살아볼 수 있다는 이유가 컸다. 그런데 이날 만난 분들이 헤어지면서 내게 공통적으로 해주신 말이 있었다. 바로 자퇴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아마 내가 덴마크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 같다. 걱정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마음은 참 감사했다. 하지만 흔들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나에게도 좋은 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날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삶과 커리어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각자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재미있어하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스웨덴에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고, 듣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다. 이번 포럼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