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끝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학위 취득, 논문 게재, 과제 수주, 테뉴어 확보.
우리 연구자들의 삶은 끊임없는 결승점의 나열입니다.
우리는 이 결승선만 통과하면, 이 타이틀만 얻으면 비로소 보상받고 안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청춘을 갈아 넣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토록 바라던 결실을 얻은 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잠깐의 해방감 뒤에 찾아오는 것은 더 높은 허들이 놓인 또 다른 경기장과 "이걸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라는 공허함이었나요?
만약 당신이 지금 지독하게 피로감을 느끼고 있거나,
혹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음에도 정체 모를 불안과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다면,
어쩌면 지금까지 누군가 정해놓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만을 유일한 정답으로 여겨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데는 능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좁은 전공 분야라는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두었습니다.
내가, 이 성벽 안에서 승리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정작 성벽 밖의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 연구를 시작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합니다.
연재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제임스 P. 카스의 <유한 게임과 무한 게임>입니다.
- 우리는 무한 게임을 유한 게임처럼 플레이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게임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승자를 가려 게임을 끝내기 위해 하는 유한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플레이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하는 무한 게임입니다.
학문과 연구, 특히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바이오 연구는 본질적으로 무한 게임입니다.
과학사에서 그 어떤 연구도 완벽한 끝을 맺은 적은 없습니다.
하나의 의문이 풀리면 그 뒤에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연구 생태계는 이 무한 게임을 철저히 유한 게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논문 게재, 임팩트 팩터(IF), 연구비 수주라는 눈앞의 경기 규칙에 갇혀 지냅니다.
이 규칙들은 플레이어들 간에 누가 이겼는지 합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조건에 가깝습니다.
그림 1. 우리는 때로 유한한 규칙에 갇혀, 정작 우리 앞에 열려 있는 무한한 자연의 대화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생성
- 당신은 무한 게임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고도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과연 무한 게임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무한 게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질이 있습니다.
바로 예측 불가능성과 모호함을 견디고 심지어 그것을 즐기는 능력입니다.
저자는 "무한 게임 플레이어는 놀랄 것을 기대하며 플레이를 계속한다"라고 말합니다.
가설이 어긋나고, 실험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보여주는 새로운 이면을 마주하며 호기심을 느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러한 무한 게임의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고, 노력한 만큼 정량적인 보상이 주어지며, 확실한 승패가 갈리는 유한 게임의 판에서 더 큰 안정감과 효율성을 발휘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우열 문제가 아닌 적성의 문제입니다.
만약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는 연구라는 무한 게임의 속성이 자신을 숨 막히게 하고,
매 순간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이 지독한 고통으로만 다가온다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무한 게임에 소질이 없거나, 이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명확한 규칙과 보상이 작동하는 유한 게임의 판으로 과감히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오히려 나라는 플레이어의 삶을 지키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때 많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그동안 투자한 시간, 즉 매몰 비용에 대한 미련입니다.
"내가 대학원과 포닥으로 보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라며 스스로를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끼워 넣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연구실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세포를 키우거나 파이펫팅을 하는 기술만이 아닙니다.
복잡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정의하고, 가설을 세워 검증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과학적 사고력 그 자체입니다.
이 무기는 연구실 밖에서 훨씬 더 다양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어려운 과학을 대중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기술과 사회의 연결 고리를 설계하는 과학기술 정책 연구원,
자신이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창업가,
혹은 기술 투자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전공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세상으로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연구실 밖에도 수많은 매력적인 유한과 무한의 게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투자한 시간에 얽매여 좁은 디딤돌 위에만 서 있으려 하지 마십시오.
내가 쌓아온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단지 새로운 판에서 다르게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림 2. 연구실 문을 열고 새로운 무한 게임의 판으로 나아가는 여정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생성
- 삶이라는 진짜 무한 게임을 위하여
"살기 위한 유한 게임은 진지하며, 삶 그 자체인 무한 게임은 즐겁다. 무한 게임에는 웃음이 울려 퍼진다."
우리가 연구라는 좁은 성벽을 넘어서 더 넓은 인문학적 세계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학위나 논문은 우리의 삶을 증명해 주는 영원한 타이틀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유한 게임의 기념품일 뿐입니다.
만약 연구를 계속 이어 나가기로 결심했다면, 이제는 태도를 바꿀 때입니다.
자신을 갉아먹는 진지함 대신, 예기치 못한 발견의 가능성에 가슴 설레는 유쾌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무한 게임 플레이어는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4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며
연구실을 지키며 학문의 길을 걷고 있는 분이든,
혹은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영역에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분이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플레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판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그 판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를 옭아매고 소모시키는 유한 게임의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까,
아니면 다음 단계로의 지속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무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습니까?
부디 우리가 하는 연구가,
그리고 연구라는 단단한 디딤돌을 딛고 펼쳐질 우리 모두의 삶이,
단순히 정해진 끝을 보기 위한 고단한 질주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보다는 매 순간 배움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는 즐거운 무한 게임의 여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