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일상생활은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 Rosalind Franklin
요즘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는데 다들 잘 지내시나요? 지난 글에서는 실험이 실패했을 때 과학자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오늘은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애초에 "잘 됐다"라고 느꼈던 결과조차 의심해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할머니 손은 정말 약손이었을까
오늘은 과학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어릴 때 저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랑 살았던 기억 중 하나로 저는 유독 배가 자주 아팠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거칠고 까끌까끌한 손으로 배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셨다. “할머니 손은 약손. 우리 손녀 배 아픈 거 다 날아가라.”
그림. 구글 Gemini 나노 바나나2 제작 AI 이미지
신기하게도 조금 지나면 정말 덜 아픈 것 같았다. 그래서 저는 배가 아플 때마다 할머니를 찾았고, 우리 할머니 손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기억은 참 따듯하다. 아마 많은 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엄마손은 약손, 할머니손은 약손. 또는 체했을 때 손을 따주면 괜히 괜찮아진다 거나, 배에 따듯한 수건을 올려놓으면 낫는다 거나 하는 의약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은 경험말이다.
그런데 연구를 시작하고 과학을 배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할머니 손 때문이었을까?
[배가 아팠다] → [할머니가 배를 쓰다듬어 주셨다.] → [그리고 배가 나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왔다.
“우리 할머니 손은 특별해”
사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한다. 어떤 행동을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면 우리는 그 행동이 원인이라고 믿는다. 건강식품을 먹었더니 몸이 좋아졌다. 새로운 운동을 했더니 통증이 줄었다. 어떤 차를 마셨더니 잠이 잘 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행동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정말 그 때문일까? 그런데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같은 행동을 했는데도 효과가 없었던 사람은 없었을까? 열 번을 반복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
사실 배가 아플 때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앉는 경우도 많고, 따듯한 손길 자체가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도 있을 수 있다. 할머니 손이 배 아픈 것을 정말로 낫게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나아질 시점에 손길이 우연히 겹친 것인지는 그 순간의 경험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면 과학적 사고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조금 더 깊게 질문하는 습관에 가깝다. 연구실에서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질문하는 방법이었다.
입안을 붉게 물들이던 열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TV를 보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계속 씹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입안은 점점 붉게 변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간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놀랐다. 그것은 ‘빈랑’이라는 열매였다.
사진=나무위키
빈랑은 동남아시아와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오랫동안 씹어온 기호식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열매처럼 보이지만 빈랑에는 아레콜린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이 성분은 신경계를 자극하여 각성효과를 일으키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빈랑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과 피로감소 효과를 경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곤할 때, 일을 할 때, 또는 습관적으로 빈랑을 씹는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국제암연구소에서 빈랑을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된 Group1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간 사용 시 구강 점막 섬유화, 치주질환, 구강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빈랑 사용이 많은 지역에서는 구강암 발생률 역시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왜 이 위험한 걸 계속 사용했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 동시에 빈랑이라는 맛을 보기 위해 먹어봤던 그 프로그램의 PD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실제로 각성감과 집중력 향상을 경험했다. 그 경험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 지역에서 태어났다면 커피 대신 빈랑을 씹고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원래 효과를 경험하게 되면 믿게 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 구강암이 유독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구자들은 그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왜 이 지역에서 구강암이 많이 발생하지?라는 관찰이 출발점에 가까웠을 것이다. 한두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빈랑을 씹는 사람들과 씹지 않는 사람들의 구강암 발생률을 비교하고, 씹는 양과 기간에 따라 위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추적했다. 한 명의 우연한 경험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역학 연구와 실험 연구가 축적되면서 빈랑 사용이 구강암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국제암연구소는 빈랑을 발암물질로 분류하게 되었다.
결과보다 한 걸음 더
과학은 눈앞의 결과를 부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단순히 효과가 있었다에서 멈추지 않고 왜 효과가 있었을까? 그리고 정말 그것 때문이었는가를 함께 질문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많다. 영양제 먹고 간 수치가 좋아졌어요, 이 약 먹고 살이 빠졌어요, 설탕은 몸에 안 좋아요 알룰로스 드세요. (우리가 먹는 알룰로스도 사실 대체로 안전하지만 많이 먹으면 설사, 가스, 복통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말들을 SNS등에 보이면 쉽게 믿고 결제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서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한다. 몇 명이나 효과를 본 걸까? 우연이 아닐까? 왜 좋아졌을까? 다른 부작용은 없을까? 이런 질문들은 부정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질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연구실에서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왜?”라는 말. 결과를 가져오면 또 묻는다. 왜 그렇게 나온 것 같아? 정말 그 이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게 맞을까? 아마 후배들 입장에서는 꽤 피곤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후배였을 때 그런 질문들이 부담스럽고 귀찮았다. A라는 결과에 A라는 답변밖에 못하는데 B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돌이켜 보면 연구자로서 가장 많이 성장했던 순간들은 바로 그 질문들 앞에서 고민하던 시간들이다. A가 B에 이런 효과를 주는데 정말 A 때문에 B가 변한 걸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A 때문이라면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실험들은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이것이 연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일 것이다.
과학적 사고는 거창한 실험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길에서, TV 속 낯선 열매에서,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경험들 속에서 시작된다. 눈앞의 결과를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질문해 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과학이 우리 일상에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출처
1. 빈랑의 정의와 일반적 특성은 나무위키를 참고하였으며, 발암성 및 규제 관련 내용은 국제암연구소(IARC) 및 언론 보도를 참고하였습니다.
2. 본 원고는 전반적으로 직접 작성하였으며, 생성형 AI는 일부 문장 표현을 다듬는 데 보조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최종 원고는 전면 검토 및 수정을 거쳐 완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