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학생 아르바이트(Student Job) 구하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튜던트 잡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스튜던트 잡은 말 그대로 학생일 때 하는 일을 말하는데요. 물가가 비싼 덴마크에서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너무나 흔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우리처럼 Non- EU인 학생들도 학생비자로 주 20시간은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방학 기간인 6-8월은 풀타임 근무도 가능하고요.
스튜던트 잡 중에서도 가장 흔한 방법은 우리나라처럼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 역시 경쟁률이 매우 치열해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덴마크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아르바이트라고 부르는 서빙 일도 시급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만 일해도 한 달 생활비를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다음으로 많이 찾는 것은 학교 안의 일자리입니다. 어떤 수업을 지난 학기에 들었다면 다음 학기에는 그 수업의 조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학점이 높고 수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겠죠? 그래서 아예 수업을 들을 때부터 교수님과 안면을 트고, 다음 학기에 조교를 하고 싶다고 미리 어필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조교 일은 시급도 꽤 높은 편이거든요. 학교 홈페이지에는 수시로 조교 모집,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버디 모집, 학생 행정 조교, 실험실 보조 등 다양한 포지션의 공고가 올라옵니다. 학교 안에서 일을 구하고 싶다면 학교 홈페이지를 자주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스튜던트 잡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분야와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졸업 후 취업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정말 높거든요. 덴마크는 이런 식으로 스튜던트 잡을 했던 학생을 나중에 정규직으로 뽑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로 인터뷰 한 번 본 사람보단 같이 일해봐서 알고 있는, 이미 검증된 사람을 뽑는 게 더 편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대부분 1학년 1학기까지만 놀고 2학기부터는 스튜던트 잡을 찾으려고 애쓰는 거 같아요. 물론 1학기때부터 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서 보통 잡을 구하는데 1년이 넘게 소요된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경우 2년의 석사를 마치면 잡을 구하는 시간으로 3년의 비자를 더 허용해 주는데요. 이렇게 길게 주는 이유는 그만큼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해요. 일을 찾아도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을 많이 주지 않기도 하죠.
이외에도 DTU에는 애초에 학업과 회사 근무를 병행할 수 있는 Industry MSc in Engineering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은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동시에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현지에 와서 일을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되니까 훨씬 마음이 편하겠죠?
모든 석사 프로그램에서 Industry MSc에 참여할 기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전공 분야의 전문지식과 학문적 기초를 쌓는 동시에, 실제 회사에서 자신의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Industry MSc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첫 번째는 1+2 모델입니다. 총 120 ECTS를 3년에 걸쳐 이수하는 과정으로, 첫 1년은 풀타임 학생으로 공부하며 60 ECTS를 이수해야 합니다. 이후 2년 동안에는 학교 수업과 회사 근무를 병행하게 됩니다. 회사에서는 주당 25시간을 근무하며, 학생은 유급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non- EU 학생은 20시간 밖에 일하지 못하니까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본 거 같기도 한데.. 정확한 건 학교에 물어보거나 찾아보셔야 할 듯합니다.
첫해에는 학교에서 전공 지식과 학문적 기초를 쌓고 다른 학생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이후 2학년과 3학년에는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 업무에 적용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4년 모델입니다. 이 과정 역시 총 120 ECTS를 이수하지만 기간은 4년입니다. 4년 동안 학생 신분과 회사의 유급 파트타임 직원 신분을 동시에 유지하며, 학업과 주당 25시간의 회사 근무를 계속해서 병행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실제 기업 환경에서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Industry MSc는 일반적인 학생 아르바이트와는 조금 다릅니다. 석사과정 자체에 회사 근무가 포함된 학위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학업과 유급 근무를 병행하면서 석사학위와 실무 경험을 함께 쌓게 됩니다. 이러면 학교 졸업 후 같은 회사나 다른 회사에서 정규직 포지션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이 정말 높아집니다.
만약 유럽 석사 후 취업을 할 생각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필드에서 스튜던트 잡을 구해보시는 것은 꼭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졸업 후 기나긴 취업 준비생으로서의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수도..?
저는 거주허가증과 CPR 카드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학기가 시작됐을 때는 이미 유럽 학생들이 이런 일자리를 대부분 가져간 뒤였습니다. 심지어 다른 유럽 국가에서 DTU로 교환학생을 온 친구는 자기 나라에 있을 때부터 미리 일자리에 지원해 일을 구한 상태로 덴마크에 왔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유럽 친구들은 비자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어 고용주가 선호하기도 하고 거주허가증도 신청하자마자 2주면 나오니까요... 저희는 최소 1달-3달까지도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제가 살고 있던 지역의 커뮨,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주민센터와 비슷한 기관에서 연결해 준 잡센터를 예약 후 방문해 상담을 받았습니다. 잡센터는 각 지역마다 있어 자신이 거주하는 곳의 센터로 예약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력서를 미리 보내고 상담을 받으러 가면 되는데요. 저는 굉장히 운이 좋게도 아주 친절한 중년의 여성 상담사분을 만났습니다.
사실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DTU에서 바이오테크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것에 완전히 싫증이 난 상태였습니다. 취업을 하겠다고 석사까지 시작했는데, 취업을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바이오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기도 했고, 오랜만에 오래도록 앉아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이런 가만히 앉아서 시간이 가지 않는 회사 생활이 답답해서 그만뒀었다는 사실이 기억났어요. 잠깐 멈추고 내가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재정의를 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업 상담사분께 그런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참에 커리어를 완전히 전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사실 더 이상 바이오도 하고 싶지 않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는 회사 생활도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주 막막하다고요. 학기 초 이후로 오랜만에 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면 상담사분이 학교 담당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분은 달랐습니다. “재미도 없고 성향에도 맞지 않는데 계속할 이유가 없다. 이참에 진짜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같이 찾아보자.” 그러면서 제 이력서를 아주 꼼꼼하게 분석해 주셨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바이오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종종 일을 쉬는 시기에는 영어 강사로 일하곤 했습니다. 우선 아이들을 좋아하고, 영어도 좋아하고, 누군가를 돕고 가르쳐주는 일을 기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앉아 실험을 하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던 연구원 생활과 달리, 교실 곳곳을 누비며 학생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참 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계속 서 있어야 하니 다리도 아프고, 계속 말을 해야 하니 목도 아픕니다. 고등학생을 가르칠 때는 수능과 내신 점수에 대한 학무보의 압박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을 가르칠 때는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감기를 옮는 일도 다반사고, 수업 중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이가 있으면 반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께 맡겨두고 화장실을 따라가 도와주고 다시 뛰어와 수업을 이어가야 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뭐든 쉬운 일은 없답니다.
몸은 고됐지만 귀여운 아이들과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재밌고 보람돼서 저는 늘 학원에 가는 길이 즐거웠던 거 같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이 일이 저에게 훨씬 더 잘 맞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늘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날 만난 상담사분은 그런 저에게 정말 필요했던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덴마크에서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여기서도 재미있다면 정말 과감하게 바이오를 내려놓는 결정도 해보자고요. 상담사분은 컴퓨터 화면에 여러 검색창을 보여주시며 덴마크에도 국제학교가 많으니, 그런 곳에서 영어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다섯 곳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채용 공고가 없는 곳에는 직접 전화를 걸어 일할 자리가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먼저 일을 찾아 나서서 구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없던 자리도 생긴다고요.
그랬더니 정말 한 학교에서 '지금 당장 비어 있는 자리는 없지만, 교사들은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 빠지는 일이 있기 마련이니 대체교사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바로 다음 날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고, 다음 날 곧바로 트라이얼을 하게 되었습니다. 트라이얼은 급여를 받으면서 실제로 일을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트라이얼 바로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운명처럼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죠. 유럽 사람들도 덴마크에서 일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는데, 저는 채용 공고도 없었던 곳에서 전화를 걸어 이력서를 보냈고 곧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글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덴마크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따로 채용 공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제 자리를 만들어낸 셈이니까요. 두 달 일하고 난 뒤부터는 주 3일 고정으로 와줬으면 좋겠다는 공식 오퍼도 받았답니다. 공공기관이라 월급도, 세금 보고도 알아서 참 잘해주셔서 좋았어요!
또 하나 운이 좋았던 점은 유럽에서 교사가 늘 부족한 직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교사는 유럽에서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직종이기도 합니다. 교사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인 데다 급여도 높은 편이 아니고, 아이들이 우리나라처럼 선생님을 존경하는 분위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사들도 그래서 자신의 직업이 좋은 직업이 아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은 보기가 드물었어요. 동료 교사들에게 한국에서는 선생님의 권위가 이곳과 반대라고 말해주었더니 참 놀라했던 반응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참교육 드라마를 보니 요즘은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해 슬프지만요.)
저 역시 국제학교에서 일하면서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는 아이들을 보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자리에 앉으라고 해도 무시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았고, 저를 보자마자 등에 올라타거나 제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겨 들고 달아나는 아이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런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결국은 사랑이 필요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보통의 친구들보다 엑스트라 사랑이 필요해서 반항을 통해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고, 안아주고, 놀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랑을 주다 보면 어느새 제 말을 듣기 시작하는 경험을 한국에서 많이 해봤습니다. 덴마크에서도 이것이 통할까 궁금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통하더라고요.
어떤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고 늘 날뛰던 아이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자 어느 순간부터는 저에게는 먼저 포옹을 해주고, 사근사근 말을 걸고, 자리에 앉으라고 하면 바로 앉아 칭찬해 달라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동료 선생님들은 마치 제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기해했습니다. 이건 대단한 비법이 있다기보단, 아이들은 누가 자신을 진짜로 사랑하는지 아닌지 아는 것 같습니다. 진심은 국적을 초월해 늘 통하나 봐요.
저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주로 Art& Craft를 담당해서 가르쳤어요. 그중에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12살의 소녀와 정말 친해졌는데요. 그 친구는 저랑 이름도 똑같았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을 갖추고 있었어요. 마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저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습니다. 나랑 스무 살이 넘게 차이가 나는데도 대화가 정말 잘 통했어요. 저보고 왜 유학을 왔는지 그리고 왜 덴마크를 선택했는지 묻더라고요. 그동안도 바이오 연구원으로 이런 이런 일들을 해왔고, 내가 연구를 하면서 지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서 더 공부하고 싶었고, 덴마크는 원래 좋아하는 나라기도 하고 경쟁적인 한국보단 나을 것 같은 덴마크의 학교에서 공부한 후 여기서 유명한 덴마크 바이오 기업인 Novonesis나 Novonordisk에 취직해서 워라밸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DTU에 와서 내 인생 중 가장 경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소름 돋는 반전까지 모두 공유했습니다. 그 친구는 어머니 아버지도 Novonesis 연구원이라면서 신나서 설명하면서도 많이 실망하고 고민됐을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 주던 그녀와의 대화 시간이 참 힐링이었습니다. 저는 나이를 초월한 대화를 참 좋아해요.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거든요.

그 친구는 늘 저와 함께 만들기 활동을 했는데, 이 친구 참 창의적입니다. 제가 털실로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어디선가 찰흙을 가져와 눈코입을 만들어 주었는데 너무 찰떡인 거예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아이에게서 또 배웁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늘 피드백해주곤 했어요. "You are a DIY Person"이라며 저를 정의해 주었어요. 제가 어제 수업 끝나고 집에 가서 전구로 트리를 만든 것을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더니 너는 항상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Creative DIY Person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단어가 참 좋았어요. 어린아이 시선에도 제가 무언가를 손으로 꼬물꼬물 만드는 시간이 행복해 보였나 봅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며 노는 것도 이미 좋은데, 내가 좋아하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며 놀기만 했는데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사실이 항상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사실 학교에서 바이오 수업을 듣는 날보다 국제학교에 출근하는 날이 더 설렜습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무엇을 만들며 놀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오늘은 어떤 아이의 부모님이 가장 늦게 데리러 올까. 이런 생각을 하면 출근길이 참 즐겁더라고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 다닐 타입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혼자 실험실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연구원보다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창조하는 DIY Person일 때 즐거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DTU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가고 싶은 학교도, 나라도 딱히 없어 유럽 전역에 있는 학교를 열 곳이나 지원했을 때부터. 한 군데 빼고 모든 학교에 합격하고 장학금까지 받았는데도, 정작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때부터. 제 글을 처음부터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마 저의 그런 여정들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제가 원하던 길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남들이 많이 선택하는 길을, 남들이 인정하는 커리어를 따라가려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자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말 긴 고민의 시간을 거쳤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가기 전 회사 취직이라는 것 이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영어 학원을 차릴까? 손재주가 좋으니 무언가를 사람들과 함께 만들 수 있는 공방을 차릴까?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뭔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참 창의적인 사람이었거든요. 미대에 가고 싶은 로망도 있었는데 부모님이 예술은 안된다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에 꿈을 접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 이제 다 컸잖아요? 내 인생인데 내가 결정해야죠.
결국 저는 학기 마지막 시험까지 잘 마치고 자퇴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 가구 제작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톱을 잡고, 뚝딱뚝딱 가구를 만들어 내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설렜던 5개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그렇게도 발걸음이 무거웠던 등굣길이었는데, 가구 학교를 가는 길은 늘 신이 났어요. 작은 체구의 여성이 하루 8시간씩 톱질만 해대서 몸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데도 너무 재밌어서 얼른 목공 하러 가고 싶다고 말하던 제 모습을 보고 너무 신기했어요. 사람은 역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나 봐요. 저는 덴마크를 정말 사랑했지만, 자퇴를 결정한 건 후회하지 않아요. 물론 덴마크에 간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덴마크를 갔기 때문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거든요. DTU 오리엔테이션 위크에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알게 되면서 제 안에 있던 디자인에 대한 열정도 다시 상기할 수 있었고요. 미감이 미친 가구계의 거장 덴마크에 갔기 때문에 가구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고요. 다시 복기해 보면 이 모든 게 처음부터 계획되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는 단시간만에 한국에서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목공방을 창업을 할 생각이었지만, 뜻밖에 기회가 생겨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지루하게 자리에만 앉아있지 않아도 발로 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연구원 때보다 몸은 조금 더 고될지라도 내 손으로 예쁘게 하나씩 꾸며 완성되는 방들을 볼 때마다 바로바로 성취감이 느껴져서 너무 즐겁습니다. 언젠가는 디자이너로 다시 덴마크에 가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저의 덴마크 바이오 석사 후 취업 도전기를 기대해 주신 분들께는 안타까운 소식일 수도 있지만, 저의 연재는 오늘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사실 저는 덴마크 가서 석사도 해봤고 취업도 해봐서 아쉽지가 않아요? ㅎㅎ 은근 그 짧은 시간에 알차게 할 거 다 하고 왔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바이오를 멈추지도 않을 것 같아요.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니 바이오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고, 이걸 꼭 일로 하지 않아도 책을 읽고 논문을 읽으면서 혼자 계속 적당히 좋아하며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됐어요.
그래도 제가 이곳에 남겨둔 글들이 유럽 바이오 석사 후 취업을 목표로 하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그리고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연재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당자님께도 저의 새로운 여정을 늘 응원해 주시고, 성장기를 기록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