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포닥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연구자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연구 목표를 향해 협업하는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었다. 그렇게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함께 연구하는 동료들로부터 "당신과 연구하는 것이 참 좋다"는 말을 듣게 된 경험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연구하고 싶은가?"
논문을 많이 쓰는 사람,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 연구비를 많이 확보하는 사람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매일 소통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함께 연구하고 싶은 사람의 기준은 조금 달랐다.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연구는 생각보다 모호한 영역이 많다. 어떤 가설을 세워야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해결해야 하는지, 어떤 데이터를 생산해야 하는지, 어떤 분석이 필요한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방향이 불분명한 것이다. 연구의 목표가 수시로 바뀌거나 기대하는 결과가 명확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연구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그 방향이 중요한지,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덕분에 팀원들은 불필요한 추측에 시간을 쓰지 않고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다.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논리에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논리는 고집과는 다르다. 자신의 의견만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연구에서는 매일 수많은 선택이 이루어진다. 어떤 실험을 진행할지, 어떤 분석 방법을 적용할지, 어떤 결과를 우선적으로 검증할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 이때 신뢰가 가는 사람은 단순히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 근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데이터와 가설, 그리고 연구 목표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설령 의견이 다르더라도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맞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타당한가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확한 방향성과 논리를 실제 협업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연구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소통 능력이다.

나는 처음 해외에서 연구 발표를 준비할 때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국어로는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었던 내용들이 영어로 전달되는 순간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나에게는 명확한 논리였지만 청중의 입장에서는 핵심 메시지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경험 이후 발표를 준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보다 청중이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발표 자료를 만들 때도 데이터를 나열하는 대신 메시지가 한눈에 보이도록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연구자에게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 더욱 중요하다. 언어적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달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보완하기 위해 나는 오히려 시각 자료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다. 설명이 길어질 것 같으면 그림을 사용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보여줘야 한다면 도식화한다. 하나의 개념도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을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뛰어난 연구자들의 발표를 보면 화려한 영어 표현보다 명확한 시각자료가 더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핵심 메시지가 그림과 그래프를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청중은 문장을 해석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연구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강점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해외 연구실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실험 설계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통계 분석에 뛰어나며, 또 다른 사람은 임상적 해석 능력이 탁월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기여하지 않는다. 좋은 연구자는 혼자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팀원들이 가진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안다. "이 분야는 당신이 더 잘 안다", "이 부분은 당신의 의견이 필요하다"라는 말 한마디가 팀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사람은 자신의 전문성이 존중받는 환경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낸다.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신뢰할 때 협업은 훨씬 강력해진다.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사람보다 상대방의 이해를 돕는 사람이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보다 팀의 목표를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질문을 환영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연구는 혼자 만드는 성과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해외 포닥 생활은 연구 기술뿐 아니라 사람과 협업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논문 한 편을 완성하는 것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함께 연구했던 사람들의 태도일 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내가 다시 함께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연구자들은 모두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연구 성과 때문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강점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 여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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