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연구의 이상과 현실 (4) — 저자 순서는 어떻게 감정노동이 되는가
지난 글에서는 공동 연구에서 데이터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공동연구의 데이터는 한 사람의 손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샘플을 만들고, 누군가는 실험을 수행하고, 누군가는 분석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결과를 논문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습니다. 그렇기에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나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노동과 판단이 겹쳐진 결과물입니다.
데이터가 논문 속 figure가 되고, 그 figure가 논문의 핵심 결과가 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 순서가 논의되기 시작할 때 데이터 문제에 대해서 더욱 예민해지게 됩니다.
공동연구에서 저자 순서는 늘 민감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연구자에게 저자 순서는 단순히 논문에 이름이 앞에 있느냐 뒤에 있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공식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실험실에서 보낸 밤, 실패한 조건을 다시 잡은 시간, 반복해서 만든 샘플, 정리한 엑셀 파일, 수정한 figure, 수없이 오간 메일과 회의록은 논문에 직접 남지 않습니다. 논문에 남는 것은 제목과 초록, figure, 그리고 저자 목록입니다.
그래서 저자 순서는 단순한 배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방법이며, 때로는 감정의 기록이 됩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다
공동연구가 시작될 때 저자 순서를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정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물론 큰 틀에서는 “주도하는 연구실이 1 저자를 맡고, 다른 연구실은 기여도에 따라 저자로 들어간다” 정도의 분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누가 제1저자가 될지, 누가 몇 번째 저자가 될지, 어떤 기여가 어느 정도의 위치로 인정될지는 대부분 나중으로 미뤄집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좋은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일단 연구부터 잘해 보자.”
“결과가 나오면 그때 이야기하자.”
“기여도에 따라 정하면 되지.”
이 말들은 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는 어떤 데이터가 나올지, 누가 어느 정도까지 참여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연구는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어떤 사람은 중간에 더 많은 일을 맡게 되기도 하며, 어떤 실험은 예상보다 훨씬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모든 순서를 고정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나중에 정하자”는 말이 정말로 나중에 공정하게 논의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경우 저자 순서는 연구가 거의 끝난 뒤, 논문 초안이 어느 정도 완성된 뒤, 혹은 투고를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현실적인 문제가 됩니다. 그때가 되면 이미 데이터는 쌓여 있고, 논문의 스토리도 정리되어 있으며, 각자의 기여에 대한 감각도 굳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기여도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저자 순서가 어려운 이유는 기여도를 단순히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누가 더 많은 시간을 썼는가.
누가 더 중요한 실험을 했는가.
누가 연구 아이디어를 냈는가.
누가 샘플을 만들었는가.
누가 데이터를 분석했는가.
누가 원고를 썼는가.
누가 마지막까지 논문을 끌고 갔는가.
이 질문들은 모두 중요하지만, 서로 같은 단위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전체 실험의 상당 부분을 수행했지만, 논문의 핵심 figure에 해당하는 실험은 다른 사람이 했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실험량은 많지 않지만 연구 설계와 해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반복 실험과 조건 최적화를 맡았지만, 최종 논문에는 그 과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동연구에서는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합니다. 연구실마다 맡은 파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재 합성을 맡은 연구실은 “이 플랫폼의 출발점은 우리가 만든 샘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포 실험을 맡은 연구실은 “실제로 기능을 입증한 것은 우리가 만든 데이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물실험을 맡은 연구실은 “논문의 임팩트를 결정한 것은 in vivo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원고를 쓴 사람은 “이 모든 결과를 논문으로 완성한 것은 나의 역할”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가 틀렸다면 조정은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어느 정도 맞는 말을 하고 있을 때, 저자 순서는 훨씬 더 민감한 문제가 되고, 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 1 저자라는 애매한 해결책
공동연구 논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방식이 공동 1 저자입니다. 서로 다른 연구실의 기여를 함께 인정하기 위해 두 명 또는 세 명이 공동 1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입니다. 공동연구의 특성을 고려하면 공동 1저자는 꽤 합리적인 방식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한 것이 아니라면, 주요 기여자를 함께 인정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동 1 저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첫째, 공동 1 저자 안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별표가 함께 붙어 있더라도, 독자는 보통 가장 앞에 있는 이름을 먼저 기억합니다. CV나 지원서에서도 첫 번째로 적힌 공동 1 저자와 두 번째로 적힌 공동 1 저자가 완전히 같은 무게로 읽히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공동 기여라고 적혀 있어도, 현실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남습니다.
둘째, 공동 1저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정말 동등한 기여였는지, 연구실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결정이었는지, PI 간 관계를 고려한 조율이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러한 조율이 항상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동연구에서는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실제 실무자의 감각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공동 1 저자는 공정한 인정이 아니라 타협의 결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셋째, 공동 1 저자가 늘어날수록 중간저자의 기여는 더 쉽게 흐려질 수 있습니다.
논문의 핵심 실험 일부를 맡았지만 공동 1 저자에는 포함되지 못한 사람,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했지만 이름이 뒤로 밀린 사람, 원고 수정에 많이 참여했지만 저자 순서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생깁니다.
결국 공동 1 저자는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기여도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별표의 개수가 아니라, 왜 그렇게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합의입니다.
논문에 남는 것과 남지 않는 것
논문에는 많은 것이 남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남지 않습니다.
논문에는 figure가 남습니다.
하지만 그 figure를 만들기 위해 실패한 조건들은 대부분 남지 않습니다.
논문에는 저자 목록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 순서가 정해지기까지의 고민과 감정은 남지 않습니다.
논문에는 author contribution이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누가 얼마나 자주 연락을 했고, 누가 일정을 다시 맞췄고, 누가 빈틈을 메웠는지는 충분히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저자 순서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노동이 모두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는 몇 안 되는 기록에 더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대학원생이나 포닥처럼 다음 진로를 준비해야 하는 연구자에게 저자 순서는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 자리를 위한 실적이고, 연구자로서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이며, 때로는 몇 년의 시간을 증명하는 자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순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너무 쉽게 “예민하다”거나 “욕심이 많다”라고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모든 요구가 정당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 순서에 감정이 실리는 이유는, 그 뒤에 실제 노동과 커리어의 무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 순서는 데이터의 소유권, 실험의 무게, 원고 작성의 책임, 연구실 간 관계, PI의 판단, 그리고 실무자의 감정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 순서 문제는 언제나 예민합니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이유로 피해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예민하기 때문에 더 일찍, 더 명확하게,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저자 순서 문제가 실제로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자 순서를 언제, 어떤 기준으로 논의해야 하는지, 그리고 제가 비교적 건강하게 기여도와 저자 순서를 조율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연구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