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는 BRIC과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함께 만들어 가는 기획 인터뷰로, 이번 주제는 ‘with 해외포스닥’입니다. 해외 포스닥 준비 과정부터 귀국 후 국내 정착까지, 연구자의 생생한 경험과 현실적인 조언들을 진솔하게 전해드립니다. (BRIC 운영진)
BRIC x 과커 <톡톡인터뷰> # 쏠이
Q. 해외 연구 환경은 어떠셨나요? 한국 연구 환경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이 있었나요?
이건 연구실마다 달라서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저는 코카시안, 미국인, 60대 남자 교수님이 운영하는 랩에 있었고,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일단 랩 미팅이 없었어요. 한국의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매주 랩 미팅도 있고, 저널 클럽도 있고 최소 일주일에 1~2번씩은 정기적인 미팅이 있는데, 제가 있었던 랩은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누군가 발표할 주제가 생기면 자기가 주도해서 랩 미팅을 소집해야 했고, 필참도 아니었습니다. 지도 교수님은 학생들한테 스트레스 안 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시고, 학생들이 먼저 도움을 구해야만 도와주셨어요. 일상적인 출퇴근이나 연구 habit과 관련해서는 일절 터치도 없었고, 지나가다가 만나면 “잘되냐? 괜찮다, 파이팅!” 이러면서 지나갔어요. 근데 이거는 정말 랩 바이 랩, 사람 바이 사람이 너무 강한 토픽이어서 일반화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있었던 MIT 뇌인지과학과만 해도 교수님들의 국적도, 출신도, 연령대도 정말 다양했어서 연구실마다 분위기는 정말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Q. 연구원분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라든지 협업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많았을 거 같아요.
랩 미팅이 없는 대신, Happy Hour(해피아워)에 연구 얘기를 엄청 많이 했어요. 해피아워는 미국에 흔히 있는 문화인데, 퇴근 시간인 5~6시쯤 오피스 앞에 있는 바에서 간단하게 하는 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도교수님이 “오늘 해피아워 할래?”, “내일 해피아워 하자”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모두가 좋아했고, 랩 미팅이 없는 대신 그런 자리에서 지도교수님과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막혀 있는 문제들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소통을 하니까 더 창의적인 해결책들도 많이 나오고, 서로 협업하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랩 미팅이 없이도 랩을 운영하는 비결은 그런 해피아워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Q. MIT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사실 MIT뿐만 아니라 보스턴 지역에 있는 학교에 계셨던 분들이라면 다 공감을 하실 텐데, MIT 근처에 좋은 학교들이 모여 있다 보니까 대가, 즉 ‘빅가이(Big guy)’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는 게 되게 쉬웠습니다. MIT 뇌인지과학과 건물에는 그런 분들이 거의 매주 한 분씩 와서 세미나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런 분들의 아이디어에 일상적으로 노출이 되다 보니까 저도 포부를 좀 더 크게 가지게 됐고, 자연스럽게 학계의 트렌드를 이끌어 가시는 분들의 아이디어도 제때제때 팔로우업(Follow-up)할 수 있었던 게 되게 좋았어요. 그리고 그런 세미나를 보통 점심시간에 진행하면서 샌드위치나 피자 같은 걸 주는데, 그걸 먹으면서 공부도 할 수 있고 다른 친구들과도 연구 관련 주제로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MIT에는 되게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에 있는 다른 큰 학교들도 다 이런 문화를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미국에는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도 꽤 많고, 흔히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라고 부르는 단체가 제일 큰 것 같아요. 뇌과학 분야에서는 실험동물로 쥐와 원숭이를 많이 사용하는데, 저희 연구실은 원숭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곳이고, 원숭이 실험을 하는 랩은 동물 실험 반대 시민단체의 넘버원 타깃입니다. 그래서 PETA의 시위가 예정되어 있으니까 연구실 문을 잘 잠가라, 혹은 건물 출입이 통제되니까 미리 대비를 해라 같은 안내들이 이메일로 종종 왔습니다.
실제로 원숭이 연구를 많이 하신 분들이 MIT로 공개 세미나를 오면 시민단체가 같이 와서 세미나 강연장에 피켓을 들고 서 계시고, 동물 실험을 하지 말자고 시위를 하기도 합니다. 미국에는 동물 실험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급진적 성격의 단체들도 있어서 자칫하면 시민단체 활동이 폭력적인 상황으로 번지거나 동물 실험 시설 테러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한국이랑 확실히 달랐던 거 같아요.
Q. 이런 사건 말고도 일상적인 어려움이 있었나요?
해외 포닥 생활 초기에는 낯선 게 많아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언어도 어렵고 문화도 다르고 행정 처리도 다 영어로 해야 되니까 부담이었는데, 그런 건 주변 랩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흔쾌히 다 도와주셔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보다 저한테 조금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던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점심 먹고 와서 양치하는 게 되게 당연한 문화 중 하나잖아요. 근데 미국은 한국이랑 위생에 대한 관념이 달라서, 그런 공공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 게 굉장히 비위생적이고 몸에서 나오는 세균(Germ), 즉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Germ을 공중화장실에 뿌리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제가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점심 먹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교수님이 딱 들어오시면서 당황하시는 거예요. 저를 되게 이상하게 보시는데 저는 그냥 “하이!” 이러고 양치를 했거든요. 나중에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양치는 잘 안 한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이후로는 이제 몰래몰래 숨어서 리스테린으로 그냥 가글만 하고 말았습니다.
Q. 연구적으로는 적응하시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연구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적응하는 게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는 한국에서 비교적 구조화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 익숙했습니다. 정기적인 랩 미팅이 있고, 내가 일주일 동안 한 일들을 PPT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고 피드백을 받고, 그걸 기반으로 또 일주일을 일하는 시스템이었죠. 사수가 부사수를 챙기고, 내가 지금 어디까지 했는지 PI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하고 점검받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포닥을 한 랩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전혀 없으니까 다 제가 혼자 self-manage를 해야 했던 거예요. 누가 “너 이번 주에 뭐 했니?”, “지난달에 뭐 했니?” 이렇게 물어보지 않으니까 내가 알아서 질문을 만들어야 하고, 데이터를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를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시니어나 다른 멘토를 찾아가서 “나 이런 게 있는데 좀 도와달라”라고 먼저 요청을 해야 됐어요. 처음에는 이 자유도가 좀 당황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제가 있었던 랩에서 생각하는 포닥이라는 자리는 원래 그런 곳이었던 것 같아요. 학생이라기보다는 직원에 가깝고, 동시에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 단계이니까 그런 식으로 자유도를 높게 주는 거죠. 돌이켜 보니까 포닥 시기는 정말 연구에 몰입하기 좋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coursework도 없고, 학위 논문 심사도 없고, 수업을 들어야 하는 시기도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내 시간의 대부분을 연구 하나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연구자로서 폭발적인 성장을 해낼 수 있는 시기 같아요.
Q. 포닥 생활 동안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만큼 번아웃이 오기도 쉬울 것 같아요. 번아웃을 극복하신 방법이 있나요?
대학원생 포지션이라면 수업도 들어야 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되는데, 포닥은 그런 게 전혀 없잖아요. 자기 연구만 해야 되는 게 사실 집중하기엔 좋은 시간이긴 하지만, 연구 외적인 다른 삶이 아예 없으면 번아웃이 빨리 올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있었던 보스턴은 그래도 미국 안에서는 대도시라서 대학도 많고 연구자들과 한국인 유학생들도 많아서 네트워크가 되게 잘 돼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좀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번아웃이나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는 최대한 네트워킹을 많이 해라, 사람을 많이 만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기서 말하는 네트워킹이라는 거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 만나서 명함 돌리고 이런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그냥 랜덤한 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고 얘기를 많이 나눠보라는 뜻입니다. 학과에서 어떤 소셜 행사가 있다고 하면 가보고, 유학생 네트워크에서 어떤 행사가 있다고 하면 그것도 그냥 가보고, 가서 같이 밥 먹고, 얘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현지에 있는 대학원생들이나 유학생들, 포닥들을 많이 만나는 걸 추천해요. 다른 학교, 다른 전공 연구자들이면 더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다 보면 그런 것들이 나중에 다 자산이 되더라고요. 제가 보스턴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미국에 자리 잡고 교수 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빅테크나 제약회사에 가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한국에 교수나 연구원으로 들어오신 분들도 되게 많습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을 높은 밀도로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특히 보스턴 지역에서는 하버드나 MIT의 학생회, 대학원 학생회나 특히 NEBS(뉴잉글랜드 생명과학자협회)라고 부르는 협회가 있는데 그런 협회들에서 소셜 이벤트들을 되게 많이 주최를 해요. 신입생 환영회, 연말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 이런 것들을 되게 많이 하는데, 이렇게 소셜라이즈할 기회가 많아서 전 되게 좋았습니다. 혼자 연구만 했으면 되게 심심했을 것 같은데, 그런 학술 행사를 빙자한 소셜 자리들에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친구들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보스턴 생활을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가 됐습니다.
Q. 금전적인 어려움은 없었나요?
현실적인 얘기를 조금 드려보자면, 사실 연구실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도시에서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이런 것도 좀 같이 고려를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월세는 감당 가능한지, 차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지, 한국 식료품은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좀 큽니다. 미국은 월급이 많아 보여도 월세 나가고, 생활비 나가고, 식비 나가고 이러면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저는 보스턴에서 정말 작은 스튜디오, 흔히 원룸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았는데, 한 달에 4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내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었어요. 엄청 낡은 건물에 마룻바닥은 맨날 삐걱거리고, 건물에서 이상한 냄새도 나는 되게 안 좋은 시설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을 골랐던 이유가 생활 반경 안에 모든 게 다 있었습니다. 학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고, H 마트도 가까워서 저는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비싼 건 있었지만요.
Q. 한국으로 돌아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독립적인 연구자로 제 연구실을 운영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과학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제가 늘 바랐던 건, 언젠가는 나만의 질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연구실을 운영하는 거였습니다. 포닥 시절 정말 좋은 랩, 좋은 환경에 있었고 훌륭한 훈련의 시간이었지만, 포닥이라는 자리는 기본적으로 계약직이자 임시직의 형태여서 언젠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사실 처음 미국에 나갈 때는 포닥을 짧아도 3년, 길면 6~7년까지도 생각했었기 때문에 1년 만에 들어올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있었던 연구실은 전 세계 어딜 가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원숭이 뇌파 데이터와 호화로운 연구 환경들이 있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좋은 논문, 소위 말하는 빅 페이퍼(Big paper)들을 쓰는 것만 생각하면 미국에 더 오래 남아 있는 게 더 좋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 임용이라는 게 제가 원한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내 전공과 딱 fit이 맞는 자리가 열리는 게 제일 중요한데 이건 개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리가 안 나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자리가 나도 세부 분야가 안 맞으면 지원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침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제 연구 분야와 너무나 잘 맞는 오프닝이 있었고, '이런 기회가 다음에 다시 열릴까?' 생각해보니 안 열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단 지원을 했고, 감사하게도 학교에서도 저를 필요로 해주셔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남는 선택도 사실 장점이 되게 많았습니다. 미국에 남아 있었다면 당장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거고, 이미 좋은 그룹에 속해 있고 제 실험도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한국에 돌아와서 교수가 되면 그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하잖아요. 연구실 공간도 꾸려야 하고, 장비도 세팅해야 하고, 학생도 모집해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을 위한 연구비도 수주해야 하죠. 수업도 해야 하고 학과 일, 학교 발전에 도움되는 일, 학교 행정 일들도 해야 하는데, 연구자로서만 보면 연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만 생각하면 아쉬운 게 정말 많은 결정이었다고 평을 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서의 네트워크와 하고 있던 연구들이 완전히 끊어지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한국에 들어온 뒤에도 미국 그룹과 계속 협업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고, 실제로 지금도 그쪽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들을 쭉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심리적으로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해외 포닥을 다녀왔다는 게 그냥 '좋은 곳에서 좋은 경험하고 왔다, 끝!'이 아니라, 제가 연구자로서 독립한 이후에도 쭉 이어지는 연구 네트워크를 만들고 왔다는 느낌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포닥을 오래 했으면 더 준비된 상태로 교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면 독립할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조금 이른 독립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모든 측면에서 다 좋은 결정이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은 되게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질문을 중심으로 내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는 일은 포닥 때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연구자로서의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점이 있나요?
욕심을 많이 냈던 건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저는 그 당시만 해도 논문 욕심이 되게 많았어서 제 메인 프로젝트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계속 일을 벌였어요. 다른 포닥들이나 졸업생들과 협업을 계속 만들었고, 결국 여러 프로젝트에 발을 걸치게 됐는데, ‘내 거 하나만 잘하자, 내 메인 프로젝트 하나만 빅 페이퍼로 만들자’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저는 제 성향에 맞는 연구 방향이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연구를 했던 게 다 저의 자산이 됐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준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시절에 시작했던 프로젝트들에서 나올 논문들이 많이 남아 있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좀 든든한 마음도 있습니다.
Q.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빨리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불안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미 얻고 있는 배움의 크기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교수가 된 다음에는 연구 외적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사실 연구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제 전체 시간의 10%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이거는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좀 더 차분하게 깊이 있는 연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아요. 그래야 더 큰 그릇을 만들고 더 깊이 있는 완성된 연구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Q. 포닥 경험이 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큰물에서 놀아본 경험에서 오는 시야의 확장이나 자신감인 것 같아요. 우리가 읽는 논문들, 분야의 큰 흐름, 그리고 학계의 중요한 의사결정 같은 것들은 대부분 미국을 비롯한 몇몇 리더 그룹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학계의 흐름을 멀리서 소비하는 느낌이었다면, 미국에서는 그 흐름이 만들어지는 현장 안에 있었다는 느낌을 받아서 되게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메이저 연구 기관의 지도 교수님 명성 덕분이겠죠. 또 다른 변화는 논문의 저자로만 만나봤던 대가들이 동네 아저씨 혹은 평범한 동료가 됐다는 점입니다. 논문 속에서만 봤던 그 이름들이 보스턴에 있는 동안에는 매주 세미나 연자로 오는 ‘One of them’이고, 가끔 우리 연구실 해피아워에도 놀러 와서 같이 맥주 한잔할 수 있는 보통의 동료가 됐다는 게 저한테는 큰 의미였습니다. 그분들도 실험이 잘 안 돼서 좌절하고, grant 떨어져서 속상해하고, 학부생 면담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다들 똑같으시더라고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런 경험들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구라는 일을 좀 더 길게 보게 됐다는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입니다. 포닥 때만 해도 저는 매일매일의 실적이나 매월의 진도 같은 것에 집착을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만난 시니어 연구자들은 5년, 10년 단위로 자기 커리어를 설계하더라고요. 내가 앞으로 어떤 질문을 평생 풀고 싶은가, 어떤 학생들을 길러내고 싶은가, 내 연구가 30년 후에 어떤 평을 받을 것인가 이런 처음엔 되게 막연하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제가 연구실을 꾸리고 학생들을 받기 시작하면서 정말 중요한 나침반이 된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 연구 방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저희 연구실 Brain Rhythm Lab이 앞으로 나아갈 연구 방향은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신경 신호를 분석해서 뇌 작동 원리에 대한 더 좋은 설명을 만드는 기초 과학적 연구고 두 번째는 그 원리를 기반으로 뇌 자극을 구현해서 뇌가 더 잘 작동하게 만드는 응용 연구입니다. 기억력이 잘 발현되려면 전두엽과 측두엽의 특정 주파수 신경 활동의 결맞음이 필요한데, 뇌 자극 기술을 토대로 이런 뇌파의 결맞음을 강제로 구현해서 약물 없이 뇌를 물리적으로 도핑하는 겁니다. 이런 접근은 무수히 많은 분야의 주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특정 감각 기관의 정보 처리를 선택적으로 증강시킨다거나 예컨대 운동선수들이 중요한 순간에 다른 감각들을 무시하고 시각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거나 불면증 증세가 있는 사람들이 더 깊게 잠들 수 있도록 돕는다거나 반대로 기면증 증세가 있는 사람들이 더 잘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돕는다거나 이렇게 뇌랑 관련된 모든 측면으로 확장 가능한 기술입니다. 다만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은 ‘설명 가능한 뇌 자극’이라는 키워드로 요약이 되는데, 더 효과적인 뇌 자극을 위해서 뇌 작동 원리를 밝혀내는 게 우선이다라는 의미로 ‘설명 가능한 뇌 자극’이라는 키워드를 저희 연구실의 제일 큰 정체성으로 잡았습니다.
Q. 커리어 자체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 좋은 연구를 하고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게 우선이고,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저한테는 이 목표를 위한 하나의 간단한 지표가 있는데, 제 지도 교수님이셨던 분이 늘 말씀하셨던 게 있어요.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연구를 해라 혹은 교과서에 실릴 만한 연구를 하자’였습니다. 높은 저널에 내 논문을 싣는 그런 단순한 문제라기보다는 더 큰 현상,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더 나은 과학적 모델들을 만들어 내는 그런 일이겠죠. 저는 뇌파를 중심으로 인지 신경 과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뇌 기능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뇌파가 어떤 연산 기능을 수행하는가에 대한 보다 설명력 있고 보다 일반적인 그런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연구로 이 필드의 발전과 인류의 지식 발전에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연구와 교육도 함께 잘하는 학자가 되고 싶어요.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문의 발전은 여러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루어지는 프로세스잖아요. 학생들이 뇌과학을 더 흥미롭게 느끼고 스스로 질문을 키워갈 수 있는 그런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Q. 장기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보다 더 큰 꿈을 꾸는 제자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일단 저희 학교에 뇌과학 전공의 학과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 저희 학교는 뇌과학을 연구하는 교수님이 저 포함해서 딱 두 명밖에 없고, 뇌과학만 가르치는 학과도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뇌과학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과학 및 사회 발전에 실제로 기여하면서 이 분야가 유망하다라는 것을 계속 증명하면 언젠가 학과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학교를 통해 뇌과학을 배운 졸업생들이 수백, 수천 명이 나올 거고 그게 결국에는 저희 분야의 파이를 더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은사님들은 각각 심리학, 뇌과학의 불모지에서 그렇게 개척해 오신 분들이고 저도 그렇게 멋진 스승이자 멘토로서 또 이제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그리고 학교의 교원으로서 우리 학계와 우리 학교의 발전에 함께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브릭에서 이런 좋은 인터뷰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 황송한데요 ㅎㅎ 제가 겪었던 이런 경험들이 이제 해외 포닥을 준비하시는, 앞으로 해외 포닥을 나가실 분들께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제 인터뷰 준비하면서 포닥 때 사진들도 찾아보고 그런 경험들도 돌이켜보고 할 수 있어서 되게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BRIC과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함께 만드는 톡톡인터뷰.
시즌 3은 ‘해외 포스닥 예정자’ 또는 ‘해외 포스닥 후 귀국한 연구자’들을 과커들이 직접 만나 인터뷰합니다.
해외 포스닥 준비 과정부터 귀국 후 국내 정착까지 생생하고 진솔하게 담아낼 “톡톡인터뷰 with 해외 포스닥”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