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이(흔한이과생)취업노트 시즌2] 삐빅 IACUC가 아닌 IRB입니다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앞으로 작성하게 될 IRB 관련 내용 또한 나의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처음 연구자로서 IRB를 듣게 된 계기부터 IRB를 작성하면서 느껴진 상황까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으며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도 퇴근 후에 글을 쓰면서 여전히 정신없이 산만하지만, 최대한 담백하게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연구실에서 처음 IRB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IACUC는 써봤는데, IRB는 뭐예요?"
“이거 왜 해야 돼요?”
아마 대부분 처음 IRB를 접한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실험은 이미 다 설계되어 있고, 데이터도 빨리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심의”, “승인”, “서류”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 실험을 하다 보면 PCR, ELISA, FACS 같은 실험은 익숙해지는데 IACUC나 IRB 신청서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프로토콜은 손이 기억할 정도로 반복하면서도 이상하게 IRB 문서는 매번 새롭고 어렵게 느껴진다.
같은 양식을 여러 번 작성해도 항상 “이게 맞나?”라는 의문이 따라온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연구는 내가 하는 건데, 왜 허락을 받아야 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행정 업무를 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IRB의 필요성과 역할
IRB는 연구를 막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연구가 사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우리가 다루는 대상이 단순한 시약이나 세포라면 문제가 덜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개입되는 순간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설문조사 하나만 해도 그렇다.
이름을 안 받으면 괜찮을 것 같지만, 조금만 정보를 조합하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30대 여성 / 특정 직군 / 특정 지역” 이 정도만 있어도 생각보다 좁혀진다.
여기에 조금만 더 정보가 추가되면 그 사람을 아는 누군가는 충분히 특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익명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익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IRB를 하면서 처음으로 체감하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IRB다.
IRB는 단순히 “해도 된다 / 안 된다”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이 연구가 윤리적으로 괜찮은지, 참여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지, 데이터가 안전하게 관리되는지를 보는 곳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연구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험을 한 번 더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 IRB 신청서를 쓸 때 가장 충격이었던 건 “이걸 왜 이렇게까지 써야 하지?”였다.
*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은 추후에 다룰 예정이다.
연구 목적
연구 방법
대상자 선정 기준
동의서
개인정보 보호 방법
위험성 및 보상
하나하나 따져보면 당연한 내용인데 막상 작성하려고 하면 굉장히 귀찮고 복잡하다.
[Chat GPT 자체 제작 이미지]특히 문장을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는 점이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익숙한 용어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의서.
“자발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언제든지 철회 가능합니다.”
“불이익이 없습니다.”
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형식적인 문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사례들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연구 참여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하거나, 철회가 어렵다고 느끼는 상황이 생기면 그건 연구가 아니라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교수와 학생 사이, 의사와 환자 사이처럼 관계에서 이미 권력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자발적 참여”라는 말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미묘한 경계까지 고려하는 것이 IRB의 역할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됐다.
연구와 윤리의 균형
IRB를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거 IRB 받아야 되나?”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고, 사실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준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 설문인데도 IRB 대상이 될 수 있고, 인체유래물을 사용해도 면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이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져서 더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때 중요한 기준은 하나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람과 관련된 정보, 시료, 데이터가 들어간다면 IRB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연구 대상자가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했는가” 이 질문도 항상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처음에는 IRB를 “귀찮은 행정 절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업무를 하면서 느낀 건 IRB가 없었다면 오히려 연구가 더 위험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다 보면 윤리적인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IRB는 그 빈틈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재밌는 건 연구실에서는 IRB를 싫어하고 행정에서는 IRB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두 입장 사이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갈등을 보게 된다.
“이거 빨리 승인해 주세요”
“이건 수정이 필요합니다”
이 짧은 문장 사이에 굉장히 많은 감정이 들어간다.
연구자는 일정에 쫓기고 있고, 행정은 기준을 지켜야 한다.
서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음에도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답답함도 느끼고 때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IRB는 연구를 늦추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연구가 더 오래갈 수 있게 만드는 장치다.
문제가 생긴 연구는 결국 중단되거나 신뢰를 잃는다.
그에 비하면 처음에 시간을 들여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나는 실험이 연구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연구는
실험 + 데이터 + 윤리 + 법
이 네 가지가 모두 맞아야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결국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긴다.
IRB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다. 어쩌면 연구자가 가장 늦게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의 일기는 이렇게 마친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힘들다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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