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경쟁 심화와 인력 구조 변화
이번 정부 들어 기존의 국가 연구개발(R&D) 과제 일정이 전면적으로 조정됨에 따라, 2026년은 R&D와 창업을 위주로 하는 예비 및 초기 창업 패키지의 공고가 1월부터 4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정의 변화가 개별 사업자가 영위하는 사업의 본질적인 범위를 당장 바꾸지는 않겠지만, 냉정하게 말씀드려 과제 경쟁률만 급격히 높아졌을 뿐 철저한 전략이 없는 기업에게는 '들러리' 외에 별다른 기회가 생기지 않는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R&D 과제가 많이 신설되고 예산 규모도 증액되었습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대졸 취업이 극도로 어려워진 이른바 '고용 절벽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입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으로 기업들의 신입 사원 확보 수요는 줄어든 반면 매출 감소 요인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 바이오 스타트업들의 채용 능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AI를 활용하는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 생물학 데이터를 전산으로 분석하는 분야)는 최소한의 자원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어, 많은 인원을 두지 않고도 속칭 '딸깍' 하는 클릭 몇 번만으로 결과물이 도출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올해 발표되는 대부분의 의생명학 과제 제안요청서(RFP, 발주 기관이 요구하는 상세 기술 규격서)가 이러한 흐름에 맞춰 구성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업계에서는 바이오 관련 인력들의 몸값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각이 결코 틀렸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차피 바이오 분야는 과거의 건설 현장 노동처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연구자들이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비용 구조는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데 상당한 장벽으로 작용해 왔을 것입니다. 필자의 경험을 비추어 보더라도, 사업계획서 페이지 수가 적더라도 A4 용지로 15~3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하루 만에 쓰는 것은 불가능하며 최소 제출 일주일 전에는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대형 과제의 경우 내용뿐만 아니라 해당 내용에 들어가는 표와 그림을 제작하는 데 막대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과거에는 내용 작성뿐만 아니라 시각 자료를 만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구글 검색을 통해 다소 성의는 부족하더라도 참고 자료를 첨부하며 버티곤 했습니다. 과제 작성과 이에 수반되는 행정 업무는 거의 밤을 새우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내용을 맞추거나 관공서에 방문하여 필요 서류를 발급받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는 스타트업에서 대표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모든 직원이 달라붙어야 겨우 끝낼 수 있는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특히 R&D 과제는 박사급 이상의 연구자가 연구 책임자로서 세밀한 계획서를 논문 형식에 맞춰 작성해야 하므로 이를 대비할 전문 인력은 필수적이었습니다.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지출되는 연구비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AI 도구의 등장과 생산성 혁신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연구자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방법이 등장했는데, 바로 제미나이(Gemini)나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툴입니다. 이 도구들은 단순히 편리한 수준을 넘어, 지금까지 작성한 연구 결과나 사업 계획서를 토대로 단 몇 분 만에 과제 양식에 맞춘 계획서를 만들어 줍니다. 특히 연구 내용의 핵심인 그림 역시 기존에 직접 만들던 것보다 훨씬 나은 수준으로 생성해 줍니다. 전문가들이 직접 만드는 것이 더 정교할 수는 있겠지만, 투입되는 시간과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AI의 압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AI라는 거대한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금이라도 프로그래밍을 해본 사람들은 이 변화에 매우 빠르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석·박사는 순수 의생물학을 전공했으나, 구글과 MS에 아마추어 개발자로 등록되어 있으며 수년 전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직접 개발한 앱을 게시한 바 있습니다. 실시간 영상 전송 프로토콜인 RTSP(Real Time Streaming Protocol, 생체 신호나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하는 규격)나 기타 생체 인식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개발하였으며, 한국저작권협회에 저작권도 등록해 두었습니다. 또한 생체 신호를 처리하는 프로그램도 직접 개발하여 학회 발표를 진행하고 논문도 준비 중입니다. 개인 레벨에서는 웹의 눈에 보이는 부분을 만드는 프론트엔드(Front-end)급 개발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원 몇 명과 함께 수년씩 몰두해야 했으나, 이제는 혼자서 '스택 오버플로우(Stack Overflow, 개발자들의 지식 공유 커뮤니티)'를 뒤지며 다른 개발자에게 묻지 않아도 AI가 단 이틀 만에 모든 작업을 처리해 줍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바로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에 있습니다. 저는 최근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파이썬(Python) 언어를 사용하여 과제 양식에 맞춰 문서를 자동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과제를 써본 연구자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연구 내용을 작성하는 것보다 예산 수치를 맞추고 행정 서류의 페이지를 일일이 계산하는 작업이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목차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대조해야 하기에 제출 직전까지 숫자가 틀려 컨소시엄 기관들과 쉴 틈 없이 전화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입니다. 예전에는 이러한 자동화 툴을 만들기 위해 수개월의 디버깅(Debugging, 코드의 오류를 찾아 수정하는 작업)이 필요했기에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Claude) 같은 AI를 사용해 코드를 생성하고 오류를 즉각적으로 교정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저 혼자서도 10인 이상의 인력이 달라붙어 수행하던 수백 페이지 분량의 연구 과제 대응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수준을 넘어, 프로그램의 범위를 AI에게 정밀하게 설명하고 코드를 이해할 줄 아는 기초적인 개발 역량을 갖춘 '프로그래머형 인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클라우드 데이터를 활용해 과거 과제를 분석하고 보안 설정을 통해 자신만의 자료를 구축한다면, RFP에 완벽히 대응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평가 점수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일이 공고란을 뒤지며 연구 방향에 맞는 과제를 찾기 위해 설명회에 참석하고 담당자에게 연락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일정한 키워드만 입력하면 최적의 주제를 제안하고 이를 수치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직접 만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창업 멘토들조차 접근하기 어려웠던 정보들이 이제는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결국 AI를 통해 모든 작업이 단순화되었고, R&D에 대응하는 자세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량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업무의 밀도가 높아졌습니다. 과거 2주 동안 1억 원짜리 과제 하나에 매달렸다면, 이제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통해 같은 기간에 각기 다른 RFP에 맞춘 4~5개의 과제를 동시에 제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매몰된 석·박사보다, AI를 도구 삼아 업무 프로세스를 가속화하는 프로그래머형 인재들이 훨씬 나은 생산성을 갖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멀티형 인재가 아니면 연구원도 창업자도 R&D 과제를 따내기 힘든 시기가 도래할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여전히 기존 방식대로 평가하겠지만, AI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압도적인 양과 질의 연구 과제를 제출하는 특정 인재들에게 기회가 쏠리는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의생명학계에서도 AI와 프로그래밍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무기가 되었습니다.
해당 이미지는 Gemini의 나노바나나를 이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