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턴(학부생)의 등장, 조력자가 아닌 ‘과업’의 시작
연구실에 새로운 학부 인턴이 들어온다는 소식은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진 상황과 같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짜 아무 신경을 쓰지 않으면 투명인간과 같다, 사실 연구실에 찌든 사람 입장엔 입학 확정인 사람이 아니면 귀찮은 존재거나 내 시간을 뺏는 방해꾼이다. 누군가는 "이제 잡일 도와줄 사람 생겨서 좋겠네"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사수를 맡게 된 선배의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거의 안 좋은 쪽으로만).
나에게도 그런 후배가 생겼다. 처음 피펫을 손에 쥐던 날, 팁(Tip) 하나를 끼울 때조차 덜덜 떨리던 그 손가락과, 시약의 영문 이름을 보며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 멍하니 서 있던 그 눈빛. 처음에 나는 그 눈빛을 보며 묘한 사명감을 느꼈다. '적어도 내 밑에서 배우는 동안만큼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연구자로 만들어주겠다.' 그것은 선배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무거운 다짐이었다. 하지만 매번 들어오는 신입 인턴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굉장히 희미해 져갔다.
하지만 교육은 낭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인내의 연속이었다. 내가 직접 하면 10분이면 끝날 DNA 추출이나 PCR 세팅이, 후배에게 원리를 설명하며 진행하면 1시간, 2시간이 훌쩍 넘게 소요되었다. 시약의 농도를 계산하는 법부터, 튜브의 라벨링을 왜 뚜껑과 옆면에 모두 해야 하는지, 초저온 냉동고의 문을 단 5초라도 빨리 닫아야 하는 사소한 습관까지. 나는 마치 picky 한 잔소리꾼처럼 후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적해야 했다. 내 개인 연구 시간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갔고, 퇴근 시간은 2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이것은 후배의 성장을 위한 시간인 동시에, 나에게는 연구자로서의 효율성을 통째로 반납하는 형벌과도 같았다.
2. "왜 이렇게까지 깐깐하게 구세요?" – 평행선을 달리는 시선
교육의 진짜 고통은 물리적인 시간 부족이 아니었다. 내가 강조하는 그 '기본'의 중요성을 후배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간극에서 오는 감정의 마모가 더 괴로웠다.
분자생물학 실험의 성패는 사실 거창한 이론보다 아주 미세한 손끝의 감각에서 갈린다. 피펫 팁 끝에 맺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액체 한 방울을 털어내지 않는 것, 원심분리기의 균형을 0.01g 단위까지 맞추지 않는 것, 얼음 위에서 작업해야 할 시약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는 것. 나는 이 사소한 부주의들이 모여 데이터의 재현성을 파괴하고, 결국 수개월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후배에게 똑같은 파이펫팅을 수백 번 반복시키고, 오차가 허용 범위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다음 단계로 절대 넘어가지 못하게 했다. 될 때까지 시켰다. 그리고 옆에서 나도 했다. 그리고 결과를 비교해서 차이를 보여줬다.
하지만 후배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일그러졌다. "선배님, 이건 그냥 대충 섞어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온다고 하던데요?" 혹은 "어차피 나중에 젤(Gel) 내리면 다 보일 텐데 왜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들이 그의 입 밖으로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아마도 '일 시키기에 눈먼 꼰대 선배' 혹은 '후배를 부려 먹기 위해 불필요한 고생을 시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나중에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어 데이터의 벽에 부딪혔을 때 겪을 좌절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려고 안달복달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에게 그것은 ‘의미 없는 가혹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쏟는 진심은 후배의 필터를 거치며 '업무 지시의 연장'이나 '숨 막히는 감시'로 해석되었다. 그 억울함은 곧 현자타임으로 이어졌다. 이럴 때 도와줘야 하는 게 옆에 있는 다른 동료들인데, 너무 찌든 나머지 오히려 더 대충 하는 것처럼 해서 후배는 그 편한 모습을 부러워했다.
3. 후배라는 거울 앞에 선 나의 민낯 – 좋은 점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깨달음이 찾아왔다. 후배에게 "왜 이 실험 조건을 이렇게 잡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논문을 보여주면서 옆에 앉혔는다. 입을 떼려는 순간, 정작 내가 그 이유를 100%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럴 때 굉장히 나도 공부가 된다).
"그냥 사수 형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니까", "우리 실험실 전통 프로토콜이 원래 그러니까"라는 말은 너무나 부끄러운 대답이었다. 후배의 날 선 의문들, 때로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엉뚱한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나는 퇴근 후 다시 프로토콜들을 뒤적이고 최신 논문을 검색해야 했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라고 믿고 기계적으로 반복해 왔던 실험들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지식의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 후배라는 거울을 통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후배의 서툰 손가락을 교정해 주면서 나는 역설적으로 내 손끝에 배어 있던 나쁜 습관들을 발견했다. 후배가 박살 내버린 데이터를 함께 복구하며, 나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실험 전체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그 어느 때보다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가르침은 결코 선배가 후배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다시 '학습자'의 위치로 강제 소환하는 가장 혹독하고도 완벽한 공부법이었다. 후배를 가르치느라 손해 봤다고 생각한 그 시간들은, 온전한 낭비가 아닌 사실 나의 논리 체계를 가장 단단하게 제련하고 있었던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2020년도 12월 한라산에서.
겨울을 버티는 나무 = 대학원생
4. 사수라는 이름으로 얻은 '진짜 실력'의 무게
시간이 흘러 인턴이었던 후배는 정규 과정에 진학했고 졸업까지 했다. 여전히 내가 시키는 실험의 양이 너무 많다며 동기들에게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없는 복도 끝에서 "내 사수는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야"라고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모를 것이다. 그가 귀찮아하며 반복했던 그 지루한 라벨링과 반복하는 과정들이 훗날 그의 연구 인생을 지탱할 유일한 뼈대가 된다는 사실을 (취업하면… 아닐지도…). 그리고 내가 그 한 문장을 가르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자기 검열과 공부를 거쳤는지를.
지금 생각하면, 이제는 그 사실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후배의 인정을 갈구하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나의 현 상태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 나는 어떤 복잡한 실험 조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를 책임지고 가르쳐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이 내 안에 뿌리내린 것이다
대학원 생활에서 누군가의 '사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실험 기술을 전수하는 조교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밑바닥 실력을 확인하고, 그 바닥을 다시 견고하게 다져 올리는 고독한 수련의 과정이다. 후배의 성장은 처음에 거북이걸음처럼 느려서 답답할지 모르지만, 그를 끌어올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나의 노력과 시간은 이미 풀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 만큼 단련되어 있었다.
물론 이처럼 진학한 후배들도 있고, 진학하지 않거나 자신의 관심 연구분야의 다른 연구실로 간 학생들도 있다. 자아성찰하며 좋은 영향도 있지만, 힘이 쫙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로 인해 더욱더욱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나 자신이 보이지만, 이것 또한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5. 기대를 버린 자리에 피어난 보람
이제 나는 후배가 나의 교육을 '고통'으로 기억한다 해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원래 배움의 정수는 쓰디쓴 법이며, 그 쓴맛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연구자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역할은 그가 나중에 학계에 홀로 던져졌을 때, 어떤 폭풍우에도 견딜 수 있는 닻을 그의 손에 쥐여주는 것뿐이다.
그가 훗날 선배가 되어 다른 후배의 사수가 되었을 때,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의 서툰 파이펫팅을 보며 뒷목을 잡는 순간이 왔을 때, 그때 아주 잠시나마 나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그때 그 선배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이제 알겠네"라고 중얼거려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결국 나를 연구자로 성장시킨 것은 권위 있는 학술지도, 대단한 상장도 아니었다.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데요?"라고 묻는 후배의 반항적인 눈빛과,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기 위해 밤새워 고민하며 스스로를 갈고닦았던 나의 고독한 시간들이었다. 대학원은 실험실 안에서 데이터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지만, 후배라는 거친 돌을 다듬으며 나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깎아내는 연마장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Take home message: 후배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밤잠을 설치고 계신가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우리는 지금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진짜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오롯이 손끝과 머릿속에 남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혼자인 인생, 너무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을 쓸 필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