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의 삶 – 진로 선택, 연구 주제 선정, 전반적인 생활 및 고민
연재
[포닥의 삶] 올 한 해는 정말 중요한 해가 될 것만 같아

안녕하세요, 김포닥파닥입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미국에서 포닥 생활을 하며 문득문득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가감 없이 적어보려 합니다. 조금 두서가 없더라도, ‘해외 포닥을 하는 국내대학출신 박사는 이런 고민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께 작게나마 힘이 되고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하네요.
저는 박사 학위 수여식 바로 다음 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첫 포닥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돌이켜보면 대학원 진학 자체가 저의 오랜 갈증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생물학을 좋아했고 성적도 뒷받침해 주었기에 자연스럽게 연구자의 길을 꿈꿨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강렬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가족 여행으로 처음 마주했던 미국의 풍경이 무엇을 건드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제 마음속엔 "언젠가는 꼭 미국에 가겠다"는 결심이 단단히 뿌리내렸죠. 고등학생 무렵 친형이 미국 유학을 떠날 때, 솔직히 부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집안 형편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자식 둘을 모두 유학 보내는 것이 부모님께 얼마나 큰 부담일지 알았기에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편엔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좋아하는 운동도 농구와 미식축구였고,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갈 만큼 다양한 스펙들을 쌓아왔던 저는 ‘나도 미국 대학에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결국 그 결핍이 동력이 되어 "내 힘으로 미국에 가보자"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고, 미국에서 급여를 받으며 연구할 수 있는 '미국 포닥'은 제 인생의 가장 명확한 지향점이 되었습니다.
6년의 박사 과정을 거치며 연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지만, 미국을 향한 열망은 식지 않았습니다. 메인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기 전임에도 지도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컨택을 시작했고, 운 좋게 지금의 연구실과 연결되어 조금 일찍 한국을 떠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포닥 생활은 분명 행복합니다. 하지만 신생 랩이라는 리스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뛰어들었던 과거의 저를 만난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알아보는 건 어떠니?”라고 조언해주고 싶기도 합니다. 연구실 세팅을 처음부터 같이 시작했어야 했고, 첫 계약 당시엔 인건비 보장이 1년뿐이었고, 연구비 상황에 따라 2년 차가 불투명했거든요. 다행히 여러 상황이 잘 풀려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합류했던 동료 포닥 한 분은 안타깝게도 지난 2월 계약이 종료되어 연구실을 떠났습니다. 3년 내내 새로운 데이터를 생산하는 데 매진했지만, 결국 논문 한 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남 일 같지 않은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마무리에 접어들어 투고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얼마 전 보스가 갑작스럽게 제안을 하나 하더군요. 이전 포닥이 남겨둔 데이터를 분석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 프로젝트에서 사용했던 분석 기법을 적용하면 되는 일이라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숏폼(Short form) 형태의 논문 아이디어까지 더해져, 계획대로라면 올해 총 3편의 논문을 투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지만, 저에게는 힘을 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오는 8월, 저희 부부에게 소중한 아이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최근 1:1 미팅에서 보스에게 한 달간의 육아휴직을 허락받았습니다. 보스는 “필요한 만큼 충분히 쉬어도 좋다”며 배려해 주었지만, 계획한 연구 스케줄을 알기에 딱 한 달만 집중해서 아이와 아내 곁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제 기준엔 한 달의 육아휴직을 허락해 준 것만 해도 엄청나게 파격적이었거든요. 포닥도 교직원에 포함되지만, 사실 그렇다고 해서 마음 편히 교직원들의 복지를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사실 이 육아휴직을 얻어내기 위해 랩 미팅 PPT에 영혼을 갈아 넣었습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써먹던 '작전'인데, 교수님께 원하는 게 있을수록 압도적인 결과물을 먼저 보여드리는 것이죠. 보스의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슬쩍 건넨 부탁은 역시나 백발백중이었습니다.
올해 논문들이 잘 마무리된다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잡 마켓에 뛰어들 계획입니다. 예전에는 막연히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곳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미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옵니다. 특히 제가 있는 분야에서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굉장히 원론적인 내용을 다루는 학문이다 보니 국내 대학보다는 미국 대학에 TO가 더 많긴 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 A 대학에는 생태진화학을 하시는 분이 1-2명 계신다면, 이곳에는 생태진화학을 하시는 분들이 한 학과에 10명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더불어 작년에 감사하게 제안받았던 책 집필 작업도 올해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연구와 육아, 그리고 출판까지. 올해는 제 인생에서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 하나만 믿고 본인의 커리어를 잠시 접어둔 채 낯선 타국까지 동행해 준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비자 문제와 언어 장벽,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묵묵히 제 꿈을 응원해 준 아내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작년 말에는 아내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그랜드캐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복귀 후 바로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그랜드캐년을 갔다 온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당분간? 꽤 오랫동안? 아내와 단둘이 가는 여행은 꿈도 못 꾸기에 더 의미 있던 여행이었던 것 같네요. 그래도 이제는 둘이 아닌 셋이서 쌓는 추억은 또 의미가 남다르겠죠.
이제 곧 태어날 아기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불안정한 포닥'을 지나 '안정적인 가장'으로 거듭나야 할 때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올 한 해, 부단히 노력하여 가족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모든 해외 포닥 선생님들의 건승을 빌며, 저 또한 올 한 해 치열하게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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