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의 삶 – 진로 선택, 연구 주제 선정, 전반적인 생활 및 고민
연재
[포닥의 삶] 미국 대학원의 예비심사 연습, 뭔가 낯설다

안녕하세요, 김포닥파닥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아침에 눈이 왔다가 오후엔 영상 20도가 되는 이상기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후에 산책을 나갈 수 있어 행복한 요즘입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최근 참여했던 저희 실험실 대학원생의 Prelim(예비심사) 연습 참관 경험을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Prelim(Preliminary Examination)과 Ph.D. Defense, 이렇게 두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Prelim은 '예비심사(예심)', Ph.D. Defense는 '본 심사(본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 방에는 미국인, 인도인, 대만인 대학원생이 각각 한 명씩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인도나 대만 학생과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꽤 잘 되는 편인데, 문제는 미국인 학생입니다. 발음을 약간 뭉개기도 하고, 말하는 속도까지 너무 빨라 대화 내용의 65% 정도만 겨우 알아듣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토종' 미국인의 영어에 익숙해져야 하는 법이죠.
그러던 어느 날, 그 미국인 학생이 연구실 단톡방(여기서는 카카오톡 대신 WhatsApp을 씁니다)에 공지를 올렸습니다. 곧 Prelim이 예정되어 있어 연습을 위해 강의실을 예약했으니, 참석해서 피드백을 주면 고맙겠다는 내용과 함께 날짜 투표를 올린 것이죠. 평소 그 친구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미국인의 발음에 익숙해질 좋은 기회다 싶어 얼른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연습 당일, 질문과 코멘트를 적기 위해 펜과 노트를 챙겨 강의실로 향했습니다. 학생은 발표 준비에 한창이었고, 친구로 보이는 다른 미국인 학생들도 여럿 와 있었습니다. 준비를 마친 학생이 곧바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첫 발표 연습이다 보니 PPT에서 개선할 점들이 눈에 띄어 도움을 주고자 집중해서 노트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발표 중간중간 학생의 친구들이 ‘이래도 돼…?’ 할 정도로 끊임없이 코멘트를 주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한두 개 조언을 던지는 수준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피드백이 쏟아지더군요.
"이 슬라이드에는 화살표를 추가하면 정보 전달이 더 잘될 것 같아."
"이 단어보다는 다른 단어를 쓰는 게 훨씬 명확한 표현일 거야."
"A 교수님은 분명 이 부분을 질문하실 테니, 답변을 확실히 준비하거나 Supplementary slide로 빼는 게 낫겠어."
이 외에도 수많은 코멘트가 빗발쳤습니다. 저에게는 이 광경이 굉장히 낯설고도 신선했습니다. Prelim 연습을 자기 연구실 멤버들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실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점, 그리고 발표 중간중간 흐름을 끊어가며 수십 개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보통 연구실 멤버들끼리만 모여 연습했고, 발표 중간에 말을 끊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발표 중간에 말을 끊는 건 주로 교수님 뿐이었죠. 하지만 생각해 보니 동료 연구자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사람들의 시각에서 피드백을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되겠더군요. 심사위원 교수님들도 모두 같은 세부 전공은 아닐 테니, 제3자의 눈으로 내용을 다듬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죠.
사실 이런 방식은 이 학생뿐만 아니라 저희 학과에서는 매우 당연한 문화였습니다. 학기 중 바쁜 와중에도 동료를 위해 기꺼이 2시간 넘게 투자해 귀한 코멘트를 주는 문화가 참 부럽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런데 발표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저 방대한 계획을 학위 기간 안에 다 할 수 있다고?" 그 학생의 연구 주제는 알고 있었지만, 발표 내용은 거의 중견 연구자급의 거창한 목표들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연구 내용 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접어두고 정성껏 피드백을 해주었지만,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PI와 대화를 나누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대학교, 이 학과에서는 Prelim 주제가 본인의 실제 연구 주제와 완전히 같아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현재 연구를 바탕으로 범위를 더 확장하여 원대한 연구 계획을 세우고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죠. 제 경험상 예비심사 및 본 심사는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잘 엮어 졸업 논문을 만드는 과정이었고, 심사날 발표 역시 그 결과물을 정리해 심사위원들께 전달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수행한 연구'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신만의 연구를 확장해 하나의 큰 흐름, 즉 중견 연구급의 계획을 짜보는 '훈련'에 방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제 겨우 연구 기법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제도도 학교나 학과마다 전부 다르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2년 차 학생 때부터 이런 시도를 하고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제가 2년 차였을 때는 시키는 일을 배우기에도 급급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참 괜찮은 교육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내 심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미국 대학의 독특한 심사 제도를 알게 되어 매우 신선했습니다. 덤으로 그 학생의 '빠른 영어'에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연재 주제와는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긴 하지만, 몇 개월 뒤에 저는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해외에서 1년마다 재계약하며 치열하게 파닥파닥 살아가는 외노자이지만, 이런 저희에게도 찾아와 준 아기가 참 고맙네요. 이렇게 또 다른 동기가 부여됐으니 저는 더욱더 열심히 연구에 매진해서 얼른 자리를 잡아야겠습니다. PI의 펀딩만으로 매년 목숨을 연장하는 건 아무래도 리스크가 큰 만큼, 저만의 펀딩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요즘입니다. 다행히 외국인 신분으로 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펀딩이 있어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몇 개월 뒤에는, 펀딩 합격후기로 다시 찾아뵈었으면 정말 정말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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