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는 제미나이(Gemini) 모니터 창을 띄워놓고 1시간 반째 실랑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논문에 들어갈 핵심 그림 세 장을 뽑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술적 감각과는 애초에 담을 쌓은 지 오래라 웬만한 시각 자료는 AI의 힘을 빌리려 하는데, 이 녀석이 제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듣지 못할 때면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최첨단 AI 시대에 논문 그림 하나 때문에 밤을 새우며 '날림 연구자'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자조 섞인 웃음이 나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짜증 나는,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2시간의 씨름 속에서 탄생한 단상입니다.
제미나이의 나노 바나나 생성
현재 저는 어쩌다 보니 지난 몇 년간 쌓아온 방대한 연구 결과들을 한꺼번에 논문으로 쏟아내야 하는, 그야말로 병목 현상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데이터의 양은 방대하고, 각 분야에 대해 얇지만 넓은 통찰을 꿰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제 밑의 사람들에게 온전히 위임하기가 힘듭니다. 결국 연구의 뼈대를 잡고 살을 붙이는 책임은 고스란히 저의 몫이며, 이 무거운 짐을 덜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AI에게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AI에게 다짜고짜 논문을 써달라고 무책임하게 던지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건축물에 정교한 설계도가 필수적이듯, 제 경우 본격적인 영문 작성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나만의 '연구 요약문'을 먼저 작성합니다. 이는 학술지에 들어갈 형식적인 초록과는 다릅니다. 현재 이 연구 분야의 기본적인 배경은 무엇인지, 그동안 학계의 연구 흐름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리고 동료 연구자들의 접근 방식 중 제가 느끼기에 아쉽거나 한계점이라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짚어냅니다. 그 후,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핵심 기법을 사용하여 연구를 진행했다는 서사를 명확히 잡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분야마다 논문의 '얼굴'이 되는 핵심 시각 자료의 배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의생물학 분야라면 연구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핵심 실험 데이터를 전면에 배치하고, 의료기기나 센서 분야라면 기기의 설계 방법이나 부품 전개도, 실착 모습이 가장 중요한 설득 도구가 됩니다. 반면 AI 쪽이라면 데이터 흐름과 모델 구조를 보여주는 플로우차트를 최전선에 내세웁니다. 이렇게 무기들을 배치한 뒤, 실제 결괏값이 완벽하게 나오지 않더라도 예상되는 결론과 그에 따른 고찰(Discussion), 미진한 부분, 향후 계획까지 미리 대략적으로 작성해 둡니다. 이렇게 설계도를 짜놓으면 나중에 AI와 협업하여 논문을 완성하기가 비약적으로 수월해집니다.
설계도가 완성된 후 이어지는 영문 초안 작성은 비영어권 연구자에게 또 다른 장벽입니다. 과거에는 문법 교정을 위해 Grammarly 같은 툴에 의존했고 작년까지만 해도 큰 무리 없이 사용해 왔지만, 올해부터 제미나이 유료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논문을 작성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문법 교정을 넘어 학술적인 뉘앙스까지 다듬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분야에 따라 AI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편차가 극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전을 밝혀내는 의생물학 연구의 경우, AI와의 협업은 종종 투쟁으로 변질됩니다. AI 모델들은 방대한 기존 문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새로운 발견을 입력하면 자꾸만 이를 기존 논문의 보편적인 결과와 억지로 꿰맞추려 듭니다. 심지어 제 새로운 접근법이 틀렸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모니터를 향해 이게 아니라고 소리치며 몇 번씩이나 결과와 결론 부분을 제 의도대로 수정하게 만드는 그 고집은 정말 대단할 정도입니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생체 신호 데이터를 시각화해 달라고 하면 기괴한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여전한 한계입니다.
반면 역설적이게도 AI 관련 논문이나 알고리즘, 코드를 다루는 논문을 쓸 때 AI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조수로 돌변합니다. 제 연구 역시 기존 기법들을 수정하고 병합하여 최댓값을 도출해 내는 코드 베이스 성격이 강한데, 이런 분야에서 AI는 제가 날림으로 쓴 초안의 개떡 같은 문맥도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결괏값에 나타난 미세한 오류도 놀라울 정도로 잘 찾아내며, 간단한 초안과 코드만 던져주어도 서론과 연구 방법 정도는 거침없이 써 내려갑니다.
제미나이의 나노 바나나 생성
이처럼 분야별로 편차는 있지만, AI 시대에 제가 논문을 쓰며 가장 환호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레퍼런스(참고문헌) 작업입니다. 논문을 써본 연구자라면 수십 편의 인용구를 찾고 각 저널의 까다로운 포맷에 맞춰 일일이 정리하는 작업이 얼마나 골머리 앓는 일인지 공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미나이는 서론의 배경지식 오류를 잡아줌과 동시에 적재적소에 정확한 레퍼런스를 달아주고, 타깃 저널의 양식에 맞춰 순식간에 포맷팅을 끝내버립니다. 작년에 초안으로 써두었던 논문들의 엉성한 레퍼런스를 다시 맡겨 보았더니 90% 이상 완벽하게 수정해 내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물론 나머지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인간의 최종 확인은 필수지만 말입니다.
결국 이런 기술의 발전은 연구실의 풍경을 극적으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데이터를 정리하고 논문 한 편을 작성하기까지 족히 한두 달은 걸렸지만, 초안만 머릿속에 잡혀 있다면 그 기간은 이제 2~3일로 줄어들었습니다. 의생물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텍스트와 그림을 다듬으며 기싸움을 해야 하지만 큰 도움을 받고 있고, AI 분야는 연구의 속도 자체를 차원이 다르게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머지않아 논문 번역이나 영문 교정을 전문으로 하던 업체들의 설 자리도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뼈대만 탄탄하게 잡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연구자라면, 굳이 막대한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훌륭한 논문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자,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 글을 슬슬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제미나이가 제가 요구한 3개의 논문 그림 중 마지막 이미지를 생성해 냈다는 알림이 떴거든요. 2시간의 짜증 나는 씨름 끝에 마주한 저 그림이 부디 이번에는 제 예술적 무지함을 덮어줄 만큼 그럴싸한 결과물이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제미나이의 나노 바나나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