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즈음 대학가에선 교수들의 창업 열풍이 불었었고 필자의 지도교수도 창업을 하였다. 창업을 한 뒤 대학원생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내가 너희들 졸업한 뒤 취업 걱정은 없게 해 주겠다.”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막상 졸업할 때가 다 되어 가니 그 말이 두려움으로 와닿았다.
한 학기 먼저 졸업한 실험실 1기 선배는 지도교수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말이 회사이지, 원래 있는 실험실에 기업 명패만 달린 형색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일은 원래 하는 대학원생의 업무의 연장선상이었다. 왜 그 선배가 졸업한 뒤에 남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9년 동안 대학원 실험실에 묶여 있으면서 갖은 고생을 다했는데 뭐가 미련이 남아 있어서 잔류하는 것인지를.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9년 동안 있었던 우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좀 더 빨리 졸업했으면 남아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9년은 너무 길었다. 지겨웠고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다.
출처: 구글 Gemini 나노 바나나2 제작 AI 이미지 취업 커뮤니티에서 봐 왔던 내용에서 지도교수가 창업한 회사로 가지 말라는 말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기업들이 갖추고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연차나 복지와 같은 체계가 없다. 그냥 대학원 때 하는 것처럼 사적인 볼일 있으면 지도교수(대표)한테 이야기하고 자리를 비우거나 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당당한 권리를 눈치를 보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그리고 운동, 독서와 같은 자기 계발비, 건강검진비 지원, 점심 제공 같은 복지는 교수가 갓 창업한 기업에선 꿈도 꾸기 힘들다. 이러한 부분은 회사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교수들의 무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학생으로만 바라보며 처우를 해 왔던 관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보면 아무리 뛰어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교수가 창업한 기업은 섣불리 가기 힘든 곳임에 분명하다. 회사가 점점 성장해서 교수의 인식이 바뀌고 체계가 갖추어지기 전엔 말이다. 해당 회사의 초기 멤버는 합당한 보상 없이 소위 말하는 그냥 갈리기 쉬운 거 같다.
지도교수의 측면에서도 볼 때 일부 제자는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것을 배워서 돌아오는 게 Win-Win이라는 관점에서 더 좋다고 본다. 교수가 창업한 회사는 초기엔 연구개발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규제 파트, 생산 품질관리 파트 등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다. 졸업한 제자들이 여러 분야에서 경력을 쌓게 된다면 회사에는 추후 꼭 필요한 인재로 쓰일 수 있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니 ‘나는 졸업하는 동시에 바로 뛰쳐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졸업 6개월 전 졸업 요건이 다 갖추어진 시점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지도교수한테는 직접적으론 말하진 못하고 은근슬쩍 나의 속내를 내비쳤다. 그럴 때마다 지도교수는 취업 시장을 다 아는 것 마냥 자기는 다른 회사들보다 더 연봉 높게 주겠다면서 연봉을 제시했는데 내가 알아본 것보다 많이 낮은 수준이었다. 이때 드는 생각이 지도 교수는 분명 창업한 교수들끼리 이야기하며 연봉을 이 정도 주면 되겠다는 것이 세워졌을 것인데 그들이 제자들을 노동자로서 생각하는 인식 수준이 참담할 따름이었다.
출처: pixabay 취업을 위해 제출한 서류들이 통과되어 면접 기회가 잡혔다.
자기 제자들이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 들어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지도교수께 다른 회사 면접을 보고 오겠다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실험실 자리를 비우지 않기 위해서 면접을 최대한 화상으로 진행하는 식으로 회사에 요청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면접을 볼 즘에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라 화상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시점이었다.
그렇게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여 합격하고 마지막 대면 인터뷰가 남았다. 나는 해당 기업의 대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추후 시간이 가능하면 미리 연락드리고 면접을 보는 것으로 승낙을 받았다.
그로부터 1개월 뒤쯤 천운으로 공식적으로 실험실에 나가도 되지 않는 날을 확인하고 대면 면접 일정을 잡았다. 대면 면접까지 통과하여 최종 합격하고 회사로부터 오퍼 레터(offer letter)를 받았다. 회사 대표와 조율하여 학위 디펜스 후 2주 뒤에 출근하는 것으로 하고 오퍼 레터에 최종 서명을 하였다.
지도 학생의 졸업 여부는 해당 지도 교수의 권한이 절대적이기에 혹여나 졸업을 안 시켜 줄 수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 취업 합격 사실을 지도 교수한테 밝힐 수 없었다. 그리고 지도교수의 귀에 들어갈까 봐 같이 동고동락한 실험실 동료들한테 말할 수 없었다.
학위 디펜스 때 심사위원이 졸업하고 뭐 할지에 대해 물어봤을 때 지도교수가 나서서 **이는 내 회사로 들어올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참 기가 찼었다. 나는 의사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빡침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선 그냥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구글 Gemini 나노 바나나2 제작 AI 이미지 ‘저 이미 회사 들어갈 곳 정해졌어요’ 하는 순간 졸업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지도교수께 학위논문에 최종 서명을 받은 것을 제출하고 난 뒤에야 다른 곳에 취업했다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지도교수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화를 내고 졸업 뒤엎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으나 의외로 담담하게 “진작 말하지 그랬어. 축하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지도교수께 언제 말해야 하지, 어떻게 말해야 하지, 맘고생이 심했는데, 모든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지도교수와의 면담을 마치고 실험실에 돌아오며 실험실 동료들에게 취업했다는 이야기를 밝힐 수 있었다. 혼자 떠난다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자기 앞길은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법.
매년 스승의 날에는 교수님을 뵙는데, 매번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