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한 편의 논문을 출판하기까지 피어리뷰를 몇 차례나 경험해 보셨나요? 저는 데스크 리젝션을 제외하고 최대 다섯 번의 피어리뷰를 거친 경험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데스크 리젝션 앞에서는 “제발 피어리뷰라도 받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꼼꼼하고 까다로운 리뷰어를 만나 수정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면 “다음에는 조금 수월한 리뷰어를 만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면 피어리뷰 과정을 통해 논문이 실제로 더 탄탄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피어리뷰는 연구자에게 긴장과 부담을 주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논문의 신뢰성과 학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1). 문제는 이 과정을 회피하거나 악용하려는 시도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사례 중 하나인 피어리뷰 조작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피어리뷰 조작이란?
피어리뷰 조작은 peer review ring 또는 peer review scam이라고도 불리며, 피어리뷰 절차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무력화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저자가 추천한 리뷰어의 이메일을 위조해 실제로는 저자 본인이나 관련자가 리뷰를 작성하는 경우, 혹은 조직화된 리뷰 네트워크를 통해 다수의 논문을 통과시키는 방식이 있습니다.
Springer, SAGE, Wiley(Hindawi) 등 주요 출판사들은 이러한 가짜 리뷰어 계정이나 조작된 피어리뷰 네트워크가 확인된 이후, 피어리뷰 절차 자체가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된 논문들을 대규모로 철회한 바 있습니다 (2–4). 이는 개별 논문의 과학적 오류 여부와는 별개로, 검증 과정이 무너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논문의 신뢰성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피어리뷰 조작에 사용되는 구체적인 방식은 다양하지만,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핵심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짜 리뷰어 계정: 실제 연구자의 이름을 사용하되 이메일 주소를 조작해, 저자 본인 또는 이해관계자가 리뷰를 제출하는 경우
· 리뷰 조작망과 페이퍼밀: 조직화된 네트워크가 여러 저널에 동일한 수법을 적용해 허위 또는 질 낮은 논문을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경우
· 피싱 및 초대 링크 조작: 편집 시스템의 리뷰 초대 링크를 변조하거나 가짜 편집자 계정을 만들어 리뷰 요청을 발송하는 경우
이러한 조작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피어리뷰어 검증 절차의 취약성이 있습니다. 많은 저널이 추천 리뷰어 입력 시 자유 형식의 이메일 주소를 허용하고 있으며, 기관 이메일이 아닌 개인 이메일의 경우 신원 확인이 어렵습니다. 또한 제한된 인력과 시간 속에서 에디터가 저자가 제시한 추천 리뷰어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COPE는 이러한 사례를 다루면서, 저자에 대한 조치뿐 아니라 저널과 출판사 차원에서 피어리뷰 시스템의 실패를 인식하고 절차를 개선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
피어리뷰 조작에 연루된 논문이 철회될 경우, 그 영향은 출판사 차원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 개인에게도 직접적으로 미칩니다. 연구비 심사, 승진 및 임용 과정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고, 공동연구자와의 신뢰 관계가 훼손될 위험도 있습니다. 특히 고의가 없었더라도 연루 사실만으로 평판에 손상이 남을 수 있으며, 이는 경력 초기 연구자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에디터와 저널의 역할
피어리뷰 조작을 예방하기 위해 에디터와 저널이 취해야 할 기본 원칙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6).
· 추천 리뷰어는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고, 반드시 편집자가 직접 선정한 독립적인 리뷰어를 포함할 것
· 리뷰어 신원 확인 시 기관 이메일 사용을 권장하고, ORCID 등 영구 식별자를 통해 검증할 것
· 최근 공저 이력, 동일 기관 소속 등 명백한 이해충돌이 있는 경우 리뷰어에서 제외할 것
· 리뷰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짧거나 모든 평가가 과도하게 긍정적인 경우 추가 검토를 수행할 것
· 리뷰 텍스트 유사도 분석이나 IP·지리적 패턴 점검 등 이상 징후 탐지 절차를 도입할 것
저자가 유의해야 할 점
저자 역시 추천 리뷰어를 제시할 때 이름뿐 아니라 소속, 이메일 (가능하면 기관 이메일), 과거 협업 여부 등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리뷰 대행 서비스나 리뷰 조작을 암시하는 제안은 어떤 경우에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리뷰 초대를 받았을 때 이해관계가 있다면 에디터에게 이를 알리고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능하다면 ORCID에 등록하고, 자신의 리뷰 활동을 공식적으로 기록·관리하는 것도 연구자 신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실천은 개인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학술 출판 생태계의 정직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피어리뷰 조작이 남기는 질문
피어리뷰 조작 문제는 단순히 일부 연구자의 일탈이나 기술적 허점만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주요 출판사 사례에서 보듯, 논문의 내용 자체보다 “독립적이고 공정한 검증 과정을 거쳤는가”가 철회의 핵심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는 피어리뷰가 행정 절차가 아니라 학술 출판의 신뢰를 성립시키는 전제 조건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또한 특정 출판사 사례에서는 동일한 리뷰 네트워크가 여러 저널에 영향을 미치면서, 정상적인 편집 판단조차 왜곡될 가능성이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출판사들은 편집 시스템 개편, research integrity 관리 강화 등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이는 피어리뷰 조작이 사후 대응보다 예방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은 기술적, 운영적 장치와 더불어 연구 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빠른 출판과 생산성 중심의 평가 환경은 연구자에게 피어리뷰를 ‘견뎌야 할 장애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피어리뷰의 의미를 다시 공유하고, 투명성과 책임을 실제로 보상하는 평가 체계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집자와 연구자는 의심을 기울이는 태도를 일상적 관행으로 삼고, 출판사는 이를 뒷받침하는 검증 도구와 명확한 조사 절차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야 피어리뷰는 다시 한번, 두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 있는 학술적 검증 과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레퍼런스
- Balasubramanian, Swaathi, and Aditya Simha. "Peer Review Rings: Manipulated Peer Reviews and Scams." Scientific Publishing Ecosystem: An Author-Editor-Reviewer Axis. Singapore: Springer Nature Singapore, 2024. 367-378.
- Callaway, E. Faked peer reviews prompt 64 retractions. Nature (2015). https://doi.org/10.1038/nature.2015.18202
- Ivan Oransky, 2014, https://retractionwatch.com/2014/07/08/sage-publications-busts-peer-review-and-citation-ring-60-papers-retracted/
- Ellie Kincaid, 2022, https://retractionwatch.com/2022/09/28/exclusive-hindawi-and-wiley-to-retract-over-500-papers-linked-to-peer-review-rings/
- COPE case report, https://publicationethics.org/guidance/case/compromised-peer-review-system-published-papers
- WAME, 2015, https://wame.org/best-practices-for-peer-reviewer-selection-and-contact-to-prevent-peer-review-manipulation-by-authors
- 본문은 생성형 AI를 구성 아이디어의 정리와 문장 표현 개선 등 작성 과정 전반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원고의 표현은 직접 검토 및 수정 후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