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바이오 스타트업 대표이자 대학에서 강단에 서는 교수, 그리고 국제 표준을 다루는 ISO 전문위원으로서 저는 매일 세 개의 시계를 차고 사는 기분입니다. 각각의 역할은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결국 하나의 지점을 향해 수렴합니다. 바로 ‘생존’입니다.
제미나이의 나노 바나나를 이용하여 제작
국내 바이오 산업계에는 “한국 시장은 좁다, 글로벌로 나가야 산다”라는 명제가 종교처럼 퍼져 있습니다. 정부도, 투자자도, 심지어 동료 연구자들도 해외 진출과 국제 공동 연구를 부르짖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협소한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선진 기술을 습득하며,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해외 공동 연구’의 실상은 화려한 청사진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차라리 맨몸으로 절벽을 오르는 것에 가깝습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좋은 기술이 있으면 해외 연구소와 협력해서 날개를 달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지만 이 질문에는 스타트업이 처한 자금의 빈곤, 인력의 사막화, 그리고 한국 연구 생태계 특유의 폐쇄성이 철저히 간과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 한국의 바이오 스타트업에게 해외 공동 연구가 ‘그림의 떡’ 일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인 모순과 현실적인 장벽을 낱낱이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해외 공동 연구를 가로막는 가장 거대하고도 일차적인 장벽은 단연 ‘돈’입니다. 연구는 열정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유지는 자본으로 합니다. 특히 국경을 넘는 연구는 그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다수 초기 창업가나 연구자가 의존하는 정부의 단독 연구 과제 혹은 창업 지원 과제의 규모는 대략 3천만 원에서 6천만 원, 최대 1억 원 선입니다. 일반인에게는 큰돈일지 모르나, 기업의 재무제표 위에서는 순식간에 증발하는 액수일 겁니다.
냉정하게 계산해 봅시다. 해외 공동 연구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최소한 해당 프로젝트를 전담할 석·박사급 연구원 1명은 필요합니다. 이 한 사람의 인건비(4대 보험, 퇴직금 포함)와 연구실 운영비, 재료비만 해도 1년 예산의 절반 이상이 날아갈 겁니다. 1억 원은커녕 5천만 원짜리 과제로는 연구원 한 명을 1년 동안 고용하기조차 버겁습니다. 사람을 뽑아놓고 월급을 줄 수 없어 1년 뒤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국제 공동 연구를 기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국내 연구와 달리 해외 연구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더 막대합니다. 파트너를 만나기 위한 항공료와 체재비는 기본이고, 시료(Sample)를 해외로 보내기 위한 특수 운송비, 양국의 규제를 검토하기 위한 법률 자문비, 통번역비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정부 과제 비목에는 이러한 ‘네트워킹 및 행정 비용’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거나 아예 책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대표 개인의 사비를 털거나 다른 계정의 돈을 무리하게 끌어와야 하는데, 이는 곧 횡령이나 유용의 위험으로 이어집니다. 자금의 파이프라인이 말라있는 스타트업에게 해외 공동 연구는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재정적 자살행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미나이의 나노 바나나를 이용하여 제작
설상가상으로 국내 과제 평가 위원들의 시각은 지극히 ‘내수 지향적’입니다. “굳이 해외 기관과 해야 합니까? 국내 병원 데이터로도 충분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은 평가장의 단골 메뉴입니다.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혁신적인 아이템이라 할지라도, 당장 눈앞의 성과(국내 매출, 국내 고용)를 증명하지 못하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됩니다. 해외에서 먹힐 만한 아이템을 들고 해외 파트너를 찾으려 돈을 구하러 갔더니, 국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 이 아이러니가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돈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연구를 수행하는 주체, 즉 ‘사람’에게 있습니다. 과학자, 특히 한국의 이공계 연구자들은 태생적으로, 그리고 후천적으로 ‘네트워킹’에 취약합니다.
과학자라는 인종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실험실이라는 통제된 환경에서 변수를 제어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깊이 있는 연구에는 도움이 되지만, 낯선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공동 연구 제안’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해외 공동 연구는 일종의 ‘세일즈’입니다.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어필하고, 상대방이 얻을 이익을 설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연구자는 이러한 비즈니스적 접근을 어려워합니다. 학회나 전시회에 가서도 연구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입을 떼지 못합니다. “혹시 거절당하지 않을까?”, “내 영어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명함 한 장 건네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개인의 성격 문제를 넘어 한국 교육 시스템의 병폐와 맞닿아 있습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원까지, 우리는 정답을 찾는 훈련만 받았지 ‘질문’하고 ‘토론’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국제회의나 학술대회 현장을 가보면 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서구권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최근 급성장한 중국이나 일본의 연구자들은 논리가 다소 부족하거나 영어가 어눌하더라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반면 한국 연구자들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 옵니다. 이는 침묵은 겸손이 아니라 ‘무능’이나 ‘무관심’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의견을 내지 않으니 존재감이 없고, 존재감이 없으니 아무도 파트너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통하지 않는 연구자는 국제무대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을 뿐이겠죠.
개인이 뚫을 수 없는 벽이라면 국가가 사다리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지원 시스템은 주변 경쟁국들에 비해 너무나 빈약하고 전략이 부재합니다.
제미나이의 나노 바나나를 이용하여 제작
국제 표준(ISO) 회의나 대규모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봅시다. 일본이나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합니다. 은퇴한 원로 교수나 명망 있는 연구자들을 국가대표급 리더로 내세우고, 막대한 체재비와 활동비를 지원하며 국제 네트워크의 중심에 심어 놓습니다. 이들이 닦아놓은 길 위로 자국의 젊은 연구자들과 스타트업이 자연스럽게 합류하여 공동 연구 기회를 얻습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가라”는 식입니다. 일부 비영리 국제기구 활동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있더라도 최소한의 실비 정산 수준입니다. 개별 연구자가 사비를 털어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홀로 식사를 해결하며, 맨손으로 네트워크를 뚫어야 합니다. 조직력을 갖춘 타국 대표단과, 각자도생 하는 한국 연구자의 싸움은 시작부터 승패가 정해져 있습니다.
해외 파트너가 공동 연구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수행 역량’입니다. 즉, 당신네 회사에 이 일을 해낼 ‘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은 또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오, 특히 AI나 신소재가 결합된 첨단 융복합 분야의 국내 인력 풀(Pool)은 처참할 정도로 좁습니다. “이 분야 전공자가 국내에 나 하나뿐인 것 같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입니다. 스타트업이 5~10명 규모의 다목적 연구팀(TF)을 구성하는 것은 명문대 연구실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사람이 없으니 팀을 못 만들고, 팀이 없으니 해외 파트너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며, 신뢰가 없으니 공동 연구가 성사되지 않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대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 기업’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에게 해외 공동 연구는 자금, 문화, 인력, 시스템의 4중고에 가로막힌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바이오 생태계는 두 가지 부류로 양극화될 것입니다. 연구보다는 상장(IPO)이라는 ‘머니 게임’에만 몰두하여 거품처럼 사라질 소수의 기업, 그리고 기술력은 있으나 고립된 채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다수의 ‘좀비 기업’들입니다.
이 암울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첫째, 평가 시스템의 혁신입니다. 국내 시장성이 아닌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최우선 지표로 삼아야 한다. ‘한국에서 쓸 수 있냐’고 묻기 전에 ‘세계에서 통할 기술이냐’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외 공동 연구를 위한 비용(출장, 법무, 네트워킹)을 현실화하여 과감하게 지원해야 합니다.
둘째, ‘각자도생’을 멈추고 ‘연대’ 해야 합니다. 개별 기업이 인력난을 해결할 수 없다면, 스타트업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기술과 인력을 공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1명의 천재가 아닌 10명의 협력자가 팀을 이룰 때 해외 파트너도 움직입니다.
셋째, 연구자들의 마인드셋 변화와 교육입니다. 연구실 안에 갇힌 천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통하는 과학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해외 공동 연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됩니다. 화려한 구호 뒤에 숨겨진 이 처절한 현실을 직시하고, 연구자들이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지 않도록 튼튼한 자일과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K-바이오가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