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연구 효율을 위해 체력을 기르자]
새해가 밝았다. 항상 1월이면 헬스장에 사람이 몰리고, 한 달쯤 지나면 다들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늘 그중 한 명이었다. 헬스는 늘 연초에 다이어트를 목표로 시작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등록만 해두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며칠은 의욕적으로 나가다가도 금세 발길이 끊겼다. 원래 마른 편이어서 살이 조금 찌면 차라리 먹는 양을 조절해서 원래대로 돌아가자는 쪽이었다. 굳이 운동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헬스장에 가도 늘 러닝머신 위에만 올라갔고, 기구를 사용하는 건 막연히 무서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굳이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매일 일정이 제각각이고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하루가 끝나면 운동을 할 의지보다는 그냥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힘드니까 맥주나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하지만 긴 대학원 생활을 체력 관리 없이 버티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면역력이 자주 떨어졌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 자체가 점점 버거워졌다. 몸이 무거운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일의 효율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특히 겨울이 되면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서 실험실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운동을 안 한 채 이 체력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앞선 글에서 썼듯이, 한때 나의 스트레스 해소는 음주였고 그 결과 뱃살이 급격히 늘었다. 몸이 무거워지니 스스로가 점점 게을러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등과 어깨는 굽어 있었고 거북목도 심했다. 특히 오른쪽 어깨가 더 많이 말려 있었는데, 실험 결과를 분석하거나 일을 할 때 오른손이 항상 책상 위에 있었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손목 통증도 있어서 3년 차부터는 버티컬 마우스를 쓰고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때의 상태는 총체적 난국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단순히 몸무게가 늘었다기보다는 술과 야식으로 살이 찌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염과 장염으로 다시 살이 빠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근육은 없고 흐물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건강하지 않은 몸처럼 보였다.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한 번은 PT를 받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PT는 나와 잘 맞지 않았는데 설명을 듣고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내가 못하는 건지 설명이 부족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됐다.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자세'라는 말들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 거의 처음 운동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어느 부위를 타깃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PT를 받으러 가는 날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첫 PT를 받았던 헬스장은 연구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실험이 잘 안 되면 백업 실험을 해야 했고, 갑자기 일정이 생기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PT를 취소해야 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운동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게다가 PT 선생님은 운동을 가르치기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헬스에 대한 관심도 점점 사라졌다.
그러다 체형 교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라테스를 알아보게 됐다. 일대일 수업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처음부터 선택하기 어려웠고, 대신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에서 횟수가 조금 남아 있는 그룹 필라테스 수업권을 양도받아 시작했다. 예전처럼 일부러 먼 곳은 피했고, 걸어서 갈 수 있거나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 거리만 고려했다. 처음에는 '척추를 뽑으세요' 같은 말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디에 힘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처음엔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자세히 알려주는 점이 좋았다.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고 일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나갔다.
비교 대상이 있으면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인바디도 재봤다. 체중은 과체중이 아니었는데 체지방률이 34%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한 달쯤 지나자 말랑하던 팔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근육량도 조금 늘었다.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 선생님이 말하던 부위에 실제로 자극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말에 한 번, 평일에는 마지막 타임에 맞춰 뛰어갈 때도 많았지만 예약 변경이 가능해서 일정 조율이 비교적 수월했다. 그 덕분에 꾸준히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세 달 정도 지나 수업권을 다 쓰고 나니 근육량을 더 늘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번에는 헬스장에 가서 트레드밀만 타고 싶지 않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헬스장을 다시 등록했고 PT도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연구실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을 선택했다. 이전 PT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아직 내 몸을 움직이고 타깃 부위를 느끼는 게 어렵다고도 말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동성 선생님이 더 편할 것 같아 여자 선생님을 선택했다.
다행히 이번 선생님은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방식이 나와 잘 맞았다. PT 날이 아니어도 혼자 복습할 수 있도록 루틴을 짜달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셨다. PT가 없는 날에도 헬스장에서 마주치면 자세를 물어볼 수 있었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해주기도 했다. 헬스장이 연구실과 가까우니 바쁜 날에도 잠깐 들러 30분이라도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운동을 하면서 동기부여를 위해 사진을 찍어서 혼자 기록했었다
물론 너무 피곤하거나 일정이 겹치면 운동을 못 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운동을 하고 나면 그날의 스트레스가 풀렸고 잠도 훨씬 잘 잤다.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한 지 한 달쯤 지나자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예전에는 아침마다 몸을 질질 끌다시피 출근했는데, 자는 시간은 같아도 훨씬 개운해졌고 출근길의 몸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체력이 좋아지니 실험을 할 여유도 생겼고, 자연스럽게 일의 효율도 함께 올라갔다.
나는 비교적 예민한 편이라 실험이 잘 안 되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잠에 깊이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수면 시간이 늘기보다는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운동에만 집중하게 되니 잡생각이나 생산적이지 않은 부정적인 생각에서도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웨이트 무게를 올리고 성공할 때마다 자신감도 조금씩 늘었다. 예전에는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 2kg을 열 번만 해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는 오십 번도 할 수 있게 됐고 레그프레스를 120kg으로 성공했던 날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뇌는 이렇게 예측 가능한 성취를 반복적으로 경험할 때 더 안정적으로 학습한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고, 설명을 들으며 동작을 따라 하고,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 감각을 느끼는 일들이 쌓이면서 운동은 부담이 아니라 이어갈 수 있는 일이 되었고 성취감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반복된 성취 경험은 운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나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내장지방 레벨 9와 체지방률 34%로 시작했던 처참한 나의 첫 인바디이 글을 읽으며 ‘운동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시간이 없다’ 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연구실 다니는 것도 힘든데 운동할 여력이 어디 있냐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은 하루 30분이면 충분하다. 한 달만이라도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해보길 권하고 싶다. 좋아진 체력은 분명 연구와 실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헬스장이 없다면 집에서 홈트레이닝도 좋고 편한 운동화를 신고 출근 전 30분이나 실험을 기다리면서 30분이라도 뛰어보는 것도 좋다. 30분이 없다면 15분으로 시작하는 것도 충분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위염과 장염을 달고 살았다. 체력이 좋아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빈도는 확실히 줄었다. 또한 몇 년간 나 자신을 관찰해 본 결과, 나는 특히 고기에 예민했고 중요한 실험이나 발표를 앞두면 조금만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났다. 힘들 때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스트레스를 풀어주잖아 하면서 먹고 후회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탈이 나서 손해를 보는 건 결국 나였다.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편히 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내 몸의 예민함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쪽을 택했다. 일단 혹시 모르니 진경제와 역류성 식도염약은 상비약으로 들고 다녔다. 또한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는 아무리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했고, 빈속에 커피를 마시면 위경련이 온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요거트나 사과 한 조각이라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머리가 띵하고 감기 기운이 느껴지면 더 아프기 전에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거나 약을 미리 처방받고, 그날은 집에서 죽과 꿀물, 약을 먹고 푹 쉬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꼭 더 크게, 더 오래 아팠기 때문이다.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미리 예방하는 쪽을 선택했다.
아픈 곳 없이 지내는 게 물론 가장 좋다. 다만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면 몸이 조금 불편한 상태가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처럼 느껴지고, 그걸 그냥 견디는 쪽이 더 익숙해지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지금 돌아보면 갑자기 아팠던 순간들 역시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건 아니었다. 그전에 몸은 이미 여러 번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뿐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생활 리듬을 조금씩 바꾸면서 깨달은 건, 몸을 관리하는 일이 대단한 결심이나 각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 상태를 조금 더 자주 확인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택을 반복하는 것. 아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운동 이야기는 앞으로도 몇 화 더 이어질 것 같다. 겉으로 보면 이것저것 취미를 늘려가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병원을 오가기도 하고 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시간들이 더 많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 이야기도, 차근차근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