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가 생활비? 냉장고, 건조기 산 교수 수사”
“R&D 사업비 유용에 위장 고용, 23년 상반기 적발액만 618억 원”
“현직 대학총장 ‘연구비 유용 의혹’ 구속 기로”
“국가지원 연구비 부당집행 사례 267건 적발… 23억 환수 조치”
“국책연구비 220억 원 이상 부정 집행… 적발 사례 267건”
K 교수님의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뉴스 헤드라인들입니다.
“나랏돈을 유용해? 연구비가 눈먼 돈인가…” 혀를 끌끌 차며 남의 일처럼 넘깁니다.
그러나 평온하던 오후, 연구실의 적막을 깨는 전화 한 통으로 세상이 멈춥니다.
"K 교수님 되십니까?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입니다. 연구비 횡령 건으로 출석 요구서를 보내드렸습니다."
'횡령'이라는 단어가, 뉴스 사회면이 아니라 내 이름 바로 뒤에 붙는 순간입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고, 손이 떨립니다.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아니, 내가 그 돈을 유흥비로 썼나? 아파트 대출을 갚았나?
연구가 멈출까 봐, 학생들 동의도 받고 급한 불 끄느라 잠깐 융통한 것뿐인데. 나는 단 10원도 사적으로 챙긴 게 없는데…"
K 교수님은 떳떳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K 교수님이 서 계신 곳은 논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실험실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규칙이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연구실 밖 정글'입니다.
정글의 룰: 선의는 증명되지 않는다
정글의 룰은 냉혹합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보는 것은 연구자의 열정이나 맥락,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 아닙니다. 그들이 들여다보는 것은 오직 차갑게 남아 있는 '숫자'와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와 기록이 만들어내는 그림이 의도와 무관하게 ‘횡령의 외형’을 띠고 있다면, 그 순간부터 연구자는 해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 Mohamed_hassan, 출처 Pixabay
안녕하세요.
저는 변호사 겸 공인회계사(KICPA) 김명규입니다.
사모펀드(PE)와 자산운용사에서 ‘돈과 법’이 충돌하는 현장을 경험한 후 현재는 법률∙회계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연구자 출신 배우자의 권유로, 이공계 연구자분들께 꼭 필요하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BRIC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 연재는 누군가를 변호하거나 편법을 알려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연구자들이 법적/회계적 리스크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고, 연구실 밖의 규칙을 명확히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연재의 첫 주제로,
연구자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오해하기 쉬운 ‘연구비 횡령’을 다루려 합니다.
횡령 혐의, 그 무게와 구조
연구비 횡령 사건은 대학, 정부 부처, 지자체의 고소나 고발 및 국민권익위원회 제보 등 다양한 경로로 시작됩니다. 경로와 무관하게 사건이 수사기관에 접수되는 순간, 연구자는 ‘존경받는 교수’에서 형사 절차의 당사자가 됩니다.
문제는 연구비 횡령이 단순 행정 착오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침해한 중대한 사안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입니다. 형사처벌(단순 횡령이 아닌 ‘업무상 횡령’ 혐의가 적용)은 물론, 그동안 받은 연구비 환수, 징계, 향후 연구 참여 제한, 제재부가금까지 이어질 수 있어 오랜 시간 쌓아온 연구자로서의 경력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의도는 좋았다” – 가장 위험한 오해
K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돈으로 개인적인 소비를 한 적은 없습니다. 연구를 중단하지 않기 위해 잠시 융통했을 뿐이고, 나중에 모두 원상 복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연구 현장이 녹록지 않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원금 입금은 지연되기 일쑤이고, 시약과 장비 대금일자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연구원 인건비는 매달 정해진 날짜에 지급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비 계좌의 자금을 잠시 다른 계좌로 돈을 옮겨 급한 불을 끄는 행위는, 현장에서는 ‘연구를 살리기 위한 합리적 선택’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과 회계의 언어로 보면, 그 선의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법의 시선: 이체 버튼을 누르는 순간
횡령죄 성립의 핵심은 ‘불법영득의사(不法領得意思)‘, 즉 남의 돈을 자기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처분하려는 의사입니다.
대법원은 국가연구개발비나 국고보조금 등을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자금’으로 봅니다. 이 돈이 정해진 목적 외로 사용되기 위해 관리 계좌에서 벗어나는 순간, 법원은 그 행위 자체를 '위탁 취지의 배신'으로 평가합니다. 나중에 다시 채워 넣었는지(반환), 실제로 어디에 썼는지(사용처)는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단지 양형(형량)을 판단하는 참작 사유에 불과합니다. 즉, 자금을 임의로 이체하는 순간 법적 책임은 발생합니다.
자주 문제되는 두 가지 유형
모든 사례가 일률적으로 동일하게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사 및 감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쟁점이 되는 유형은 반드시 존재하며,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유형 1] 연구비를 회사 운영비로 전용한 경우
연구비 계좌에서 자금을 회사의 일반 계좌로 옮겨 직원 급여, 임대료, 다른 프로젝트 비용 등으로 사용한 경우입니다.
“회사가 살아야 연구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라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법적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회사와 연구 과제(국가 예산)는 법적으로 엄격히 분리된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백한 규정 위반이자 횡령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유형 2] 절차는 어긋났지만, 최종 사용처가 연구였던 경우
자금의 이동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해당 연구 과제 수행을 위해 사용된 경우입니다.
(예: 급하다는 이유로 정해진 절차 없이 현금을 인출하여 사용하거나, 개인 자금과 혼용하여 집행한 뒤 연구비 계좌에서 임의로 보전받은 경우 등)
이러한 사례 역시 권장되는 집행 방식은 아니며, 실제 수사 과정에서 횡령으로 의심받아 기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수사기관은 계좌 흐름(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보지만, 자금의 최종 귀착지가 연구였음을 회계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고의 여부에 대한 법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다툼의 여지’가 있는 영역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말해야 합니다
수사 과정에서는 수년 치의 계좌 내역과 장부가 분석됩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기록이 없는 지출은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연구실 카카오톡 대화방 기록, 택배 수령증, 실험 노트, 흐릿한 영수증 한 장이 자금의 성격을 규명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횡령’으로 의심받던 지출이 사후적으로 ‘연구 집행’으로 설명되는 과정, 이를 흔히 ‘소명 작업’이라고 부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연구비 집행 내역을 떠올려 보셨다면, 이미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를 밟고 계신 겁니다.
연구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끈기 있는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거나 때로는 학문의 과정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형사 절차는 다릅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나 기록의 부재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귀결되곤 합니다.
법적 분쟁에서도 여러분을 지켜주는 것은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데이터와 기록입니다.
맺음말
현재의 연구비 집행 시스템은 연구자에게 높은 수준의 행정적 엄격함을 요구합니다. 때로는 현실과 괴리된 시스템의 모순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무엇이 위험한지, 어디까지 허용되지 않는지, 어떤 기록이 필요한지를 차분히 집어보려 합니다. 적어도 '왜 문제가 되는지도 모른 채 문제에 휘말리는 일'만큼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다음 화에서는 <연구비 카드로 회식? 횡령죄 성립의 기준>을 주제로, 무심코 긁은 카드 한 장이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의 연구와 일상을 지키는 파트너, 김명규 변호사/공인회계사 드림
※ 본 칼럼은 실무 지식을 바탕으로 AI(Gemini)를 활용해 사례를 구성하였으며, 필자가 직접 집필·검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