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해외 연구실에서 살아남기> 연재의 마지막 글입니다.
오 년 하고도 또 반년을 향해 가는 미국 생활을 이어 오면서, 저에게 미국에서의 삶은 사실 한국 생활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 힘든 부분도 있고 덜 힘든 부분도 있고,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편한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연구 환경도 잘 모르겠습니다. 각기 중점을 두는 것이 조금 달라서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이 다소 어렵고, 다만 이제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뜻만 있다면 그 뜻을 좇을 수 있는 최소한의 좋은 연구 환경이 어디서든 갖춰져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딱히 해외로 나오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지만 나온다면 여러모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생의 방향, 그리고 사고방식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알게 모르게 많이 바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조금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외국 생활에 적응이 더 쉽고요. 저는 한국에서도 사람 여럿이 있는 환경을 불편해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힘들 때가 많았는데 초반에는 이곳저곳 껴서 어울려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렇게 적응하다 보니 이제는 불편한 곳은 딱히 가진 않지만 가야 할 곳은 또 참고 가고, 보는 눈도 생기고 눈치도 생기면서, 그리고 뻘쭘한 상황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내공도 조금이나마 늘어나면서 생활이 한결 더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보다는 결국 함께 한 시간이 늘어나며, 그리고 그냥 잘 맞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안 맞는 사람들은 무슨 노력을 해도 잘 안 맞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관계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약간 어렵다고 느낄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비슷비슷하더라고요. 이건 저도 여전히 천천히 깨닫는 중입니다.
대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버티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모든 게 원하는 만큼 빨리빨리 진행되지 않아서 답답한 순간이 많을 수 있는데 그럴 때 예민해지기 쉽습니다. 그때는 혼자 끙끙 앓거나 공격적으로 나오기보다는 그저 상대방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이 남는 시간이 의미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또 여러모로 신분이 불안정하다 보니 자꾸 고뇌하고 비교를 하게 되는데, 내가 남보다 못해 보여도 혹은 남보다 잘나 보여도 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되새겨 보곤 했습니다. 그것이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 다른 언어를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 틈에서 1년 365일을 버티며 살아가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왜 제가 BRIC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고민했고, 글 쓰는 게 좋아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등등 참 다양한 이유를 떠올려 봤지만 사실 외로워서 글을 쓴 것 같습니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그냥저냥 잘 살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도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나 봅니다. 오히려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느껴지는 외로움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대신 저는 박사과정 말년차부터 뉴스레터를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무료함과 외로움이 유의미하게 줄었습니다. 특히 (이제는 발행을 중지해서 너무 아쉬운) <인스피아>라는 뉴스레터가 도착하는 날을 일주일 동안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잠깐 개인의 삶에서 벗어나 무언가 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사회와 지구의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 연구실 밖 조금 더 큰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경험이 불안감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됐는데, 조금 한 발 떨어져서 멀리 보고 크게 보면 제가 붙들고 있는 일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더라고요.
특히 <인스피아>에서 진중문고에 대해 다룬 회차(*)가 있는데, 세계대전 시절 군인들이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 열렬한 독서가가 되었던 이유, 그리고 참전군인들 중 일부가 직접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당연히 제가 처한 상황은 그만큼의 극한 상황은 아니지만) 마치 제가 뉴스레터를 비롯한 여러 책과 글을 읽으며, 그리고 종종 글을 쓰면서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불안함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꼭 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일 필요가 없습니다. 책이 건네는 솔직하고 상냥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엘런 베넷,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재인용)
그러나 BRIC에서 글이 공개될 때마다 저와 제 글은 초연하지 않았고, 잘못되었거나 치기 어린 내용을 적은 건 아닐까, 언젠가 글을 지우고 싶은 날이 올 텐데… 하며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연재를 여기서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더 멋진 분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제가 여기서 더 무슨 말을 감히 더 얹을 수 있을까요.
연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피드백이 아프지 않고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졸업하고 포닥이 되어 연구실이 바뀌게 되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피드백에 열려 있다고 느꼈던 이유는 단지 피드백을 주는 환경이 아는 사람, 아는 환경으로 편안해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연구실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생소한 환경에서 평가를 하기에 요즘은 다시 피드백의 날카로움을 온전히 느끼며 아파하고 있습니다.
옅은 회색보다는 새까만 검은색 청설모가 유난히 더 많이 보이는 새로운 동네 (사진: 직접 촬영)
그래서 글을 쓰고 공개하는 (혹은 연구하고 출판하는) 분들이 얼마나 용기 있는지 압니다. 날 선 반응에 혹은 무반응에 상처받아 글쓰기 혹은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군가 항상 조용한 독자로서 손꼽아 기다리고, 읽고, 응원하고 있거든요. 제 글도 부족한 점이 참 많고, 그래서 지우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읽고 짧은 즐거움의 순간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거의 매 원고를 꼼꼼히 읽어주시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었던 친구들과 BRIC 담당자 김수정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모두 항상 즐거운 연구 하시고 건강하세요.
(*) ‘책 안 읽던 사람’이 ‘책벌레’가 될 수 있을까? : 진중문고라는, 진심어린 환대
<인스피아> 작가님께 인용을 직접 허락받았습니다.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Lml80XDGDSVGNDuIx7bQ4pQBSevYN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