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미국 의료진이 ‘유전자 가위’ 치료를 통해 희소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난 신생아의 생명을 구해 화제가 됐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한 신생아는 출생과 함께 암모니아 제거에 필요한 효소가 부족한 ‘중증 CPS I 결핍증’을 진단받았다. 중증 CPS I 결핍증이 생길 경우 암모니아가 체내에서 축적돼 독성을 일으켜 간이나 뇌 같은 다른 장기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신생아 때 발병할 경우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게 돼 치명률이 매우 높다. 펜실베이니아 의대 연구팀과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은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을 바탕으로 결함이 있는 유전자 염기서열만 콕 집어 교정하는 염기 편집(base editing) 기법을 사용해 신생아의 목숨을 살렸다. 외신은 이번 치료가 치명적 유전 질환을 유전자 가위 기술로 구해낸 첫 번째 사례라고 전했다.
#유전자를 마음대로 자르고 붙인다!
크리스퍼-카스9은 원하는 유전자에 결합하는 유전물질(RNA)과 해당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 카스9을 결합한 유전공학 기법이다. 크리스퍼-카스9이 작동해 효과를 내는 기본적인 원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먼저 유전자 절단이다. 표적이 되는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를 갖고 그 지점을 찾아가는 RNA와 그 표적 지점을 정확하게 자르는 절단효소 카스9의 복합체가 이런 작용을 한다. 이어 세포에서는 잘린 유전자 가닥을 이어붙여 정상으로 복구하는 시스템이 가동된다.
표적으로 삼은 유전자의 염기서열 정보를 기록해둔 RNA의 종류를 바꾸면 어떤 유전자도 자르고 붙일 수 있다. 이는 바이러스 공격에 대항하는 박테리아의 면역체계를 따와 만들어졌다. 박테리아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조각을 잘라내 자신의 유전자에 삽입하면서 면역을 획득하는 원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크리스퍼-카스9은 원하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잘라내고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가위라고 불린다. 유전자 가위가 잘라낸 부위는 정상 유전자로 대체돼 크리스퍼-카스9은 유전 질환의 근본을 치료할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2011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진의 연구를 통해 개발됐고, 2012년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돼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크리스퍼-카스9은 생명공학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성장했다. 이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막스플랑크연구소장과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는 202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다른 유전자 교정 기술은 숙련된 전문가만 쓸 수 있지만 크리스퍼-카스9은 누구나 금방 쓸 수 있고 속도도 훨씬 빠르다. 이처럼 기술적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실험과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유전자 가위 관련 시장은 2028년 100억달러(약 14조11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확도 낮아 예기치 못한 변이 가능성 존재
하지만 크리스퍼-카스9 기술은 정확도가 높지 않아 예기치 못한 변이 발생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유전자의 엉뚱한 부분을 자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크리스퍼-카스9의 대표적 부작용인 표적이탈(off target) 현상이라고 말하는데, 표적에서 벗어난 부분을 잘라 붙이면 돌연변이가 발생해 암 등이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크리스퍼-카스9이 세포 안에서 작동할 때 의도치 않은 염기서열의 변이를 적지 않게 발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 내지 수천 개 염기쌍이 유전자 가닥에서 재배열되는 일이 종종 일어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영국 웰컴생어연구소 소속 연구진이 크리스-카스9 기술을 사용한 이후 쥐와 사람 세포의 유전체에 일어난 염기서열 변화를 정밀하게 분석해 확인했다.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대체로 정상적인 복구가 이뤄지지만 더러 일부 염기쌍들이 재배열돼 유전체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적 지점에서 발생하는 이같은 유전자 변이들은 자칫 심각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유전자 치료 대상이 되는 수많은 세포들 중에서 암 발병으로 진행되는 세포가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크리스퍼-카스9의 유전자 교정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유전자 치료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이같은 표적이탈을 줄이려는 연구가 이어졌고, 더 정밀한 편집이 가능한 ‘프라임 에디팅’(Prime Editing)이라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 기술이 등장했다.

차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로 불리는 프라임 에디팅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정밀도와 안전성에 있다. 프라임 에디팅은 크리스퍼-카스9처럼 이중나선 구조로 이뤄진 유전자 두 가닥을 모두 절단하지 않고 한 가닥만 정밀하게 절단해 원하는 염기를 삽입하거나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중 가닥을 자르는 크리스퍼-카스9보다 정확도가 월등히 높고 부작용도 적어 유전병 치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다.
프라임 에디팅의 등장으로 이제 정밀 유전자 치료 시대의 본격 개막이 다가왔다. 기존 유전자 치료의 한계를 넘어 뇌질환·면역질환 등 고난도 영역까지 치료 범위를 넓히고 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프라임 에디팅 기술은 현재까지 알려진 7만 5천여 개의 유전 질환 중 약 90% 가량을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인류가 특정 유전자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질병 정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섰음을 의미한다.
#국내 연구진, AI로 효율 예측하는 모델 개발
물론 프라임 에디팅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효율을 더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게다가 프라임 에디팅이 원하지 않는 위치에서 발생하는 표적이탈 위험성이 얼마나 높은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으로 프라임 에디팅 기술의 효율을 미리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해 주목을 모은다. 이를 통해 프라임 에디팅의 편집 성공률을 높여 안전성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 의대 연구팀은 수십만 개 이상의 프라임 에디팅에 대해 효율을 측정하고 데이터를 얻었으며, 이를 활용해 프라임 에디팅 효율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AI 모델 딥프라임(DeepPrime)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프라임 에디팅의 표적이탈 현상에 대해서도 대량의 스크리닝(선별 연구)을 통해 측정 데이터를 얻어냈으며 최초로 예측 모델을 제작했다. 과거에 실험적으로 표적이탈 확률을 알아내기 위해 몇 주 이상 걸리던 과정을 이제는 불과 몇 초만에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차세대 유전자 가위 프라임 에디터의 효율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모델 개발이와 함께 연구진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단순히 예측 모델만 만든 것이 아니라 프라임 에디팅이 일어날 때 어떤 특징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 원리를 밝혀내기 위한 분석도 함께 진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4년 국가연구개발(R&D)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된 이번 연구는 AI를 활용해 프라임 에디팅의 낮은 효율에 대한 한계점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를 주도한 김형범 연세대 교수는 유전자 가위의 효율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AI 프로그램을 세계최초로 개발해 '2019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김형범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에 비해 월씬 더 자세히 프라임 에디팅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이 정보들을 이용해 더 발전된 유전자 교정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며 “이제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프라임 에디팅의 진입 장벽이 크게 해결될 것이기에 앞으로 유전자 치료제로써 활용하기 위한 연구들이 학계에서 더 많이 시도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