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보스턴에서의 교환 대학원생으로 생활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3개 꼽자면 그중 하나는 역시 영어가 아닐까 싶다. 사실 미국 본토에서 영어를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 필자는 나름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능이나 각종 공인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겪은 여러 경험을 통해,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하기를 제외한 영역에서 생긴 자신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연구실 생활만 놓고 보면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국인 포닥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어로 디스커션을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랩미팅 발표나 저널 클럽 역시 영어로 진행해야 하긴 했지만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렇게 비교적 평화롭게 연구실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학과 수업에서 각 연구실 대학원생들이 돌아가며 저널 클럽 발표를 하는데 우리 연구실 차례가 되었을 때 발표를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제안이었기 때문에 한 번쯤 거절을 고려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게다가 연구실에서 유일한 대학원생이었던 지라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겠다 싶었다. 다만 미국 대학원 수업의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발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래서 발표 전 주에 수업을 한 번 참관해 볼 수 있는지 교수님께 요청드렸고, 그 덕분에 다른 연구실 학생의 발표를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그날 발표를 했던 학생은 미국인이었고, 발표 자료의 구성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영어 발표의 흐름이 너무 좋고 자연스러웠다. 그 발표를 듣고 난 뒤, 다음 주에 발표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온갖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안일하게 발표를 하겠다고 한 건 아닐까?”, “혹시 발표를 망쳐서 교수님께 안 좋은 인상을 남기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더욱이, 영어로 발표할 때 어려운 점은 단순히 발표 자체뿐 만 아니라 질문을 받을 때도 나온다. 만약 질문하는 사람이 너무 빠르게 말하거나 억양이 독특하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답변을 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표 전 한 주 동안은 최대한 논문 내용을 빠르게 이해하고 발표 자료를 완성한 뒤, 발표 연습에 집중하고자 했다. 발표 자료 역시 교수님께 보여드리며 피드백을 받았다.
마침내 발표 당일이 되었고, 무척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연구실 포닥 선생님들도 모두 와서 발표를 들어주셨다. 발표를 하는 동안 교수님께서 뒤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 주셨는데, 그 모습이 돌이켜보면 참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발표를 마친 뒤 수업에 참석한 박사과정 학생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는 필자의 background와는 다른 immunology 관련 질문도 있었다. 부족하지만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을 하였고, 연구실에서 면역학을 전공하신 박사님께서 추가로 설명을 덧붙여 주시기도 하였다. 그렇게 발표가 모두 끝났고, 그 자리에 계셨던 교수님들 중 한 분이 농담조로 “You are hired”라고 말해주기도 했는데, 그 말이 기분이 좋게 느껴졌다. 발표가 끝난 뒤 연구실 포닥 선생님들께서도 잘했다고 격려해 주며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셨는데, 필자는 “정~~말 두 번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연수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인으로서 겪는 영어와 관련한 어려움에 관련해서는 교수님께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도 미국에 와서 영어가 한국어처럼 편해지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렸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당시 미국 학생의 발표를 보고 지나치게 걱정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모순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부담 속에서도 발표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경험에 대해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발표가 끝나고 건물 내에서 후련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보스턴의 풍경!
사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 살다 보면 language barrier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정말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점원이 내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든지, 업체에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어가 잘 나오지 않아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다 보니 미국에서 서러운 순간들도 몇몇 있었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아침을 먹으러 나가서 sausage croissant을 주문하고자 하였는데 이 메뉴의 이름을 2-3번 반복해서 말해도 점원이 못 알아들어 결국 친구가 대신 말해주기도 하여 주문하기도 하여 민망한 마음에 아침을 먹기도 하였다. 또한, 한 번은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가 bar 자리에 앉아서 먹게 되었는데, 점원이 친구와 나에게 다가와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선 우리의 영어가 서툰 걸 알고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양 옆 자리의 손님들에게만 가서 대화를 이어나간다던지 하는 조금은 서러운 상황들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들 덕분에 (?)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더 부단히 노력했다.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전화 영어를 신청하는 조금은 웃픈 상황이 있기도 하였다.

문제의 sausage croissant과 불편한 마음에 먹었던 스테이크 (그래도 맛은 있었다...)
번외로, 저널 클럽 발표를 했던 시점 즈음에는 핼러윈 시즌이었는데, 유난히 필자의 아파트로 걸어가는 길에 있던 단독 주택들이 집 꾸미기에 정말 진심이었다.. 그래서 이때에는 집까지 데려다주는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3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면서 집 장식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였는데 그중 1등은 아래 사진에 있는 집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나름 독특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집 가는 길에 보았던 수많은 할로윈 장식으로 장식되었던 한 집
이렇게 여러모로 일들을 겪으며 어느덧 연수 기간의 절반이 지나가고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8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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