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를 다녀온 후 연구실 생활과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먼저 연구실 생활에 많이 적응하면서 박사님들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실험을 배우고 결과를 내기도 했고, 내가 혼자 진행할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평일에는 연구실에서 바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이사였다. 두 달 동안 잠시 머물렀던 서블렛 아파트에서 나머지 열 달을 지내게 될 아파트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하게 된 곳은 Allston이라는 동네였는데,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근처에 한식당이 많아 한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곳의 한식당들은 마치 한국의 80~90년대에 있을 법한 외관을 하고 있었고, 보스턴 한복판에서 한국어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명동 1번지”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마치 한국 대학가 앞 술집처럼 항상 대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사 가는 동네가 멀지도 않고 짐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보스턴의 비싼 렌트비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동네에 위치한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도 혼자 살기는 어려웠고, 결국 룸메이트 한 명과 함께 살게 되었다.
Allston의 풍경 (나름 역세권이다.)
그렇게 연구실에서의 생활도 적응이 되고, 이사 간 동네에서도 적응이 서서히 다 되어갈 때쯤, 가끔 퇴근 후에나 주말이 되면 문득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 것 때문인지 마음이 굉장히 휑~~ 한 느낌이 들었다. 주말 또는 퇴근 후에 보스턴 구경 다니는 것도 혼자 다니다 보니 슬슬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보스턴에서 알게 된 분의 소개로 그 당시 MIT에 새로 포닥으로 온 J형을 알게 되었는데, 서로 보스턴에 온 시기도 비슷하고, 보스턴 자체에 친구도 없는 비슷한 상황(?)에 서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보스턴 생활의 재미는 J형을 만나기 전 후로 나뉜 것 같기도 했다). 혼자 지내던 보스턴에서 같이 놀러 다닐 수 있는 1명을 알게 된 점은 여러모로 보스턴 생활에 즐거움을 주었다.
J형은 MIT에서 화학 쪽 분야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왕 MIT에 다니는 포닥을 알게 된 김에 캠퍼스 투어를 시켜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고, 덕분에 MIT 캠퍼스 곳곳을 설명과 함께 둘러볼 수 있었다. MIT 캠퍼스를 구경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시설이나 건물도 물론 훌륭했지만, 무엇보다도 위치가 매우 좋다는 것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캠퍼스가 찰스강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 건물에서 조금만 나가면 찰스강의 메인 산책로로 바로 이어졌다. 러닝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이곳에서 연구를 하게 된다면 매일 러닝화를 챙겨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찰스강을 따라 달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MIT의 캠퍼스 풍경 (Chemical engineering 건물 내부에서 찍은 사진, MIT Dome 내부 및 외부에서 찍은 사진)
J형을 알게 된 이후 보스턴 생활이 더욱 즐거워졌는데,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J형을 통해 보스턴에서 포닥이나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MIT 한국인 포닥 모임에 게스트로 참석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보스턴의 한식당인 “곱창이야기”에 가서 곱창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MIT에서 보드게임 동아리 (?)를 운영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고, 이후 한 번 찾아가 함께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다.
곱창이야기에서 먹은 모둠 곱창 (가격이 굉장히 사악했지만 너무 감동적인 맛이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연말이 되면 PI가 직접 자신의 집으로 연구실 구성원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았고, 이 자리에는 게스트를 함께 초대할 수 있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J형이 “우리 랩 연말 파티 하는데 같이 놀러 갈래?”라고 흔쾌히 제안해 주어 함께 가게 되었다.
J형 연구실 PI의 집에 도착한 직후에는 여러 가지로 놀랐던 점이 있었다. 먼저 J형 연구실의 PI는 굉장히 젊은 교수님이었는데, 심지어 J형보다도 나이가 어렸다. 처음에는 연말 파티에 먼저 와 있는 연구실 대학원생이나 포닥 중 한 명인 줄 알았다가, 교수님이라는 말을 듣고 여러모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한 연구실 구성원들도 상당히 많았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연구실에는 한국인 박사과정생도 있어서 셋이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연말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J형 연구실 연말 파티에 준비되어 있었던 여러 가지 음식들.
또한 보스턴에서만 해볼 수 있는, 혼자서는 조금 하기 애매한 여러 가지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었던 점도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인 예가 찰스강에서 카약을 타는 것이었다. 찰스강은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보트를 타거나 카약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강가에는 카약을 빌릴 수 있는 시설도 있었는데, 매번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한 번 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곤 했다. 그러다가 J형과 함께 카약을 타보게 되었다. 찰스강에서 카약을 타는 경험은 매우 재미있었지만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찰스강 자체가 꽤 넓었고, 카약은 노를 직접 저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강 중반부까지는 열심히 노를 저어 나갔지만, 다시 돌아올 때는 팔에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평소 운동을 많이 하지 않는 J형은 두 시간가량 카약을 탄 다음 날 심한 근육통 때문에 연구를 하는 데도 꽤 고생했다는 후문이 있다.
찰스강에서 탔던 카약 위에서 찍은 사진.
여러모로 한국에서 연구할 때에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다. 보스턴에 도착하기 전에는 그저 연구만 열심히 하면 되지, 그 밖에 특별히 걱정하거나 어려울 일이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고 하나 없는 타지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시간이 날 때 함께 밥을 먹고 술 한 잔 하며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보스턴에서의 생활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 J형(지금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에게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ㅎㅎ.
7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