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날부터 시작된 학회는 필자가 이전에 참석했던 여러 학회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마도 미국에서 다양한 연구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모이는 자리이면서, 단순히 학술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미국 내 한인 연구자들 간의 네트워킹 역시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학회 세션을 돌이켜보면, 미국의 아카데미아와 인더스트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구자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나누는 자리들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아 분야에서는 미국 내 한국인 PI들을 대상으로 연구비 수주를 위한 grant proposal 작성 전략을 소개하는 세션이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한국의 여러 기관들이 부스를 운영하며 (그림 1), 미국에 남아 커리어를 이어가기보다 귀국 후 자리를 잡고자 하는 포닥들을 대상으로 기관 소개와 채용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림 1. 한국의 다양한 기관들이 학회에 설치한 여러 부스.
여느 학회와 마찬가지로 대학원생과 포닥을 위한 포스터 세션도 열렸다. 흥미로웠던 점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분석화학 관련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가도 코너를 돌면 물리학 분야의 포스터가 이어지는 등 연구 분야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는 점이다. 다행히 필자의 연구 분야와 비슷한 주제의 포스터도 하나 있어 직접 찾아가 발표자의 설명을 듣고 질문을 나눌 수 있었다. 또한, 각 분야마다 서로 다른 디자인의 포스터 구성 및 피겨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추가적으로, 학회 기간 중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그림 2)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며,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노벨상 수상자와 소그룹으로 만나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에게 노벨상 수상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연구와 관련된 질문들이 주로 이어졌다.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분위기가 조금 자유로워졌고, 비교적 가벼운 질문들도 등장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한 참가자가 “노벨상 수상을 거절하는 것을 고려해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던 순간이었다. 이에 Dr. John Mather는 크게 웃으면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연구할 때 힘들면 어떻게 극복하느냐 또는 연구적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편이냐 등의 연구자로서의 태도와 관련한 질문들도 오고 갔다.
그림 2. 노벨 물리학 수상자 Dr. John Mather의 강연.
또한 커리어 워크숍은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소중한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거나 포닥으로 연구 중인 분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온 필자에게는 그 만남들이 이후로도 큰 힘이 되었다. 지난 화에서 적었던 것처럼 학회가 끝난 뒤에도 인연을 이어 가기 위해 링크드인으로 서로 팔로우하며 꾸준히 연락을 이어나가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는 생각보다 오래 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어졌다. 특히 보스턴에는 아무래도 박사과정이나 포닥으로 연구 중인 한인 연구자들이 많기 때문에, 학회 이후 보스턴에 돌아가서 워크숍에서 알게 된 분의 하우스 파티에 초대받아 다시 만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또 하나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화도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포닥 연구실을 알아보던 시기였는데, 보스턴에 있던 시간 동안 알고 지내던 미국에 계신 분들께 조언을 구하던 중 문득 이 워크숍에서 만났던 미국 NIH 소속 박사님이 떠올랐다. 워크숍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카톡으로 연락을 드려보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정말 흔쾌히 답장을 주셨고, 당일에 바로 직접 줌 미팅까지 하게 되었다. 약 한 시간가량 포닥 연구실을 어떻게 알아보면 좋은지, 지원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 CV는 어떻게 정리하면 좋은지, 인터뷰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아주 현실적인 조언들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포닥 준비로 막막하던 시기에 참 감사한 경험이었다. 더불어, 당시 프로그램에 같이 참가했던 참가자 중 두 명은 각각 Penn state 및 USC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어, 현재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을 겪고 나니, 한 번의 만남이 언제 어떻게 다시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짧은 인연이라도 소중히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의 프로그램 기간이 어느덧 마무리되어 갔고, 저녁 만찬 및 단체 사진 촬영 등을 마지막으로 학회가 마무리되었다 (그림 3).
그림 3. 학회 저녁 식사 시간에 진행된 공연
번외로, 프로그램 기간 중 잠시 시간이 주어졌을 때 다른 참가자들과 멘토분들과 함께 근처 조지타운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바라본 조지타운 대학교의 풍경은 이전에 견학으로 방문했던 University of Maryland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조지타운 자체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기에 참 예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다시 워싱턴 DC를 방문하게 된다면 한 번 더 들러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림 4).
그림 4. 조지타운 및 조지타운 대학교의 풍경
그렇게 워싱턴 DC공항에 도착 후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림 5). 보스턴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지 2달도 채 안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와 같이 심신이 안정(?)되는 기분이 참 묘했다.
그림 5. 도착하기 직전 비행기에서 찍은 보스턴의 풍경.
보스턴에 도착한 당일에는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그 주말은 안타깝게도(?) 돌아오는 주에 랩 미팅 발표가 예정되어 있어, 곧바로 그룹 미팅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한편 그동안 다른 박사님들의 발표를 보며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발표를 시작하기 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연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진이나 짧은 이야기를 간단히 공유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이번에는 학회에서 찍은 사진과 간단한 소감을 2–3분 정도 나누어 보았다. 예상보다 다들 흥미롭게 들어주었고, 왠지 모르게 기특하게 봐주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워싱턴 DC에서의 특별했던 시간은 마무리되고, 다시 일상적인 연구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다.
6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