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점 1 - 행정일 등 잡무가 없고 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첫 포닥 인터뷰를 지원했을 때의 경험담을 담은 ‘
나의 미국 포닥 도전기’를 연재한 지도 벌써 3년 넘게 흘렀다. 나는 미국에서의 포닥 생활 3년이 흘렀고, 4년 차에 접어들게 되었다. 새로운 연재 주제를 고민하다가 지난 3년 간의 포닥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생각들과 겪었던 경험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미국에 처음 나와 연구실에 합류했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먼저 행정일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다. 한국에서는 대학원생, 특히 연구실에서 가장 막내가 행정 잡무를 처리하곤 했다. 연구실 내에서 실험에 필요한 여러 플라스틱 제품들과 세포들의 밥이 되는 배지(media)와 그 안에 들어가는 여러 영양분들이나 항생제 등을 비롯해서 화학 물품 등이 필요한 만큼 모두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영업 사원과 연락하여 실험에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는 일도 하고, 연구실 내에서 사용한 모든 돈을 매달 영수증 및 세부 내역과 함께 재정 관리하시는 분께 전달해드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선 주변에 타 연구실을 보면 따로 연구를 보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고용하는 연구실도 있었지만 내가 속해 있었던 연구실은 그러지 않아서 연구에 필요한 모든 잡무들을 학부생 인턴들에게 의존하곤 했다. 예를 들자면 실험에 필요한 버퍼들을 미리 만들어 두거나 소량씩만 필요한데 구매는 큰 용량으로 해야 해서 분주가 필요한 액체류의 화학 제품이나 전기영동에 필요한 젤을 만들고, 또 팁(tip)이라는 파이펫(pipet)에 꽂아 사용하는 부분을 다 쓰면 팁 통을 재사용하기 위해 다시 채워 놓거나, 팁 통과 같은 실험 물품들을 오토클래이브(autoclave, 고온과 고압을 가해 멸균하는 기계)를 돌려서 멸균하는 작업을 하는 것 말이다. 연구실에 학부생들이 2명 이상이 있을 때에는 그들이 돌아가면서 잘 준비해두곤 했지만 그 이하이거나 아예 없거나 또 그들이 시험 기간일 때에는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고, 연구실에서 누군가가 대체해야 하지만 자기 일 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내가 불편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직접 하곤 해야 했다. 심지어 폐기물 상자가 가득 차면 봉투를 묶고 상자를 테이프로 봉인하여 내놓는 작업까지 박사 말년 차인 내가 직접 할 때가 많았다.
이런 일들이 많아 내 연구 시간을 방해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연구 외에 잡무를 항상 신경 쓰고 있어야 해서 귀찮기도 하고 또 남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으니 혼자서만 다 하는 느낌에 그게 더 힘들고 속상하기도 했었다. 특히 졸업을 앞두고 학위 논문을 쓸 때에는 내 할 일 하기에도 너무 벅차고 힘든데, 이런 것까지 내가 다 해야 하니 솔직히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처음에 연구실에 들어오니 행정일을 담당하는 랩 매니저가 물품 주문을 모두 맡아서 해주고, 또 테크니션으로 일하는 친구들 세 명이서 돌아가면서 연구실에 필요한 여러 물품들이나 버퍼 등을 채워줘서 나는 준비된 상태에서 바로 연구를 시작하기만 하면 되었다. 또 그 친구들이 세포를 키우는 인큐베이터에 세균이 번식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청소도 날짜에 맞춰서 해주고, ‘파이펫’이라는 실험 도구의 점검도 1년에 한 번씩 업체를 불러 맡겨준다. 또 실험 후에 -80C에 보관해야 하는 샘플들이 있는데, 문을 자주 여닫다 보면 처음에는 성에가 생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터운 얼음 덩어리가 되어 문이 잘 닫히지 않는데, 이것도 제거해 준다. 또 세포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액체질소 통도 주기적으로 채워준다. 이런 일들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면 항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어야 해서 큰 스트레스가 되곤 한다.
한편 학교 차원에서 폐기물을 처리해 주는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건물 내에 모든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매일 아침마다 폐기물 통을 비워주고 새로운 봉투를 끼워두고 가준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물품 주문 후 세부 내역이 포함된 행정일 처리 역시 연구실에 소속되진 않지만 Department에 고용되어 있어서 두 개의 연구실 당 한 명이 배정되어 행정 일을 처리해 주는 분이 따로 계신다. 이 행정일 담당자분께서 교수님 뿐만 아니라 랩 멤버들의 학회 참가 후에 여러 비용들, 예를 들자면 항공, 호텔, 학회 등록비 등의 영수증을 제출하면 알아서 처리해 주신다.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업무가 한가해지는 건 아니다. 생물 전공 포닥의 삶은 바쁘다. 세포들도 관리해야 하고, 세포를 사용해서 여러 실험들도 해야 하고, 나는 쥐실험은 하지 않지만 쥐를 관리하고 실험하는 분들도 계시고, 논문도 써야 하고, 펀딩 확보를 위한 펠로우십도 지원해야 하고, 교수님과 협력하여 그랜트에 필요한 실험 데이터를 만들거나 제안서를 함께 쓰기도 한다. 또 안전 관련해서 혹은 연구실 관리와 관련한 여러 온라인 강의들도 들어야 하고, 여름에 인턴십으로 연구실에 지원해서 들어오는 고등학생들과 학부생들 혹은 여러 랩을 분기별로 돌아다니며 실험을 배우는 로테이션 대학원생들에게 멘토링도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할 일이 많다 보니 위에서 언급한 잡무들을 내가 직접 하는 것을 상상하면 정말 힘들 것 같다.
이렇게 연구에만 집중하기에도 바쁘다 보니, 기본적인 세포 관리나 연구실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간단한 실험 등은 실험을 보조해 주는 테크니션 친구들에게 맡기기도 한다. 나는 역분화줄기세포(iPSC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를 다루는데, 매일 media를 갈아주어야 해서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고, 세포가 민감하기도 해서 세포 관리나 분화 등은 직접 하지만 qPCR이나 plasmid midi/maxi prep 등의 실험 등은 맡기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다른 포닥의 경우엔 거의 실험 디자인 하고 세포만 관리하는 것 외에는 거의 모든 실험들을 테크니션 친구들에게 맡긴다. 수년 째 같은 실험을 하다 보면 지겹기도 하고, 여러 실험을 해야 할 경우 시간이 부족하기도 한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한국에서도 한 연구실에서 있었고, 미국에서도 한 연구실 만을 경험해 봐서 모든 연구실의 문화를 대변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재정이 넉넉한 연구실에서는 이미 이런 걱정 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보편적으로 한국에서는 연구실에 관련한 행정일을 대학원생들이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담에서 벗어나서 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를 미국에서 연구하는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