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으로 포닥을 나오기 전에 이미 미국에서 포닥을 하고 계신 박사님들과 K-BioX라는 플랫폼을 통해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코비드로 세상이 봉쇄되었을 당시여서 직접 뵌 것은 아니었고, 격주로 세미나가 열렸고 가끔씩 Zoom으로 선배 과학자분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정 관심사를 주제로 소그룹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었는데, 그때 미국에서 포닥으로 계시는 3분의 선배 과학자분들에게 질의응답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몇 년이 흘러서 모든 것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Funding’에 관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최근에 중국에서 많은 박사들이 미국으로 포닥을 나오는데, 중국 정부나 기관 등에서 펀딩을 받고 오기 때문에 미국 대학의 많은 랩의 PI 님들이 중국 포닥들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최근에 과학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고, 그 물량공세(?)를 이겨내기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펀딩에 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내가 PI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해외에서 온 포닥을 고용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어려운 점이 많은 큰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인데, 고국에서 자기 연봉을 들고 오는 포닥은 어느 정도 인정받아 검증이 된 상태이고, 또 포닥 한 명을 고용하는 데에는 연구비뿐 아니라 여러 위험과 부담이 따르기에, 자신의 연봉을 들고 오는 포닥이 선호되는 구조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온 포닥을 채용한다는 것은 연구 성과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그 사람의 체류와 커리어 전반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감당하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고국에서 이미 펀딩을 받아 온 포닥은 단순히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큰 신뢰와 안정성을 함께 가져오는 인력이 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펀딩을 ‘있으면 좋은 것’ 쯤이 아니라 연구자의 선택지와 기회를 실질적으로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로 처음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내가 미국으로 나올 때 나는 펀딩이 없으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실제로는 나오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고, 주변에 계신 다른 박사님들을 보아도 처음부터 펀딩을 가진 채로 오시는 분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는 PI님께서 자연스레 학교 내에 있는 펀딩 기회들 혹은 여러 기관에서 제공하는 펠로우십에 지원하도록 권유하셨다. 나 역시 교내외의 여러 기회들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학교 내의 세 개의 펠로우십, 그리고 외부 기관 두 곳에 지원했다. 하지만 첫 해에는 줄줄이 낙방했고, 생각보다 더 극심한 경쟁에 꽤나 낙심하게 되었다.
펠로우십은 기관에 따라서, 또 점수에 따라서 리뷰어의 코멘트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어느 부분이 강점이고, 반대로 어느 부분이 약점인지, 그리고 어느 부분을 추가했으면 좋겠는지 등 분야의 전문가들 세 명 정도가 익명으로 코멘트를 준다. 나는 리뷰어의 코멘트를 바탕으로 지원서를 수정하여 그다음 해에 제출했을 때 다행히도 펀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준비 과정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지원서를 제출할 때 필요한 서류들도 많고 연구 제안서가 가장 어려운데, 펠로우십마다 요구하는 페이지 수도 다르고, 선행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펀딩을 받게 될 경우 하게 될 연구에 대한 설명도 잘 해야 한다. 또 다음 해에 재지원일 경우에는 ‘Resubmission summary’라고 어느 부분을 개선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두 페이지에 걸쳐 설명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포닥 연차에 따라 다른 금액의 펀딩을 받게 되는데, 이를 받게 될 경우 연봉뿐만 아니라 연구비, 학회 등에 쓰일 기타 비용을 어떻게 할지 미리 설정해서 엑셀 파일과 추가로 글로 설명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PI님의 추천서도 필요하고, 거기엔 PI님이 이 포닥을 어떻게 트레이닝시킬 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참고로 PI님의 역량까지 평가 요소에 포함된다. 또 3분의 추천인들로부터 추천서도 받아야 하는데, PhD때의 멘토님, 현재와 과거의 콜라보레이터 분들로 구성하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펀딩 기회가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3년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짧은 기간 동안 혼자서만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가지지 못한 스킬이 있거나 역량을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해결한다고 쓰게 되는데, 그분들께 ‘Support letter’라는 것도 받아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길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노력이 많이 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반면 ‘Recommendation letter’나 ‘Support letter’를 받을 때, 각각의 추천인 분들, 혹은 콜라보레이터 분들께 메일을 보내서 왜 레터가 필요한 지 설명하고, 그리고 모두 바쁘신 분들이시니 미리 draft를 써서 보내 드려야 한다. 다행히도 미국은 추천서의 나라답게 이메일을 보내고 정중하게 요청드리면 모두 기꺼이 해 주신다. Draft를 읽어 보시고 수정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펀딩으로 인한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작년 초에 대대적인 연구비 삭감이 이루어지면서 NIH 같은 주요 과학 기관들에서 수 백 명 단위의 직원 감축, 채용 중단, 연봉 동결, 계약 해지 같은 조치가 이루어졌다. 대학들도 연구실 유지 비용과 지원 인력을 재배치해야 할 재정 압박을 겪었다. 이는 대학원생, 포닥, 그리고 직원 고용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미국 정부의 국제개발처 (USAI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는 2,0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해고하기로 결정해 중요한 연구 사업을 중단해야 했으며, 연구계에선 큰 우려가 쏟아지기도 했다.
내가 직접 본 사례로는 같은 연구실에 학부 졸업 이후 Research associate이라는 이름으로 4년 정도를 연구 보조 및 행정 일을 돕는 일을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자신의 길이 연구가 맞는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드디어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결정했었다. 10개 정도의 대학원을 지원했었고, 그중 몇 군 데는 인터뷰도 하고 최종 합격까지 갔고, 총 3개의 학교를 두고 캠퍼스도 방문해 보고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세 곳 모두 미국 내에서 좋은 학교로 알려진 학교들이었고, 그 친구는 캘리포니아 토박이여서 익숙한 캘리포니아 내에 있는 학교를 갈지 아니면 멀지만 더 좋은 학교를 갈지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민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학교 중 두 곳에서 펀딩 사정으로 인해 대학원생 지원이 어려워졌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고민은 의도치 않게 타의에 의한 결정으로 끝나게 되었다.
또한 학교 내 포닥분들 중에도 더 이상은 PI가 펀딩을 지원해 줄 수 없어서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신 분들도 계셨고, 재계약은 어렵게 되었다고 들은 분들도 계셨다. 앞으로 한창 더 미국에서 연구를 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많이 당황스러웠을 터이다. 한국 역시 연구비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여서 더욱 그랬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Faculty position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급격한 한파가 몰아닥쳤다. 학교들마다 새로운 교수를 뽑는다는 공고를 더 이상 올리지 않게 된 것이다. 포닥 시기를 마무리하고 커리어 전환의 시기를 맞이한 분들께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마치 겨울 왕국에서 엘사가 모든 것들을 다 얼려버린 아렌델 왕국 같은 모습이었다.
연구를 하는 것에 '돈'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연구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매하는 데에도 엄청난 돈이 들고,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기계들도 필요하고 연구에 필요한 인력들도 고용해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연구는 돈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작은 용량의 항체 하나를 구매하는 것에도 100 ul 기준 $300-500 정도가 들고, 세포를 배양하는 배지나 거기에 첨가되는 것 역시 비싸다. 그리고 기계들의 가격도 다양하지만 억대 기계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물론 좋은 연구자가 많아야 하지만 돈 많은 연구실에서 페이퍼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이러니는 아니다.
이 일련의 경험들을 겪으며, 연구자의 커리어는 개인의 노력이나 연구를 향한 열정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영역이라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다. 연구자의 커리어는 연구실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펀딩과 제도, 그리고 타이밍이라는 외부 조건들과 끊임없이 맞물려 움직인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포닥으로 미국에 와서 마주한 이 현실은, 앞으로의 선택들을 고민하는 데에 있어 잊히지 않을 기준점이 될 것 같고, 이 글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풍경에 대한 기록이다.
이로써 ‘해외에서 연구할 때의 장단점’ 다섯 번의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다섯 번의 글을 쓰면서 나 역시 지난 4년 간 많은 경험과 도전을 통해 성장을 이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의 경험담 공유를 통해 해외, 특히 미국의 연구 환경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미국에서 연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