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라는 끔찍한 시기를 인류는 함께 견뎌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mRNA 백신’이라는 과학적 성취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분자생물학 실험을 해본 연구자라면 RNA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다루기 어려운 분자인지를 잘 알기에, 처음에는 백신의 효과에 의구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체가 공개된 지 불과 66일 만에 임상 시험에 돌입하며, 기존 백신 개발 주기를 완전히 뒤흔드는 전환점을 만들었고, RNA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물론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했던 희생의 시간을 겪었다. 그 희생이 절대 흐려지지 않도록 세계는 다음 위기를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한 연구자의 끈질긴 도전이 어떻게 인류의 희망으로 이어졌는지, RNA의 여정을 따라가며 살펴보고자 한다.
[RNA의 부상과 전환점]
과학의 역사에도 언제나 조연과 주연, 그리고 수많은 엑스트라가 존재한다. 분자생물학에서는 한때 DNA가 생명의 청사진으로 칭송받으며 팬덤을 형성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RNA는 오랫동안 단순히 설계도를 구현하는 스탭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60여 년의 연구는 이 작은 분자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밝혀냈고, 이제 RNA 없이는 연구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1961년 브레너와 동료들이 메신저 RNA를 발견하면서 단백질 생성 과정의 해상도를 높였다. 이어 역전사 효소의 발견은 ‘센트럴 도그마’의 일방성을 뒤집었고, RNA 가공과 스플라이싱 같은 복잡한 조절 기작이 밝혀지면서 단순 메신저가 아니라 정교한 조절자임을 보여주었다. 1980-90년대 보고된 비암호화 RNA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RNA조차 쓸모없는 존재가 아닌, 세포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분자임을 보여주며 과학자들을 더욱 흥분하게 했다. 이어 1988년 파이어와 멜로의 RNA 간섭 발견, 2000년대에 본격화된 microRNA 연구까지 이어지며 RNA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분자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NA 치료제는 여전히 먼 꿈이었다. 세포는 본능적으로 외래 RNA 침입에 대응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장벽을 허문 것이 바로 카탈린 카리코와 드류 와이즈먼의 발견이었다. 2005년, 두 연구자는 RNA 염기를 변형함으로써 면역 경보를 피해 안정적인 단백질 발현을 확인했다. 이 돌파구 없이는 mRNA 백신 기술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 Elekes Andor, Budapest, 2021,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ational (CC BY-SA 4.0).[카탈린 카리코 이야기]
카탈린 카리코는 헝가리 세게드 대학에서 수학하며, 세포에 지시를 내리는 mRNA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는 RNA가 단순한 메신저를 넘어 새로운 단백질 합성을 통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직감했다. 그러나 1980년대 헝가리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 있었고, 연구 환경은 그녀의 상상력을 실현해줄 만큼 자유롭지 않았다. 연구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외화를 합법적으로 환전할 수 있는 한도에도 제한이 있어 해외로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실험실은 문을 닫았고, 카리코는 가족과 함께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어린 딸의 곰인형 속에 돈을 꿰매어 넣고 이주했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절박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여정도 녹록지 않았다. 템플대학교에서 연구를 시작했지만, RNA가 비주류라는 이유로 연구비 지원은 번번이 좌절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곳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RNA 연구를 포기하면 교수직은 보장하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받기도 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까. 설상가상으로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게 되었을뿐더러, 남편도 영주권 문제로 헝가리에 머물러야 했다. 삶은 더욱 버거워졌지만, 그녀는 연구원으로 남아 RNA 연구를 이어갔다. 무엇을 끝까지 고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그녀는 또 한 번의 고비를 버텨내고 있었다.
[복사기 앞에서의 만남, 드류 와이즈먼]
새로운 기회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1988년 어느 날, 펜실베이니아 대학 복사기 앞에서 논문을 출력하던 중 그녀는 우연히 드류 와이즈먼이라는 면역학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당시 NIH 산하 연구소인 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의 소장이던 앤드류 파우치 연구실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백신 전략을 모색하고 있었다. 카리코는 드류에게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HIV) 감염증을 치료하기 위한 mRNA를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을 했고, 자연스럽게 공동 연구를 진행하였다. 절박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RNA 치료제를 꿈꾸던 과학자와 백신을 찾던 의사가 만난 것이다.
그들은 HIV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 하나인 GAG의 mRNA를 제작해 마우스에 주입했고, 마우스는 강력한 면역반응을 나타냈다. 결과를 두고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와이즈먼은 RNA를 백신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보았지만, 카리코는 RNA를 치료제를 염두에 두었기에 이 같은 면역원성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지식의 결합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면역계가 RNA를 적으로 인식하는 원인을 추적했고, 톨 유사 수용체 7,8이 1-메틸슈도우리딘으로 변형된 RNA에 대해 현저히 낮은 면역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드디어 mRNA 백신 가능성을 여는 열쇠를 찾은 셈이었다. 이들의 연구는 초기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동료 연구자들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관련 논문들을 거절했고, 연구비는 끊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 카리코의 집념과 풍채 너머로 드러나는 와이즈먼의 우직함은 그들의 연구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게 했다. 그리고 15년 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그들의 기술은 마침내 빛을 발했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 재앙 앞에서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속히 백신을 개발해 집단면역을 세우는 것뿐이었다. 카리코와 와이즈먼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진행 중이던 모든 프로젝트를 멈추고 코로나 19 백신 개발에 전념했다. 중국 연구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체 서열을 공개한 지 불과 66일 만에 백신 후보가 전임상 시험에 진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카리코는 안전한 길 대신 불확실한 RNA 연구를 선택했고, 와이즈먼은 면역학적 통찰로 그 연구를 임상 무대에 올려놓았다. 한 연구자의 집념과 두 과학자의 협력은 단순한 과학적 성취를 넘어 인류의 운명을 바꾼 전환점이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을 발견했는가’ 못지않게, ‘누가, 어떠한 태도로 그 길을 걸어왔는가’이기도 하다.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의 인터뷰에는 겸손을 잃지 않으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두 과학자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들을 과학자이자 동시에 위대한 사상가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