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비하인드 스토리] 01. 시대의 잡음 속 옥수수 유전학, 그리고 바바라 매클린톡
7월 말, 제철 옥수수를 삶아 먹다 옥수수 알갱이에서 시작해 유전학으로, 그리고 노벨상으로 이어진 한 과학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농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땅과 곡식 같은 물질적 자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며 다음 세대의 삶을 유리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곧 질문은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땅보다 더 오래, 더 강하게 이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지는 생물학적 유산, 곧 형질의 유전이었다.
‘무엇을 물려주는가’라는 관심은 물질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면서, 1865년 수도원에서 완두콩을 관찰하던 멘델의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의 유전법칙은 1906년 윌리엄 베이트슨에 의해 ‘유전학’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다시금 주목을 받았고, 농작물 품종 개량의 토대가 되어 농업을 넘어 인류 사회 전체를 흔들었다. 품종 개량은 풍요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빈부격차 심화, 산업혁명과 맞물린 계급 분화를 불러왔다. 유산과 유전이라는 두 축은 과학적 발견과 사회적 욕망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갔다. 특히 ‘좋은 형질을 선택해 사회를 개량할 수 있다’라는 믿음은 우생학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었고, 그 속에서 여성은 더 직접적인 대상이 되었다. 잘 사는 집안의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통해 ‘좋은 유전자’를 남겨야 했고, 그렇지 못한 여성은 강제 불임이라는 폭력적 현실을 견뎌야 했다.
바로 이런 시대에, 옥수수 한 알 한 알을 들여다보며 유전자의 비밀을 평생 집요하게 탐구한 과학자가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종 평가절하되었으나, 결국 유전자가 스스로 움직인다는 ‘점핑 유전자’를 밝혀내며 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로 바바라 매클린톡이다. 이제, 그녀의 끈질긴 옥수수 연구 속에서 시대가 빚어낸 잡음과 화음을 함께 따라가 보려 한다.
어머니 사라 매클린톡, 막내 톰, 바바라, 미뇽, 마조리 (1910)
ⓒ Courtesy of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s, New York.
1902년 미국에서 태어난 바바라 매클린톡은 세 자매 중 막내였다. 부모는 셋째만큼은 아들이길 바라 ‘벤자민’이라 부르려 했지만 백일 무렵 장난감 하나만 쥐여주어도 울지 않고 혼자 잘 지내는 딸의 모습을 보고, 보다 중성적인 이름인 ‘바바라’로 바꾸었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집중력과 자립심이 뛰어나 어떤 일이든 스스로 판단하고 몰두하는 기질을 보였다. 타고난 집중력과 자율성은 곧 학문적 기질로 이어졌다. 1919년 코넬 농과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당시 생물학계가 모건의 초파리 연구로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전성기를 누리던 흐름 한가운데 있었다. 초파리와 함께 옥수수가 유전학 연구의 주요 재료로 쓰이던 때였는데, 바바라는 ‘옥수수의 유전적 특질을 담당하는 자리’를 규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 무렵, 연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연들이 찾아왔다. 막 초파리로 유전학 석사를 끝내고 코넬대학으로 온 마르쿠스 로우즈, 훗날 ‘유전자 하나의 효소 하나’라는 중요한 가설을 세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조지 비들. 두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옥수수 연구를 이어가던 중, 연례행사에서 코넬을 찾은 모건이 바바라의 연구를 접했다. 그는 수상할 정도로 그녀에게 논문 출간을 재촉했다. 미완성이라 생각해 거듭 사양했지만 결국 발표에 나섰고,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은 초파리로 비슷한 연구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모건은 옥수수에서 먼저 그 사실을 밝혀낸 바바라의 노력을 존중해 기회를 주었다. 1931년, 바바라는 연구를 확장하기 위해 과학의 본고장 독일로 향했지만, 나치의 부상으로 귀국했고, 미국은 대공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생계와 연구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동료들의 도움으로 미주리 대학에서 자리를 얻었으나, 갈등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격은 제도와 마찰을 빚었고, 미국 유전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될 만큼 명성이 있었음에도 학교의 태도는 냉담했다. 외부에서 여러 차례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지만, 학교 측은 이를 묵살하기 일쑤였다. 이것이 성차별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동시대의 다른 여성 과학자들은 제도 안에서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통상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 그녀의 기질이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옥수수 연구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마르쿠스 로우즈와의 인연으로 콜드 스프링 하버 유전학 연구소 책임자가 되었고, 1946년 여름, 그는 “옥수수 유전자가 분절되며 반점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는 확실한 결론을 발표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외면이었다. 그녀는 냉담한 반응에 깊은 충격을 받고 스스로를 가두듯 연구소에 머물렀다. 동료 과학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벽을 쌓아 올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바바라 매클린톡의 주장은 당시 정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유전자는 염색체의 고정된 위치에 존재하며 일정한 방식으로 발현된다는 믿음이 지배하던 시대에, 유전자가 스스로 움직이며 발현을 조절한다는 생각은 급진적이었다. 과학은 새로운 주장이 클수록 더 거센 저항을 불러오는 짓궂은 면이 있다. 그녀에게는 집념은 있었지만, 동료들을 설득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간극이 거의 없던 그녀는, 남들이 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오히려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이 미생물 연구자들이 주류로 떠올랐고, 분자생물학이 학계의 중심을 차지했다. 특히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되면서 옥수수는 시대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과학은 짓궂은 만큼 위대하다. 1976년, 박테리아에서 점핑 유전자가 발견되자 “더 복잡한 생물에서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쏟아졌고, 잊혔던 바바라의 연구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꼬박 30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3년, 그녀는 여성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오래도록 외면받던 옥수수 알갱이 실험이 인류가 유전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꿔 놓았음을 세상이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한 인터뷰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다.
“내가 왜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옥수수에 접근했는지 과학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렇더라도 과학이 되려면 남들이 납득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야 하지요. 하지만, 내가 왜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옥수수에 접근했는지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고독하고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연구 인생이었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료들은 그녀의 순수한 호기심과 직관, 강한 몰입에 매료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녀의 길은 시대가 만들어낸 수많은 잡음 속에서 끝내 화음을 이끌어낸 여정이었다.
코넬대학교 옥수수 세포유전학도들. 왼쪽부터 찰스 번햄, 마르쿠스 로우즈, 롤린스 에머슨, 바바라 매클린톡,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조지 비들 (1927)
ⓒ Courtesy of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s, New York.
『생명의 느낌』에서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요새 과학은 온통 시장판이고 투기장이에요. 누가 무슨 상을 받았고, 누가 무슨 특허를 냈고, 얼마짜리 프로젝트를 따냈는지… 모두가 서로에게 소외된 채 말이에요. 그런데도 내가 아직 과학자일 수 있는지, 아니면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지 모르겠어요.”
자본과 성과를 무시할 수 없는 오늘의 과학 현실 속에서, 매클린톡의 질문은 여전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과학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우리는 어떤 리듬과 태도로 과학을 마주해야 하는가.
[참고 문헌]
1. 웃음이 닮았다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이야기' - 칼 짐머 저자, 이민아 번역
2. 생명의 느낌 - 이블린 폭스 켈러 (-> 현재 절판됨. 교보문고 e-book으로 가능)
[사진 출처] : Courtesy of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s, New York.
링크 : https://www.cshl.edu/barbara-mcclintock-free-to-discover/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