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원을 졸업한다면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 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현재의 연구 주제도 항체 신약 개발을 선택했다. 지금의 연구가 제약회사의 업무와 연관되어 있으니, 단순히 학위 과정만을 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의 제약회사와 공동 연구를 추진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교수님도 바이오 벤처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에 주변의 인맥을 통해서라도 소개받을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다. 교수님과 연구실 내 다른 연구 그룹은 기업과의 공동 연구를 수행한 적이 몇 번 있으니 터무니없는 제안은 아닐 것이다. 아쉽게도, 외부에는 밝힐 수 없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는 적을 수 없다.
우선, 내 선배가 남기고 간 anti-mouse XX monoclonal antibody에 관한 좋은 데이터가 있으니, anti-human monoclonal antibody도 발굴해서 기초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면 제약 회사에 공동 연구를 제안해 볼만하지 않을까 해서 교수님과 상의했다.
교수님과 몇 번의 논의를 통해서 약물 표적의 기본 정보, 후보 질환 설정, 시장성, 경쟁 강도, assay feasibility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개발 후보 항체의 수용체 결합 특이성, 결합 정도, 세포 내 신호 활성화 정도를 평가했다. 또한, 필요한 연구비, 타임라인, 연구 윤리 기준 충족, 각 단계의 통과 기준 등도 계획을 세워서 제안해야 했다. 연구실을 졸업한 선배들이 일본의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연락을 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상 모든 연락은 교수님이 해 주셨다)
[처음 느낀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
기업 측에서 몇 달에 걸친 검토 후에 답변이 돌아왔다. 매번 느끼지만, 일본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그들의 의견 해석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고 간접적이며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둘러 말한다. 또한, “조금 더 검토해 보겠습니다” 등의 표현은 사실상 거절이라는 것도 문맥에서 눈치껏 알아차려야 한다. 즉, 일본의 문화를 모르면 문맥에 따른 해석이 다소 어렵다. 난 아직도 회의/메일의 결론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 참으로 애매한 표현들이 많다.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듯하면서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려고 ‘그럴 수 있다, 아닐 수 있다’ 정도의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들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수용체 발현 특이성은 있기 때문에 질환 특이적 항체 개발 가능성은 있다. 따라서, 기존 저분자 약물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제시한 타깃 질환의 시장성이 없지 않으나 크지 않고, 질환의 중증도나 약물 개발의 긴급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개발 순위에서 밀릴 것 같다. 전문의의 의견에서 본다면 “여전히 임상적 니즈는 존재한다”라고 하나, 이미 기존의 약물이 충분히 좋은 수준이다. 또한, 제시한 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항체 주사 제형보다는 다른 형태의 제형이 좋아 보인다.
타깃 질환의 변경을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떤가? 등의 부정적 답변이 도착했다. 그리곤 끝에서야, 실제 환자 조직에서 발현량과 특이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1.x억 원/2년 정도의 연구비 투자와 함께 단기 공동 연구가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단, 후보 약물 발굴 단계와 세포주에서의 검증, 전임상 연구까지만 선행적으로 수행하고 이때의 결과가 괜찮으면 추가 연구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금액이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손꼽히는 제약회사와 산학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기분 좋았다. 금액은 차치하고 나의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개발 가능성이나 사업성이 좋진 않겠지만 어쩌면 교수님의 부탁도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기 힘든 것도 있지 않았을까. 일본 기업은 종종 교수와의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소액 투자 개념으로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즉, 운이 좋았던 것이다.
산학 공동 연구 계약을 위해서는 중개자 및 보증자로서 학교가 필요하다. 이제 학교 측도 설득해야 하고 그들도 검토하기 시작한다. 학교의 신뢰도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연구 부정의 우려는 없는지, 연구 윤리에 어긋나진 않는지, 연구비 사용 계획은 적절한지, 계약서 내용은 타당한지 등을 검토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1년이 걸린다고 한다. 나의 졸업이 2년 남은 시점에서 학교 측의 검토만 1년이 넘게 걸린다면 공동 연구는 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가 받는 연구비 일부분은 학교가 가져간다고 한다 (아직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임상 샘플을 받거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전문의 선생님도 포함시켜야 했고 그분에게도 일정분의 연구비가 돌아가야 했다. 결국, 받을 수 있는 연구비는 x천만 원/2년 수준으로 훨씬 줄어들었다.
일본의 느린 행정이 대학의 연구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느낌이다. 꼼꼼하게 검토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은 좋지만 나는 많이 답답하다.
졸업 전까지 타임라인을 맞추기 위해서 일단은 정식 계약 전이라도 공동 연구를 착수하기로 했다. 소정의 금액만 선지급하고 킥오프 미팅을 가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분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매월 진행 상황을 공동 회의에서 공유해야 한다. 공동 회의를 위한 내부 회의도 계속 이어지고, 내가 강하게 의견을 주장하거나 요구하지 않으면 뭔가 흐지부지 결론을 짓는 회의가 많다. 현재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다음 단계는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등을 알고 싶은데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으니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다. 좋으면 좋다, 안 좋으면 안 좋다 만이라도 표현해 주면 좋겠다.
또 다른 벽은 언어에 있었다. 연구실 내부 회의는 언제나 영어로 진행되지만, 공동 회의는 일본어로 해야 했다. 아직 비즈니스 레벨까지의 회화는 어려운데, 그래도 사전에 최대한 준비해서 발표하려고 노력했고,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질문을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어서 대답하지 못했던 땀나는 순간도 몇 번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상황을 미리 알고 있는 교수님이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셔서 잘 넘어가긴 했다.
공동 연구라는 이름 때문인지 부담감과 책임감이 크지만, 일본 비지니스 세계를 취업 전에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장단점을 느껴보고 한국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것도 학생에게 있어서 행운이다. 항상 잘 진행될 수는 없지만, 목표의 일정 부분이라도 졸업 전에 달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맺음]
*썸네일에 사용된 이미지는 Google Gemini의 Nano banana로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