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까지 우리는 연구진실성을 헤치는 대표적인 연구부정행위인 위조, 변조, 표절을 다루면서, 이러한 부정행위가 연구의 신뢰를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연구 현장에서 이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논문에 누구의 이름을 올릴 것인가, 즉 저자(authorship) 문제입니다. 저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여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구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연구자가 누구를 저자로 인정할지, 그리고 그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CMJE)는 저자가 되기 위한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 연구 설계, 데이터 분석, 해석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으며; 그리고
- 원고를 작성했거나, 중요한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며; 그리고
- 최종 원고를 승인했으며; 그리고
- 연구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며, 연구의 어떤 부분에서든 정확성이나 진실성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조사하고 해결할 것에 동의할 것.
여기서 모든 항목이 “그리고”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즉, 네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만 저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데이터 정리를 도왔으니까”, “분석 방법을 알려줬으니까”라는 이유만으로는 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논문의 저자는 반드시 논문에 충분한 기여를 해야 하며, 연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AI는 그럼 저자가 될 수 있을까?
ChatGPT 같은 AI 도구를 논문 작성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며, 이를 저자로 인정해야 할까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AI는 연구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기에 저자가 될 수 없습니다 (2). ICMJE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기준 중 처음 두 가지, 연구 설계, 데이터 분석, 해석에 대한 기여와 원고 작성 및 검토에는 AI 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최종 원고를 승인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연구 전반에 대해서 법적, 윤리적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AI는 저자가 될 수 없습니다.
흔히 발생하는 저자 문제들과 사례
실제로 저자 문제는 매우 흔하게 나타납니다.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연구 윤리 기관에 접수된 문의를 보면, 저자 관련 분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 연구윤리 자문기구(UKRIO)의 자료에서도 2023년 전체 문의의 23%가 저자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3). 이에 해당하는 저자 문제는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선물, 명예 저자(Gift, Honorary)
실제 기여가 거의 없음에도 저자가 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학계에서 영향력이 큰 교수님이 연구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저자로 포함되거나, 연구실에서 서로의 이름을 논문에 올려주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실제로 핵심적으로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에도 저자에서 이름이 빠지는 경우입니다. 학부 인턴 학생이 실험실에서 1년 동안 핵심 실험을 수행했고, 논문을 작성했음에도 최종 저자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연구 참여가 거의 없음에도 개인 혹은 기관이 돈을 주고 저자 자리를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연구 책임이 불분명해지고, 추후 연구에 대한 책임을 지는 부분이 생기는 경우 문제가 더 크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자 문제에 대한 국가별 차이
저자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주제이지만, 국가별로 문제를 다루는 방시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라 부당한 저자 표시가 연구 부정행위로 규정됩니다 (4).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에게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것, 실제 기여를 했음에도 저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 지도학생 논문을 지도교수 단독 명의로 발표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징계나 연구비 환수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유럽의 연구진실성 규범(European Code of Conduct for Research Integrity)에서도 저자 표기와 연구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5). 저자 표기는 실질적으로 연구에 기여한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하며, 부당한 저자 요구나 부여는 연구부정행위로 간주됩니다.
- 미국에서는 저자 문제를 연구부정행위로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는 위조, 변조, 표절만을 연구 부정행위로 공식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6). 즉, 이런 저자문제를 연구진실성 및 연구윤리성에 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법적 차원의 징계는 적용되지 않고, 기관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7).
이처럼 국가별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국제 공동 연구를 수행할 때 저자 기준과 책임 문제를 분명히 합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최근 수십 년간 학술논문을 보면 저자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의학분야 논문은 평균 3~4명의 저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10명을 넘는 경우가 상당히 흔합니다. 특히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연구하는 유전체 연구 논문 혹은 다기관 임상시험 관련 논문은 백 명이 넘는 저자가 참가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많아지는 것은 협업연구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긍정적 신호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 저자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더 많은 갈등의 기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연구 초기에 저자 선정 기준과 기여도를 명확히 합의하고 문서화하는 것이, 갈등을 예방하고 연구 신뢰성을 지키는 핵심입니다.
CRediT taxonomy과 대응방안
이런 저자 문제를 줄이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CRediT taxanomy입니다 (8). 이는 저자의 기여를 14가지 항목으로 세분화해 논문에 명시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대표적인 역할로는 아이디어 설정, 방법 설계, 실험 및 자료 수집, 원고 작성, 연구비 확보 등이 있습니다. 이 방식은 단순히 저자 순서만으로 기여도를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저자가 무슨 일을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저자 분쟁이 발생할 경우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UKRIO에서는 저자 분쟁이 접수되면 ICMJE 기준과 더불어 공식 기여표(author contribution statement) 작성을 권고하여 문제를 해결합니다 (9). 자세한 항목이나 정보는 CRediT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합니다 (https://credit.niso.org/).
저자 표기는 단순히 이름을 올리는 일이 아닙니다. 저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연구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연구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현실에서는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즉, 처음부터 연구자들 사이에서 저자 기준을 합의하고 기여도에 대해서 문서화하는 것이 저자 이슈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연구 이해 상충(Conflict of Interest)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Reference
- 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ICMJE). Recommendations for the Conduct, Reporting, Editing, and Publication of Scholarly Work in Medical Journals. Updated 2025.
- Siegerink, Bob et al. 2023, ChatGPT as an author of academic papers is wrong and highlights the concepts of accountability and contributorship. Nurse education in practice
- UK Research Integrity Office (UKRIO). Discussing Authorship Disputes. 2023. https://ukrio.org/research-integrity/our-current-activities/discussing-authorship-disputes/?utm_source=chatgpt.com
- 교육부. 2023.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 (교육부 훈령 제263호).
- ALLEA (All European Academies). "The European Code of Conduct for Research Integrity". The European Code of Conduct for Research Integrity - ALLEA
- NIH Office of Intramural Research. NIH IRP Research Misconduct. 2023.
- NIH Office of Intramural Research. NIH IRP Authorship Conflict Resolution Process. 2023.
- Brand, Amy et al. 2015, Beyond authorship: Attribution, contribution, collaboration, and credit.
- UK Research Integrity Office (UKRIO). Authorship and Publication Ethics. 2020.
- 10. 본문은 생성형 AI를 아이디어 정리와 문장 표현 개선 등 작성 과정 전반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했습니다. 다만 최종 원고는 직접 검토 및 수정 과정을 거쳐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