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후배를 맞이할 때] 실험이 잘 안 될 때, 진짜 필요한 말
실험실은 실패가 일상이 되는 공간이다.
PCR이 뜨지 않고, 밴드는 흐릿하게 번지고, 농도 측정값이 예상과 다르게 튀는 날은 생각보다 자주 온다. 그럴 때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다 그런 거야.”
처음엔 나도 그 말이 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대화를 멈추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실패가 왜 일어났는지,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가 빠진 채 그저 “원래 그런 일”이라는 결론만 남기 때문이다. 실험하는 사람에게 실패가 두려운 이유는 결과가 틀어져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배운 방식
돌아가 보면, 나는 실험을 처음 배울 때 실패에 비교적 둔감한 편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실험실에 들어왔을 때, 마음속에 가장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문장은 이거였다.
안 되는 건 없다. 되게 해야 한다.
그건 자신감이라기보다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다. 배우는 입장에서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못 배울 것 같았다. 그래서 선배가 많이 시켜도 억울해하거나 화내기보다 “언젠가 다 내 것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려 했다. 실제로 학부와 석사 초반에 나는 밤 10시, 11시까지 연구실에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손은 느리고, 해야 할 것은 많았고, 실험 설계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버티면 결국 남는 게 있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선배가 시키는 실험량이 많아도 속으론 “왜 이렇게 많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거의 불평하지 않았다.
시간은 들지만, 해보면 남는다 라는 기준으로 나를 움직였다. 이때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이 있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그 당시 나는 그 말이 나를 가볍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부담을 덜어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말이 갖고 있던 문제도 있었다. 온전히 실패는 내 책임이었다.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는 과정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반복만 남았다는 것이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만, 왜 실패했는지 모른 채 반복하는 건 결국 더 늦게 귀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끔 귀여운 이름 보고 힘낼 때도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배웠다는 이유로, 후배들도 당연히 같은 방식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점이었다. 나는 실험을 많이 맡겨도 후배가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배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돌고 있다는 걸 들었다.
“저 사람은 일 진짜 많이 시킴.”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실제로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더 당황스러운 건, 나에게 과거 많은 실험을 맡겼던 그 선배조차 후배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너, 실험 다 떠넘기는 사람이라며?”
그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멍해졌다. 당연히 나는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배웠을 때보다 양이 적고, 같이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선배가 나한테 시킨 것보다 적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였다. 나에게 그 방식을 가르친 사람이, 그 방식으로 실행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나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후배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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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재에서는, 대학원생이 선배로서 후배를 맞이할 때 겪는 복잡한 감정과 상황들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처음으로 책임을 지게 된 순간의 당황스러움, 후배에게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오묘한 감정, 그리고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한 끝없는 시행착오까지—연구실이라는 작고 특별한 사회 안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다룰 것입니다. 진학을 앞둔 인턴 후배부터, 친목질만 하는 후배, 너무 적극적인 후배까지. 그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하고, 실망하고 지쳐가면서도 다시 다정해지려는 대학원생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대비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웃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비 대학원생, 대학원 신입생,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연구실 속 관계에 너무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