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오늘은 DTU에서 제가 가장 애정하는 공간인 이노베이션과 스타트업 육성 공간 Skylab에 대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에 대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스카이랩은 DTU 캠퍼스 내에 단독 빌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 여러 가지 랩들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바이오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기계, 전자, 식품 등 다양한 분야의 랩이 작은 규모로 한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공간 안에서 실제로 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실험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공간에는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는 사무실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학교 재학생, 졸업생들이 주로 학교 재학 중 또는 졸업 후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학교에서 펀딩을 도와주기도 하고 사무실 공간까지 (제가 알기로는)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프로젝트들이 넘치는 공간이죠.
저는 상대적으로 지루했던 바이오테크 전공 수업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 스카이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저는 창의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안 그래도 DTU 대학원이 시작하기 전 주에는 인트로 위크라고 해서 버디 그룹끼리 학교 투어도 하고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데, 그때 스카이랩 설명 시간에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디어가 거기서 1등을 해서 스카이랩 내부에 있는 캔틴(학생 식당 겸 카페)에서 비건 식사 바우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날을 계기로 학기 내내 적어도 총 3~4번의 이벤트에 참여한 것 같아요. 스카이랩에서 푸드 이노베이션 수업을 듣기도 했고요. 그중에서 오늘은 제가 또 다른 우승을 차지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고 또 진행됐는지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오픈 이노베이션에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일 줄은 몰랐는데, 무려 덴마크 공대와 코펜하겐 대학교 그리고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까지 총 3개의 학교가 연합하여 참여하는 아주 큰 프로젝트였답니다. 그래서 금·토·일 동안 코펜하겐 대학교 도서관과 DTU의 스카이랩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마지막 날은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에서 발표를 하고 위너를 선정하는 폐회식이 있었습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용어가 낯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회사에 재직할 당시에도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익숙했는데요. 말 그대로 어떤 주제에 대해 다 터놓고 어떤 의견이든 주고받으면서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에요. DTU에서는 보통 한 주제에 대해 4일 동안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첫째 날은 배정된 팀원들과 친해지는 시간 +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날이에요.
저는 덴마크의 어느 홍수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물 범람, 물 고임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또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낮은 교육 수준과 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고안해 내는 것을 과제로 전달받았어요. 우선 이렇게 고립되어 사회적 기능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게토라고 부르는데요, 이러한 게토 지역에 대한 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이들을 어떻게 하면 사회적으로 잘 어울릴 수 있게 할까 하는 게 핵심 주제였습니다. 저는 코펜하겐 대학교 환경 관련 학과에서 온 독일, 스페인, 하프 브라질 하프 프랑스인 3명의 친구들과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에서 온 스위스 친구와 한 팀이 되었어요. DTU에서 온 사람은 저밖에 없어서 공학적인 문제는 다들 저에게 의지를 할까 봐 사실 좀 걱정이 됐었는데, 유럽 친구들은 정말 다 똑똑한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지식을 찾아보고 또 이미 알고 있는 것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누구 하나 희생하지 않고 골고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 구성이 너무 좋고 감사했었습니다. 첫째 날은 그렇게 개회식 겸 우리 팀의 주제를 전달받으면서 이렇게 멋진,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나 나올 법한 근사한 도서관에서 토론도 하고 밥도 먹고 강연도 듣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저희가 따로 돈을 받거나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삼시 세끼를 다 제공합니다. 특히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첫날 저녁 메뉴로 김치 포케가 나와서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전 세계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참여할 이유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부터 스카이랩에 모여서 아침밥을 먹으면서 네트워킹을 시작합니다. 덴마크는 모든 게 네트워킹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사람들과의 친분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요. 스튜던트 잡이나 정규직들도 다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서 구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아침 식사만큼은 다른 팀의 사람들과 함께 앉아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다른 팀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나와는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은 현재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나누면서 뜻밖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얻기도 하고 일을 얻기도 하니까요. 뭐든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면 하나씩 얻는 것들이 생깁니다.
저는 이때 한참 다른 전공으로의 전과를 고민할 시기였어요. 바이오테크 전공이 너무 지루하고 제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다 보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날 아침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는 바이오테크 전공인데 창의적인 활동을 좋아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 프로젝트를 참여하다 보니 너무 재밌어서 엔터프레뉴어십 테크 전공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마침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인도네시아 친구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전과를 하려면 어떤 프로세스가 필요한지 등등 의견을 나누게 되고, 하다 보니 또 그 전공인 친구도 나타나더라고요. 그렇게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먼저 어필하면 그걸 도와줄 사람들이 자꾸만 나타나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널리 널리 퍼트려보세요!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정이 이어질 정도로 정말 고단한 하루였습니다. 주말을 통째로 프로젝트에 쏟고 다음 날 월요일에 학교 수업 1교시에 일정이 있어서 정말 피곤했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너무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뭐든지 재밌어야 계속할 동기가 생기는데 이 프로젝트가 저에겐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해 주고 또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퍼실리테이터 분들이 많이 있었어서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다른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도 동일한 형태였는데 하루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는 데 하루를 통째로 쏟고, 그다음 날은 정의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에 대해서만 고안해 냅니다. 따라서 문제를 정의하는 날에는 솔루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게 포인트였고, 다음 날에는 해결책에만 집중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에서 제가 가장 많이 훈련받은 기술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조는 홍수 지역의 물을 캐치먼트를 사용해 분산시키고 농장을 만들어 지역 농산물을 재배한 후 파머스 마켓을 열어 지역 주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판매까지 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것 또한 저의 아이디어였는데요. 한국의 맥도날드에서 창녕산 햇마늘을 사용해 갈릭버거를 출시하면서 창녕 마을 농가에 도움을 주는 로컬 마케팅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팀원들뿐만 아니라 심사위원과 마을 건축가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고, 저희는 여기에 멘토링 제도까지 결합해 지역에 있는 고위직과 좀 더 교육 수준이 높고 고용된 사람들과 게토를 연결시켜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상생을 돕는 것까지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저희의 솔루션은 아마 코펜하겐 대학교와 비즈니스 스쿨 친구들의 백그라운드가 없었다면 이렇게 훌륭한 시너지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 친구도 있어서 우리 팀 로고도 만들고 파워포인트도 정말 전문가적으로 그래픽 작업을 훌륭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팀원들에게 배운 것들이 정말 많아서 결과와 상관없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나긴 이틀간의 여정을 마치고 다음 주에 있을 발표 자료까지 마무리 지은 뒤 저희는 피자 파티로 주말을 마무리했고, 목요일에 있을 피칭(발표)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한국과는 다르게 집으로 일을 가져가는 것 없이 이틀 만에 발표 자료까지 만드는 과정이 정말 타이트하고 힘들었지만 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덴마크는 실제로 정말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대망의 목요일이 되어 피칭 순서가 정해졌고 우리 팀은 네 번째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같은 주제로 다른 팀들은 과연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지 정말 궁금했는데, 다들 너무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정말 감탄하면서 피칭을 들었습니다. 특히나 피칭하는 스킬도 너무 대단해서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로 발표를 하는지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우리 팀은 3명이서 발표를 분담해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저는 발표에 따로 참여하지는 않았는데요. Q&A 세션에라도 한마디 해볼걸 하고 너무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유럽 친구들의 자신감 넘치는 피칭을 보고 기가 죽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날 저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았지만 저희 팀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도 벌벌 떨었답니다. (그 후로는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제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다른 팀들이 너무 잘했고 진심으로 박수를 쳐줬기 때문에 우리 팀 모두 “다 수고했다. 이제 발표 끝났으니 즐기자.” 하던 찰나, 우리 팀의 솔루션이 위너로 채택됐다는 발표를 들었습니다. 우리 팀은 아무도 기대를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벌벌 떨며 앞으로 나갔고,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마음껏 소리치고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는데 이렇게 대상까지 수여하게 되어서 이날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루가 되었습니다. 이후 건축가 분은 우리 팀을 사무실로 초대하셔서 런치를 함께 하기도 했고, 그날 와주셨던 수많은 회사에서 저희의 링크드인을 알아가시는 등 많은 네트워킹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학과 공부 이외에도 찾아보면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다양하게 있으니 저처럼 학과 생활이 지루하셨던 분들, 그리고 창의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이런 프로젝트에 꼭 참여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럼 이상 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