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연구실에서 공동 연구자 한 명이 논문 집필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연구실의 책임 연구자인 F교수는 기존에 연구실 내에서 해보지 않았던 방법론으로 성과를 내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는 새로운 방법론을 지도해 줄 사람을 찾던 중 연구자 G에게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를 제안했다. G는 정기적으로 F의 연구실을 방문해 F의 학생들이 연구를 기획・진행하는 과정을 지도했다. 논문을 쓸 때 꼭 참고해야 할 문헌을 함께 리뷰하고 진척 상황도 함께 검토했다. F는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연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부정기적으로 확인할 뿐이었다. 그 프로젝트의 수퍼바이저는 사실상 G였다.
연구는 진행됐고 분석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F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중대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학생들을 불러 모았고, 새삼스럽게 authorship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F는 자신이 지도교수이니 교신 저자를 맡겠다고 말한 뒤, 조심스럽게 G에 관해 물었다.
“G 선생이 이 연구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니?”
학생 몇몇이 이 연구는 G가 없었다면 기획도 진행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연히 아주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신 저자에 적합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G’라는 말은 누르고 삼켰다. F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답이 없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G가 연구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줬을 뿐이고 좀 빠르게 배웠다 뿐이지 사실 너희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니니? 그걸 가지고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그 말을 듣는 순간 학생들은 F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둘로 갈라졌다. 몇몇은 연구가 큰 실패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G의 덕분이며,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해도 G가 없었다면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몇몇은 F가 듣고 싶은 답을 했다.
“G가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수행한 건 우리이기 때문에 그분의 기여를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런 말이 나왔다. “인원이 한 명이라도 늘면 파이 하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눠 가지는 꼴이 되니, G가 공동 저자가 된다면 여기 있는 우리의 기여가 상대적으로 작아져 보일 거예요.”
F는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F는 학생들에게 다음에 다시 상의하자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이후 F가 저자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일은 없었으며, G의 이름은 논문의 어디에도 적히지 못했다. F는 예고대로 교신 저자에 이름을 올렸지만 투고 과정에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해당 연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교신 저자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학생들의 노력으로 논문은 출판되었다. 연구실 바깥의 세상은 F의 무능은 물론 G의 노고도 알지 못했다. 교수의 주도로 부당하게 저자가 제거되었다는 사실도.
그때 이후로 G가 F의 연구실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G를 안쓰럽게 여긴 어떤 이는 내심 G가 이 일을 문제 삼아 주기를, F교수와 그에게 동조한 학생들이 낯부끄러운 경험을 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한테만 안 좋아
사법 재판에서 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무 잘못도 없었음’을 보장해 주지 않듯이, 어떤 일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연구 윤리 위반 행위의 피해자들이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덮어두고 살아간다. 어느 연구자는 후배가 자신의 학위 연구를 표절해 논문을 출판하고 학위도 취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결국 그 일을 대학이나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한 대학원생은 2년간 모아 온 데이터를 선배에게 빼앗겼고, 지도교수의 방치 속에 자신의 것을 되찾지 못한 채 퇴학했지만 역시 공론화하기를 꺼렸다.
“바로잡고 싶죠. 그런데 결국 나한테만 안 좋은 일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들은 취업해야 했고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했다. ‘잘못’ 싸웠다가는 ‘입김’의 힘이 무서운 학계에서 고립되는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고립되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발붙일 곳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미래를 그렸다.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트러블 메이커’로 낙인찍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내 것을 빼앗겼다는 분통함 때문에 내 미래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매력’의 희생자
남의 공로를 가로채거나 훔친 이가 윗사람의 총애를 등에 업으면 싸우기 더 어려워진다. 나는 내 미래를 걸고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데, 상대는 대신 싸워줄, 나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가졌으니. 피해자가 움츠러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윗사람의 총애를 얻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연구자로서 살아남는 데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어느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오래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음 중 적어도 하나는 갖추고 있는데, 첫째는 재능이다. 타고난 호기심과 탐구력을 갖춘, 애초에 연구자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둘째는 노력. 재능은 부족해도 부단히 연구 역량을 채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여기에 속하는 것 같다고 교수는 말했다. 셋째는 ‘매력’. 말 그대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다른 연구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본인의 부담을 줄이고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지도교수의 총애를 받는 대학원생은 아마도 ‘매력’을 가진 편에 속하리라.
많은 대학원생이 스스로가 재능이나 노력을 갖춘 사람이기를, 혹은 그렇게 보이기를 바랄 거라 짐작하지만, ‘매력’ 역시 아무나 갖추지 못하는 중요한 능력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연결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어쩌면 재능과 노력을 뛰어넘는, 더 큰 일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매력’을 착취의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대학원생 J는 어떤 논문의 분석을 다 해놓고도 저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 논문에서 J의 이름은 acknowledgement에 ‘분석과 관련해 조언을 받았다’라는 문구와 함께 적혀 있을 뿐이었다. 논문 중 각 저자의 기여 영역을 설명한 부분에는 제1저자인 K가 분석을 전담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K는 J와 같은 연구실 동기다. J는 입학 때부터 연구 역량이 훌륭해서 동기나 후배, 심지어 선배들까지도 J에게 연구에 관해 상담하러 찾아올 정도였는데, K 역시 그런 이유로 J를 찾는 사람 중 하나였다. K는 분석을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발표 때마다 J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리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할 때 역시 J를 찾았다. 처음에 J는 어느 정도만 도와주면 스스로 하겠거니 했지만, 결국 논문을 작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분석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만큼 보상이 돌아오겠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게 돌아간 거였다.
그것은 K의 실수 같은 게 아니었다. K는 그 논문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는데 (학위 취득 과정 역시 지도교수 L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전례에 없는 속도로 이루어졌다), 그 소식을 듣고 연구실을 방문한 졸업생이 “사실 그거 J가 해준 거지? 딱 보니까 알겠던데.”라고 말했다. 그 졸업생을 포함해 연구실의 여러 사람이 J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K는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내가 다 했어!”
J는 지도교수 L에게 자신의 공로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음을 알리기 위해 에둘러 말해봤지만, “학생끼리 서로 도와주고 하는 거지, 요새는 너무 각박해졌어.”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저 도와준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전하거나 학술지 측에 알리는 등의 방법이 있었지만, J는 이 일을 덮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네 것을 찾아오라고, 힘이 되어 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J는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K와 L의 관계 때문이었다. L은 K를 입학 때부터 무척 아꼈는데 그 정도가 다른 대학원생을 대하는 태도와는 무척 달랐다. 다른 대학원생들에게는 대개 무표정에 용건이 없으면 말을 걸지 않는 그가, K에게는 늘 싱글벙글 웃으며 대했고, K의 오피스를 찾아가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학회에서는 친분이 있는 연구자들에게 K를 소개하고 다니고, K가 원하는 게 있으면 사비가 됐건 연구비가 됐건 지체 없이 쓰곤 했는데, 다른 대학원생들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대우였다. 누군가 L에게 K를 많이 아끼시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하자, L은 망설이지 않고 K가 얼마나 싹싹하고 밝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지에 관해 말했다.
J가 원하는 것은 그저 자신이 한 만큼을 인정받는 것뿐이었으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져야 할 부담은 무척 컸다. 대놓고 공로를 도둑질한 K는 물론이고 그만을 특별히 챙기는 L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도 L에게 이 일을 이야기해 보았자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그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져 학위 취득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K의 ‘매력’은 피해자의 입을 닫게 했다. 본인이 의도한 바인지 알 수 없지만 결국 그의 ‘매력’은 권력이 됐다.
내 것, 내 권리를 찾아오는 일이 오히려 내 실리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 그게 얼마나 사람을 이도 저도 못 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결국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기 가슴속에 상처를 내게 하는가. J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슬프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들 앞에서 그 약아빠지고 몰염치한 사람들을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욕해주는 것, 언젠가 그들이 자신의 것을 되찾고 싶다고 말해오면 온 마음을 다해 지지를 보내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걸 이룰 수 있다면 좋겠다. 공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